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명(趙文命, 1680년-173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장인이며 효순현빈 조씨(뒤에 왕후로 추존)의 친정아버지이다. 풍원부원군 조현명의 형이다. 과거 급제 후 이조참판, 병조판서, 훈련대장, 의금부판사 등을 지내고 풍릉부원군(豊陵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사촌형제 조철명(趙哲命)의 8대손은 독립운동가 조동호이다.
소론 계열이었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적극 호응하여 탕평파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자(字)는 숙장(叔章), 호는 학암(鶴巖),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풍양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김창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1]1705년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25년 사헌부지평을 거쳐 동학겸교수(東學兼敎授), 세자시강원겸보덕, 홍문관교리 등을 지냈다. 그 후 수찬·부교리 등을 거쳐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1727년실록청당상(實錄廳堂上)으로 <경종실록> 편찬에 참가하였으며, 그해 승정원도승지, 경연동지사, 어영대장(御營大將) 등을 지냈다.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이 되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1품으로 승진, 풍릉 부원군(豊陵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병조판서, 대제학, 훈련대장, 의금부판사를 거쳐 1730년우의정이 되었고, 호위대장(扈衛大將)을 겸하였다. 이듬해 사은사로 청에 다녀와 좌의정에 올랐다.
관직에 있는 동안 영조의 탕평책에 적극 호응하여 탕평책을 실시하는 데 앞장섰고, 불편 부당한 인사 문제 관리를 했다. 글씨를 잘 썼다. 저서로 <학암집>이 있으며 글씨로 충북청주에 <삼충사 사적비>가 있다. 영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사후 증이조판서에 추증된 그의 사촌형제 조철명(趙哲命)의 8대손은 독립운동가 조동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