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 (한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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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
- 방은 각 부를 여러 개로 나눈 구역이다. 오늘날에 행정동 개념에 가깝다.
- 계는 원래 한성부에서 성인 남자에게 방역(
坊 役 )이라는 노동을 징발하기 위하여 구획한 주민 편성 단위였는데, 당대에는 행정구역 단위로도 통용되었다.[1] 1700년대 후반에 등장하였다.[2] - 동은 조선 초기에 행정 구역 단위가 아니라 계곡이 있는 명승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3], 조선 후기에 와서는 골목을 단위로 편성된 일종의 생활공간 단위를 가리켰다.[4] 동이 공식적으로 말단 행정구역 단위가 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이다.[5] 동은 유동적이어서 하나의 동이 여러 계에 속하거나, 하나의 계가 여러 방에 속하기도 하였다.[6]
한성부 5부 52방
[편집]한성부 설치 당시에는 52방을 두었다.[7] 세종 때 서부의 3방을 폐지하여 49방이 되었다.
영조 때는 동부 6방, 남부 11방, 서부 9방, 북부 12방, 중부 8방으로 5부 46방이었으며, 그 밑에 328계(
조선 초기의 한성부 관할구역은 도성으로부터 사방 10리까지로 하였으나, 대부분의 인구가 도성 내에 집중되어 1428년(세종 10) 한성부 인구 10만 3328명 가운데 도성 밖 10리까지의 인구는 불과 6,044명뿐으로, 도성 밖(성저십리)에는 서대문·서소문 밖에 2방, 동대문 밖에 2방, 남부의 2방 등 6방이 있을 정도였다.
각 방에는 책임자로 관령을 두었다.
동부 12방
[편집]- 연희방(
燕 喜 坊 )·숭교방(崇 敎 坊 )·천달방(泉 達 坊 )·창선방(彰 善 坊 )·건덕방(建德 坊 )·덕성방(德成 坊 )·서운방(瑞雲 坊 )·연화방(蓮花 坊 )·숭신방(崇 信 坊 )·인창방(仁昌 坊 )·관덕방(觀 德 坊 )·흥성방(興 盛 坊 )
남부 11방
[편집]- 광통방(
廣通 坊 )·호현방(好 賢 坊 )·명례방(明 禮 坊 )·대평방(大平 坊 )·훈도방(勳 陶 坊 )·성명방(誠 明 坊 )·낙선방(樂 善 坊 )·정심방(貞心 坊 )·명철방(明哲 坊 )·성신방(誠 身 坊 )·예성방(禮 成 坊 )
서부 11방
[편집]- 영견방(
永 堅 坊 )·인달방(仁 達 坊 )·적선방(積善 坊 )·여경방(餘慶 坊 )·인지방(仁 智 坊 )·황화방(皇 華 坊 )·취현방(聚賢坊 )·양생방(養生 坊 )·반석방(盤石 坊 )·신화방(神化 坊 )·반송방(盤 松 坊 )
북부 10방
[편집]- 광화방(
廣 化 坊 )·양덕방(陽 德 坊 )·가회방(嘉 會 坊 )·안국방(安國 坊 )·관광방(觀光 坊 )·진정방(鎭定 坊 )·순화방(順化 坊 )·명통방(明通 坊 )·준수방(俊秀 坊 )·의통방(義 通 坊 )
중부 8방
[편집]- 정선방(
貞 善 坊 )·광행방(廣幸 坊 )·관인방(寬仁 坊 )·수진방(壽 進 坊 )·증청방(澄 淸 坊 )·장통방(長通 坊 )·서린방(瑞 麟坊)·견평방(堅 平 坊 )
관원
[편집]각 부(
- 조선 초기 태조부터 세조 초기까지
- 종6품 령 : 각 부의 책임자 (중부령, 동부령 등으로 호칭)
- 조선 중기 세조부터 영조 시기까지
- 종6품 주부 : 각 부의 책임자
- 종9품 참봉 : 각 부의 주부를 보좌
- 조선 중기 영조부터 정조 시기까지
- 종6품 도사 : 각 부의 책임자
- 종8품 봉사 : 각 부의 도사를 보좌
- 조선 후기 정조부터 고종 시기까지
- 종5품 령 : 각 부의 책임자
- 종9품 도사 : 각 부의 령을 보좌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요시다, 미츠오 (2019). 《근세 서울 도시사회 연구》. 번역 김동철. 서울: 심산. ISBN 9788994844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