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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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청(
역사
[편집]1711년(숙종 37년)에 북한산성이 완성되고 그곳에 군량미를 대량 비축한 후, 이듬해인 1712년(숙종 38년)에 산성을 방어하는 별도의 부대를 경리청이라는 이름으로 설치하였다. 1747년(영조 23년)에 군영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폐지되어 총융청에 편입되었으며, 약 150년이 지난 1891년(고종 28년)에 수도 서울의 북부 지역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재설치하였으나 3년 후인 1894년에 다시 폐지하였다.
관제
[편집]- 정1품 도제조 1명 : 의정부의 영의정이 겸임
- 종2품 제조 : 비변사의 당상관이 겸임
- 정3품 관성장(
管 城 將 ) 1명[1] - 종4품 파총(
把 摠) 1명 - 종6품 낭청(
郎 廳 ) 1명 : 비변사의 낭청이 겸임 - 종9품 초관(哨官) 5명
- 기타 군관(
軍 官 ) 4명, 성문부장(城門 部將 ) 3명 등[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