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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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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兵曹へいそう)는 고려조선의 행정기관이다. 육조 가운데 국방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고려 성종 이전에는 병관이라는 명칭을 썼고, 고려 성종 이후로는 병부라는 명칭으로 바꿨다. 그러다가 원나라 간섭기에는 군부사로 바뀌었고 병조로 바뀌었다가 선부로 통합되었다. 공민왕 때 병부로 환원되었다가 군부사, 총부로 다시 바뀌었으며 공양왕 때 비로소 병조로 개칭되었다. 작전계획, 병기의 생산관리, 무관의 인사권 등 국방을 총괄하여 담당했으며, 수레와 말 등의 교통수단, 봉화와 역참 등의 통신수단, 궁궐 경비 등도 담당하였다. 지금의 국방부에 해당한다.

1894년(고종 31년)에 갑오개혁이 시행되자 군무아문(軍務ぐんむ衙門)으로 개편되었고, 이듬해 군부(軍部ぐんぶ)로 다시 개칭 및 개편되었다.[1]

고대 주나라에서 대사마(だい司馬しば)으로 불렀다하여 옛스럽게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2] 하관(なつかん), 기조(曹)라고도 한다.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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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세종대로의 서편에 있었으며,[3] 판서, 참판, 참의, 참지의 네 당상관이 근무하던 당상대청, 정랑과 좌랑이 근무하던 낭청대청 등의 건물이 존재하였다.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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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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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 관직 정원 비고
정2품 판서 1명 현재의 국방부장관
종2품 참판 1명 현재의 국방부차관
정3품 참의, 참지(まいり) 각 1명 품계는 같으나 참의가 참지의 윗서열이다.
정5품 정랑(正郞まさお) 3명 무선사,승여사,무비사에 각1인
정6품 좌랑(ろう) 3명 무선사,승여사,무비사에 각1인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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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있고 덕이 있는 신하에게 혹은, 공신이나 원로대신들에게 주는 직책으로 판병조사(はん兵曹へいそうごと)가 있었다. 녹봉만 받고 실제 병조 업무는 행사하지 않는 명예직에 가까웠다.

소속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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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 본청에는 3개의 속사(ぞく, 소속 부서)가 있었으며, 각 정랑과 좌랑 각 1인이 할당되었다. 이러한 주요 부서 이외에도 시기에 따라 일군색(一軍いちぐんしょく), 이군색(ぐんしょく) 등의 부서가 존재하였다.

  • 무선사(たけせん) : 무관 관원의 인사, 발령, 무과 과거시험 시행, 천거, 부위(まもる, 관청 경비), 군융(ぐんえびす, 군인 선발) 사무 담당
  • 승여사(輿こし) :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 관리, 보충대 편성 등 사무를 담당
  • 무비사(武備ぶび) : 중앙과 지방 갑병(かぶとへい)의 명단, 무예 훈련(くん鍊), 지도(地圖ちず) 제작, 진융(鎭戎)·성보(しろ堡)와 국경 지역 요새 관리, 봉화(熢火)·출정(出征しゅっせい) 등의 사무를 담당

속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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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서 관장하는 속아문(ぞく衙門, 하급 관청)은 아래와 같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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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무관이 대한제국 군부의 기능을 이어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군무부가 그 기능을 수행하였다. 해방 후에 미군정 통위부(국방부)가 그 기능을 이어받은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 국방부가 조선시대 병조의 역할을 이어받았다.
  2. 병조 정문에 걸려 있던 편액의 명칭이 '대사마아문(だい司馬しば衙門)'이었다.
  3. 현재 주소 체계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0-1번지의 세종로공원 남측 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