윤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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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임(
문정왕후의 아버지이며, 윤원개(
생애
[편집]1475년 세조비 정희왕후의 종증손이자 우의정을 지낸 윤사흔의 증손으로 증영돈녕부사 윤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연일정씨는 포은 정몽주의 4대손이었다. 또한 종증조부 윤사분은 장경왕후의 증조부였다.[1] 따라서 장경왕후에게는 8촌 오빠가 되고 대윤의 영수 윤임에게는 8촌 형이 되었다.
할아버지 윤계겸은 형조판서였으나, 아버지 윤욱은 내자시판관을 지내고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11세에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성인처럼 상을 치뤘다 한다.
음보로 출사하여 장원서의 별제로 처음 벼슬길에 나섰으며, 이후 무관직을 거쳐 별좌(
여기에 1522년 파산부원군(坡山
1520년 어머니 연일정씨의 상을 당했는데, 이때 얻은 병으로 다년간 병석에 있다가 죽었다. 1534년 4월 9일 교하 선산에 참배하러 가려다가 발병하여 3일만에 사망했다. 정확한 병명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사후
[편집]그해 6월 11일 경기도 교하군 와초동(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에 묘가 있다. 신도비문과 비문은 이사구(
가족 관계
[편집]- 할아버지 : 윤계겸(
尹 繼 謙 , 1442 ~ 1483) 공조판서 시호는 공양공 - 할머니 : 김해 김씨, 김진손(
金 震 孫 )의 딸- 아버지 : 윤욱(
尹 頊, 1459 ~ 1485) 내자시판관 - 어머니 : 영일 정씨, (? ~ 1520), 문충공 포은 정몽주(
鄭 夢 周 )의 증손인 감찰 정제(鄭 濟 )의 딸- 부인 :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
全 城府 夫人 全 義 李 氏 1475 ~ 1511)- 장남 : 윤원개(
尹 元 凱) - 자부 : 이씨, 이보(
李 俌)의 딸- 손자 : 윤기(
尹 紀 ) - 손자 : 윤강(
尹 綱 ) - 손녀 : 윤씨, 구윤의 처
- 손서 : 구윤(
具 潤 , 본관은 능성)
- 손자 : 윤기(
- 차남 : 윤원량(
尹 元 亮 ) - 자부 : 장씨, 현령 장일취(
張 日 就)의 딸- 손자 : 윤소(
尹 紹) - 손자 : 윤찬(
尹 纘) - 손자 : 윤치(
尹 緻) - 손녀 : 숙빈 윤씨(
淑 嬪尹 氏 ), 인종의 후궁
- 손자 : 윤소(
- 삼남 : 윤원필(
尹 元 弼) - 자부 : 정씨, 현감 정찬(
鄭 纘)의 딸- 손자 : 윤윤(
尹 綸) - 손자 : 윤위(
尹 緯 ) - 손자 : 윤회(
尹 繪 ) - 손자 : 윤집(
尹 緝)
- 손자 : 윤윤(
- 사남 : 윤원로(
尹 元老 ) - 자부 : 평창 이씨
- 손자 : 윤백원(
尹 百 源 )
- 손자 : 윤백원(
- 자부 : 이씨, 주부 이량(
李 亮 )의 딸- 손자 : 윤구(
尹 絿)
- 손자 : 윤구(
- 장녀 : 윤씨
- 차녀 : 문정왕후
- 사위 : 중종 - 조선의 11대 임금
- 오남 : 윤원형(
尹 元 衡) - 자부 : 김씨, 김안수(
金安 遂 )의 딸- 손자 : 윤계(
尹 繼 ) - 손자 : 윤효원(
尹 孝 源 ) - 손자 : 윤충원(
尹 忠 源 ) - 손자 : 윤담연(
尹 覃淵) - 손서 : 이영민(
李 榮 敏 ) - 손서 : 김귀남(
金貴男 )
- 손자 : 윤계(
- 장남 : 윤원개(
- 첩 : 이름 미상
- 서자 : 지손(
支 孫 ) - 서자 : 서손(庶孫)
- 서자 : 방손(
傍 孫 ) - 서자 : 저손(
低 孫 ) - 서녀 : 윤씨
- 서자 : 지손(
- 첩 : 향단(
香 團 )- 서자 : 윤선지(
尹 善 指 )- 서손자 : 윤욱(
尹 昱)- 서증손자 : 윤필세(
尹 必世)- 서고손녀 : 강윤조의 처
- 서증손자 : 윤필세(
- 서손자 : 윤욱(
- 서자 : 윤선지(
- 부인 :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
- 아버지 : 윤욱(
기타
[편집]대윤의 영수인 윤임의 8촌 형이었고, 장경왕후의 친정아버지 윤여필, 윤여해 형제는 그의 7촌 재종숙이었다.
이중 인척관계
[편집]그는 장경왕후의 친정아버지 윤여필에게는 7촌 조카가 되고, 장경왕후와 윤임 형제에게는 8촌 형이 된다. 그런데 며느리 여흥이씨를 통해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한다.
윤임의 장인 이보(
그런데 윤원개는 윤지임의 아들이자, 윤원로, 윤원형 5형제의 맏형이자 문정왕후의 친정 오빠, 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의 백부였다.
그밖에 윤여필의 외손자이며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의 후궁이, 문정왕후의 조카이며 윤지임의 손녀딸이 되므로 부계로는 친척이면서 이중, 삼중으로도 인척관계를 형성한다. 조선은 대전회통 등을 통해 8촌까지를 친척으로 간주했다.
평가
[편집]1518년 5월 윤여필은 군기시 제조로 임명되고 그는 전함서 제조로 임명되자 대간에서는 무식하다고 규탄하였다. 그러나 그는 처신은 현명하게 하였는데, 사후 졸기를 보면
윤지임 은 아들 다섯을 두었다. 그의 막내 아들인 윤원형(
尹 元 衡) 은 이때 주서(注 書 )였다. 지임 은 사람됨이 온공(溫 恭 )하고 검약했다.유생(
儒生 )인 포의(布衣 ) 적부터 비단옷 차림을 하지 않고 종시 한결같았으니, 어찌 외척(外戚 ) 중의 현명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중종실록 윤지임의 졸기 중에서
일반 양반 사대부와 평민의 처첩을 함부로 빼앗아 지탄받았고 학식이 없음을 조롱당하였으나 행동은 민첩하고 신중하였다.
윤지임이 등장한 작품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
燕 山 君 日記 》 - 《
中 宗 實錄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7,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