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흠
신흠(
생애
[편집]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ᆞ감찰ᆞ병조좌랑, 봉교, 양재도찰방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 삼도 순변사 신립을 따라 조령 전투에 참가했으나, 신립이 패하자 강화에 들어갔다가 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후 도승지, 병조참판, 부제학, 대사성을 거쳐 한때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동지성균관사, 예문관 대제학을 지내고 1608년,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예조판서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에 이어 지의금부사와 대사헌을 지내다 숭정대부가 되고 동지경연사가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헌으로서 세자 책봉 주청사가 되었고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하라고 부탁 받은 7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1608년(광해군 즉위) 유영경의 옥사 직후 정운원종공신 1등(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
인조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거쳐 우의정을 지냈으며(1623.7.29-1626.9.24), 정묘호란 때 좌의정(1627.1.18-9.4)으로서 세자를 모시고 전주에 피난갔다가 돌아와서 영의정이 되었다(1627.9.4-1628.6.29). 1628년(인조 6) 유효립에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
사후
[편집]《신흠 묘역 및 신도비》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에 있다. 부인 전의 이씨와의 합장묘이며, 묘역 주위는 낮은 구릉으로 둘러 싸여 있다. 봉분 앞에는 묘비·상석(
가계
[편집]- 조부 : 신영(
申 瑛 )- 아버지 : 신승서(
申 承 緖 , 1531 ~ 1572) - 어머니 : 은진 송씨(1532 ~ 1572) - 송인수의 딸
- 장인 : 이제신(
李 濟 臣 ) - 장모 : 상덕록(尙德
祿 , 1538 ~ ?) - 상진(尙震)의 아들 상붕남(尙鵬南 )의 딸- 부인 : 전의 이씨
- 장남 : 신익성(
申 翊聖, 1588 ~ 1644) - 며느리 : 정숙옹주 - 선조의 3녀
- 손녀 : 신혜순(
申 惠 順 , 1604 ~ 조졸) - 손녀 : 신경강(
申 敬 康 , 1606 ~ 1649) - 손자 : 신면(
申 冕, 1607 ~ 1652) - 손자 : 신변(
申 昪, 1610 ~ 1664) - 손자 : 신경(
申 炅, 1613 ~ 1664) - 손녀 : 신순강(
申 順 康 , 1615 ~ ?) - 손녀 : 신지강(
申 止 康 , 1617 ~ 1667) - 김석주의 모친 - 손자 : 신최(
申 最 , 1619 ~ 1658) - 손자 : 신향(
申 晑, 1623 ~ 1642)
- 손녀 : 신혜순(
- 차남 : 신익전(
申 翊全, 1605 ~ 1660) - 며느리 : 조수임(
趙 壽 任 ) - 조창원의 장녀이자 장렬왕후의 언니 - 장녀 : 박호의 처
- 차녀 : 장렬왕후의 숙부 양주 조씨 조계원(
趙 啓 遠 )에게 출가 - 3녀 : 반남 박씨 박의(
朴 漪)의 처- 외손자 : 박세채(
朴 世 采 , 1631 ~ 1695)
- 외손자 : 박세채(
- 4녀 : 민회빈 강씨의 오빠 금천 강씨 강문성(
姜 文 星 )의 처 - 5녀 : 이욱(
李 旭 )의 처
- 장남 : 신익성(
- 부인 : 전의 이씨
- 아버지 : 신승서(
평가
[편집]당대 일류의 문장가 이정구, 장유, 이식과 더불어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인 월상계택(
저서
[편집]- 《상촌집》
- 《산중독언》
- 《야언구정록》
관련 문화재
[편집]- 공주 쌍수정 사적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