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건들 맹활약, 손흥민 없이도 요르단 잡았다…급한 불 끈 홍명보 감독

    영건들 맹활약, 손흥민 없이도 요르단 잡았다…급한 불 끈 홍명보 감독

    10일 요르단 암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전반 이재성이 선제골을 터뜨린 뒤 선수들이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캡틴’ 손흥민(32·토트넘) 없이도 홍명보호는 거센 파도를 헤치고 전진했다. 껄끄러운 요르단 원정에서 완승을 거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FIFA랭킹 23위)은 10일(한국시간) 요르단 암만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3차전에서 이재성(32·마인츠)과 오현규(23·헹크)의 연속골에 힘입어 요르단(68위)을 2-0으로 물리쳤다.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승리였다. 팔레스타인과의 홈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고 오만 원정에서 3-1로 승리한 한국은 원정 2연승을 거두며 2승1무(승점 7)로 조 선두에 올랐다. 한국은 3차 예선에서 조 2위 안에 들면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따낸다. 홍명보호는 또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이 이끌던 지난 2월 카타르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단에 당한 뼈아픈 0-2 패배도 설욕했다. 허벅지 부상으로 빠진 주장 손흥민의 대체자였던 황희찬(28·울버햄프턴)마저 전반 23분 발목 부상으로 교체 아웃된 상황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둔 것도 값진 성과다.   영건들이 해결사로 떠오른 것도 고무적이다. 기대를 모았던 이강인(23·파리생제르맹)이 상대의 압박 수비에 막혀 고전하는 가운데 오현규·엄지성(22·스완지시티)·배준호(21·스토크시티) 등이 펄펄 날았다. 황희찬 대신 투입된 엄지성은 왼쪽 측면에서 활발한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며 선제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후반 6분 교체로 나란히 그라운드를 밟은 배준호와 오현규는 후반 23분 쐐기골을 합작하며 승리의 기운을 완전히 한국 쪽으로 가져왔다. 특히 8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단 오현규는 A매치 12경기 만에 데뷔골을 터뜨렸다.   임시 주장 김민재(27·바이에른 뮌헨)와 조유민(27·샤르자)이 호흡을 맞춘 중앙수비는 요르단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은 빠르고 정확한 원터치 패스로 경기 흐름을 주도했다. 김민재는 “경기 끝나고 들었는데, 선수단 분위기가 안 좋다고 하더라”며 “분위기는 되게 좋은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이 준비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팬들의 질타를 받았던 홍 감독으로서는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홍명보호는 1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라크와의 4차전을 보다 여유롭게 준비하게 됐다. 아시안컵에서 패배를 안긴 요르단, B조 상대국 중 랭킹이 가장 높은 이라크(55위)와 맞붙는 2연전은 3차 예선의 최대 고비로 여겨졌다. 이라크전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낼 경우 홍 감독이 추진하는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가속도를 낼 수 있다.   다만 대표팀은 연이은 부상 악재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황희찬의 부상으로 급히 투입된 엄지성마저 후반 6분 무릎 부상으로 교체되는 불운이 이어졌다. 홍 감독은 “왼쪽 측면 포지션에 손흥민이 없어서 플랜B를 가동했다. 황희찬이 좋은 스타트를 했으나 불운한 부상으로 아웃됐고, 그 다음에 준비한 카드(엄지성)도 괜찮았으나 부상을 당해 당황스러웠다. (선수의 부상 정도를) 정확하게 체크하겠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4.10.12 01:44

  • FIFA, 정부개입 허용한 쿠웨이트 몰수패 처리

     ━  소용돌이에 갇힌 한국 축구   대한축구협회가 국회와 문체부로부터 잇달아 감사 대상에 오르면서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FIFA가 지난달 30일 축구협회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해 경고의 의미를 담은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2026 북중미 월드컵 출전 자격 박탈을 포함해 불이익을 걱정하는 축구 팬들이 적지 않다.   FIFA는 정관 14조와 15조, 19조 등을 통해 “회원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제3자가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위반할 경우 상황에 따라 ▶월드컵 포함 FIFA 주관 대회 출전 금지 ▶친선경기 포함 국제 경기 출전 금지 ▶재정 지원 중단 ▶회원국 자격 정지 등 4단계 제재를 내릴 수 있다. 2015년 쿠웨이트 정부가 자국 체육단체 행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자 FIFA가 쿠웨이트축구협회를 징계했다. 당시 FIFA는 쿠웨이트 대표팀의 국제대회 출전권을 박탈했다. 진행 중이던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과 2019 아시안컵 예선 잔여 경기를 모두 몰수패 처리했다.   관련기사 국회·정부의 축구협회 협공에 “적법하다” vs “도 넘었다”…보조금 놓고도 논란 지난 2010년 프랑스의 사례가 대한축구협회 상황과 비슷하다. 프랑스 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축구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프랑스 의회가 소집한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당시에도 FIFA가 프랑스축구협회에 경고성 공문을 보냈는데, 프랑스 의회가 축구협회장 해임 요구 등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일단락 됐다.   이와 관련해 과거 AFC에서 근무한 축구 관계자는 “FIFA가 보낸 공문은 ‘예의주시 하고 있으니 더 이상 일을 키우지 말라’는 의미”라면서 “문체부나 국회가 정몽규 회장이나 홍명보 감독의 해임을 결의하는 등 협회 행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FIFA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축구인은 “‘월드컵 한 번 못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축구협회의 부조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심정을 이해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각급 대표팀이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해 발생하는 경험적, 기량적 손해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한 번 내준 아시아 정상권 지위를 되찾기 위해선 이전의 2~3배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2024.10.12 01:40

  • 시를 품은 한국 소설, 특유의 공감 문화 세계가 알게 되다

    시를 품은 한국 소설, 특유의 공감 문화 세계가 알게 되다

     ━  K문학 쾌거, 왜 한강인가   노벨상 위원회는 올해 문학상 수상자를 잘 골랐다. 그들은 현재의 우리 문명이 병들었다고 진단하고 그 환부를 보여준 예술가를 정확하게 골랐다. 그들에게 상을 주고 싶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문학잡지 AZALEA(진달래)를 창간하고 편집장 노릇을 거의 20년간 하면서,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왜 한강인가. 대륙을 가리지 않고 세계의 젊은 세대는 모두 K-컬처에 홀딱 빠졌다는데, 그래서 K-문학이 이 흐름에 합류한 것인가? 어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관측은 한강의 작품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또한 세계 문화의 흐름을 짚지 못한 단견이다.   K-컬처의 영향? 세계 흐름 헛짚은 단견 2016년 5월 1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시상식에서 한강이 자신의 책 『채식주의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뉴스]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전하는 매체 대부분이 지적하고 있는 한강 작품의 주제는 폭력이다. 서구세계에 한강의 작품 세계를 알린 첫 번째 작품이 『채식주의자』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 혹은 남성 주도로 이끌어온 근대 세계 일반의 폭력성을 고발한 이 작품은, 처음 출판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많은 독자들은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을 불편해했다. 부커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이 작품은 한국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고깃덩어리 꿈을 꾼 후 채식을 선언하는데, 영혜의 남편이나 가족 모두 영혜의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영혜에게 고기를 들고 다가와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의 행위는 끔찍하다. 이보다 더한 장면도 있다. 자신의 아이를 다치게 한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그 개가 죽을 때까지 온 동네를 질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개를 두들겨 패서 먹으면 맛있다는 속설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에피소드는 남성들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영어 번역본에는 이 장면이 빠져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줄 충격을 번역자가 완화시킨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에피소드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폭력성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혐오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관련기사 광주의 오월 그려낸 작가, 부서질 듯 여려 보였다 한강 “거대한 파도처럼 축하의 마음들 전해져와…감사” 한강을 알린 ‘파란 눈의 번역가’…언니·선생님 발음 그대로 옮겨 한승원 “딸, 전쟁으로 사람 죽는데 무슨 잔치냐고 해” 지금이야말로 한강을 읽을 시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귀국해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채식주의자』는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작 부분은 주인공 영혜의 남편 목소리로 서술된다. 소설의 첫 문장을 보라.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남편은 영혜를 아내로 선택한 이유로 그녀의 “무난한 성격”과 “편안함”을 든다. 스스로를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각하고 만족하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영혜와 결혼한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의 묘사를 문제적이라고 지적하는 한국인 학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시작 부분의 묘사를 남학생으로 하여금 큰 소리로 읽게 하고는 여학생에게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여러 번이다. “아뇨”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여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충격적이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영어로 번역된 판본을 읽히고 물어보면 대답은 명료하다. 영어로 읽은 외국인 학생들은 한결같이, 시작 부분 단 한 문단의 서술만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몹쓸 인간이라는 것을 파악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 학생이 영어판으로 읽고 토론에 참여하게 되면 조금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글판으로 읽은 한국인 학생 대부분에게 그 남편이라는 사내의 어떤 면이 문제인지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남편의 말과 행동이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독자에게 아내인 영혜의 채식 선언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남편이 어떻게 느낄 것 같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죄없는 남편이 불편해 한다면서 그 남편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이며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길러내는가를 그려내는 시작 부분의 한 문단이 작가의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두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웨덴 한림원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의 책들이 전시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노벨상 위원회의 공식 수상 발표문은 한강의 수상 이유를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썼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여한다는 이 문장은 역사적 트라우마, 인간의 취약성, 시적 산문,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키워드로 제시한다. 한국 사회가 겪은 사회·역사적 변동을 거시적 관점에서 다룬 작품은 황석영 등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상당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적 변동의 폭력에 의해 부서진 개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진 작품은 어쩌면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강의 작품에서 “강렬한 시적 산문”이 명시된 것은 한국 문학 이해의 측면에서 주목을 요한다.   세계문학의 지도에서 한국문학은 소수자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한다. 지구상의 대다수 독자들에게 전달되려면 번역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그 번역 과정은 비대칭적이다. 가령 한강의 소설은 서구소설의 관점에서는 매우 색다르다. 서구에서는 이미 확립된 문학 전통이 있고 소설 장르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문학의 전통이다.   한국 문화에서 소설이, 한국어를 사용해서, 진지한 예술작품으로서 창작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백 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서구 문학을 공부하고 서구 소설의 관습을 따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문화적 전통의 힘은 강력했다. 한국어에 없던 과거형 문장이라든가 대명사를 사용하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나 한국어 소설은 여전히 서구 소설과 다르다. 한강의 소설을 두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소설에는 시가 깊숙이 들어와 있고 한강의 소설이 심하게 실험적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구 독자들에게는 혁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가부장제에 고통받는 여성 공동 수상 한국은 시의 공화국이다. 서점에 가보면 시집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다. 전 세계의 대도시에 있는 큰 서점에 가보라. 프랑스나 영국,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큰 서점에 가봐도 시집 베스트셀러 목록을 비치한 곳은 없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시집이 올라가는 일은 없다. 이 사정은 출판대국이라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집이라는 출판물은 세계적으로 고사 직전의 유물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문학 잡지에 시를 게재하고 고료를 받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큰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시집 시리즈를 수십 년 운영하면서 수백 권의 시집을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그 시집들의 대부분이 재판 삼판을 거듭한다. 이런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국 사람 대부분은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있지만 천만에.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만난 외국 문학 교수들도 우리나라의 시집 출판에 대해 듣고서는 깜짝 놀란다.   시가 이렇게 읽히는 한국에서 소설이 시와 닮아 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시는 본질적으로 화자의 음성에 기반한다. 즉, 시에서는 살아있는 화자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일인칭이나 이인칭으로 말을 건넨다. 한국인들의 서사는 근본적으로 공감을 지향하며 중요한 장면에서는 곧잘 과거형 문장이 현재형으로 바뀐다. 혹은 마치 시가 그런 것처럼 직접적인 목소리로 독자에게 공감을 요청한다. 한국 문화가 공감에 기반하는 세계상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강의 작품을 통해 세계의 독자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수상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강 혼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지난 백 년간의 한국문학 전통 위에 한강의 작품이 있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선배 문인들의 지문이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서 억압받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눈물과 비명이 묻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노벨문학상은 광주와 제주 사람들도 함께 받은 것이며, 무엇보다도 한국의 강고한 가부장제 문화에서 고통받았고 지금도 고통받는 한국의 여성들이 공동 수상자이다.   이영준 문학평론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문학잡지 AZALEA의 편집장을 2007년부터 맡아 한국문학을 영미권을 비롯한 세계에 알리는 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재단법인 한국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2024.10.12 00:20

  • 국회·정부의 축구협회 협공에 “적법하다” vs “도 넘었다”…보조금 놓고도 논란

    국회·정부의 축구협회 협공에 “적법하다” vs “도 넘었다”…보조금 놓고도 논란

     ━  소용돌이에 갇힌 한국 축구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현안질의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앞줄 오른쪽)이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 뒤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앉아 있다. [뉴스1] 한국 축구가 거대한 논란의 소용돌이에 갇혀버렸다. 올해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탈락을 기점으로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시비와 함께 각종 잡음이 터져 나온 결과다. K리그 승부조작 가담자 사면 시도와 올림픽 본선 10회 연속 진출의 실패 등 대한축구협회의 실책이 잇따른 가운데 4연임 도전을 시사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명확한 입장 표명 없이 잠행(潛行せんこう) 중이다.   여기에 더해 파리 올림픽 기간 중 일부 종목 단체의 운영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축구를 포함한 ‘체육 개혁’은 올 한 해 우리 사회 주요 담론 중 하나가 됐다.   축구 팬들의 “정몽규 아웃” 목소리가 커지고 여론도 축구협회에 부정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축구협회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고 이를 통해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도 정 회장과 홍명보 감독 등 축구인들을 불러 질의와 추궁을 했다.   축구협회의 잇단 실책에 축구팬들 분노 그런데 이에 대해 FIFA(국제축구연맹)는 “축구협회에 대한 문체부의 감사가 진행 중이고, 국회 문체위 질의도 있었던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며, “대한축구협회는 외부의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협회에 보냈다. 이 원칙이 깨지면 대한축구협회가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도 던졌다. 축구협회 때리기 일색인 국내의 시각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무엇이 스탠더드일까. FIFA의 주장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일까.   관련기사 FIFA, 정부개입 허용한 쿠웨이트 몰수패 처리 입법부(국회)와 행정부(문체부)가 축구협회를 에워싸고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 국회와 정부 모두 “관련 규정에 따른 적법한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문체위원장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축구협회 감사 및 해체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고, 5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면서 “이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문체위에 관련 안건이 회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도 축구협회 감사가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지난해까지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여서 문체부의 직접 감사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와 씨름·태권도 등에 대해 정부 지원금을 대폭 늘렸고, 관련 예산의 적절한 사용 여부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때문에 올해부터 해당 종목 단체의 지위를 ‘정부 유관기관’으로 변경해 문체부가 직접 관리·감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급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올림픽 등에서 부진할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 “당장 귀국하라, 들인 세금이 아깝다”고 비판하는 글이 등장하는데, 이는 일부만 맞는 표현이다. 예산 중 정부 지원금 비중이 절대적인 종목 단체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축구협회는 자립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지난해 말 축구협회 배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예산은 1876억원에 이른다. 이 중 ‘국민체육진흥기금’이라는 명칭이 붙은 정부 보조금은 108억원이다. 정부 산하 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조성해 체육단체에 배분하는 스포츠토토 지원금(225억원)도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정부가 주는 돈으로 보긴 어렵다. 스포츠토토 판매 수익 중 일부를 미리 정한 비율에 따라 배분한 금액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 관련 논란의 핵심은 국민체육진흥기금인데, ‘축구협회 전체 예산의 5.7%’로 볼 것이냐, ‘100억원대 국민 세금’으로 볼 것이냐에 따른 해석의 차이가 크다.   축구협회는 “국민체육진흥기금은 여자축구·유소년축구·생활축구 등 사용처와 목적이 명확히 정해져 있고, 사용하지 않은 돈은 반납해야 한다는 점에서 협회 재정이라기보다는 정부 지정 위탁 사업비에 가깝다”면서 “정부 보조금 사용에 대해서는 수년 간 문체부로부터 최고 등급(S)을 받았고, 그에 따라 관련 금액이 꾸준히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선 축구협회가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 축구협회 관계자는 “문체부가 감사를 진행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국민체육진흥기금 사용 내역에 대해서만 들여다볼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 현재 감사 수준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문체부는 “연간 100억원이 넘는 나랏돈의 운용을 맡기는 만큼 축구협회 행정 역량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건 당연한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지원금이 전체 예산의 5% 정도인 건 이웃나라 일본축구협회도 비슷하다. 반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선 축구협회가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된다. 때문에 경영 능력을 갖춘 CEO형 인물이 협회장을 맡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캐나다축구협회가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 전문경영인 케빈 블루 회장 취임 이후 파격적으로 협회 예산을 늘려 대한축구협회가 눈독을 들이던 제시 마쉬(미국)를 자국 대표팀 감독으로 낚아챈 게 대표적이다.   독일축구협회의 경우 자국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자 70년 넘게 대표팀을 후원한 자국 브랜드 아디다스 대신 미국의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와 손을 잡았다. 지난 3월 맺은 이 계약으로 독일축구협회가 확보한 예산은 10년 총액 10억 유로(1조4764억원)에 이른다. 아디다스와의 기존 계약액의 2배다.   최근 논란에 대해 축구인들은 “축구협회 예산에 일정 부분 나랏돈이 들어가는 만큼 문제점이 드러날 때 정부나 국회가 잘못을 꼬집는 과정 자체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진행 방식이 지나치게 선정적, 자극적으로 흘러버린 현 상황은 도를 넘었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 수도권 구단 A감독은 “국회 현안 질의 때 수준 이하의 질문을 던져놓고선 윽박지르는 일부 의원들을 보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면서 “전문 영역으로 존중 받아야 할 스포츠가 국회로 불려가는 건 확실한 개선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일부 의원들은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개탄했다.   원로 축구인 B씨는 “문체부가 한국 축구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지 못하고 행정 절차 등 지엽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듯하다”면서 “3개월 가까이 들여다보고도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축구협회에 ‘절차상 문제점만 적당히 덮으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2024.10.12 00:01

  • 서울 낡은 주택가 정비 '모아타운' 사업도 주민 갈등 탓 진척 더뎌

    서울 낡은 주택가 정비 '모아타운' 사업도 주민 갈등 탓 진척 더뎌

    모아타운 선정지 주민 일부가 올해 3월 사업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시의 또 다른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인 모아타운사업도 기대와는 달리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아타운은 면적이 작아 개발이 힘든 10만㎡ 이내의 노후·저층 주거지를 블록 형태로 묶어 개발하는 형태다. 개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소규모 노후 주거지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데다 용도지역 상향, 일부 인허가 절차 통합과 같은 인센티브가 주어져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는 2022년 모아타운사업을 시작하면서 2025년까지 사업 예정지 100곳 선정을 목표로 했는데, 이미 97곳이 선정됐다. 소규모 노후 주거지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목표를 조기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모아타운으로 선정된 이후 사업 추진은 답보 상태다. 주민들의 사업 찬성률이 평균 30%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사업성 높이려면 채산성 확보 먼저…재초환·분상제 규제부터 확 풀어야 모아타운으로 선정된 이후에는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다음 단계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부터 막힌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곳곳에서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광진구청이 지난해 7월 공개한 자양4동 주민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 15.1%가 사업에 찬성한 반면 48.2%는 반대했다. 더구나 사도(개인 소유 도로나 골목길) 지분쪼개기(1개의 소유권을 여러 개로 나눠 여러 명이 소유) 등 선정지 내 투기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가 올해 3월 모아타운 선정지 내 투기 행위에 대해서 전수 조사한 결과 9곳 14개 필지가 모아타운으로 선정된 이후 지분쪼개기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최근 투기를 막고 주민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모아타운 선정 방식을 자치구 공모에서 주민제안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동안은 주민 30% 이상만 참여하면 공모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주민제안을 위해서는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와 함께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 또는 주민제안 때 사도에 대해 부동산실거래내역을 조사해 지분쪼개기가 적발되면 선정에서 제외키로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투기를 잡겠다며 진입 문턱을 높여 사실상 신규 사업지가 나오기 힘들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소규모 노후·저층 주거지는 정비가 정말 시급한 곳이 많은데 이해관계가 복잡해 동의율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등 다른 투기 방지 방안도 있는 만큼 초기 문턱을 낮춰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4.09.28 01:26

  • '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  신통치 못한 ‘신통기획’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 시범 아파트에 신통기획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오유진 기자 # “속은 거 맞잖아요. 용적률 높여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데이케어센터(노인돌봄시설) 얘기를 꺼낸 거니까.”(여의도 시범아파트 주민) 서울시 1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사업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 외벽에는 1년 넘게 ‘신통기획 1호 속았다!’ ‘무리한 기부채납!’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내놓은 신통기획안에 단지 내 데이케어센터 건립안이 포함된 것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현수막이 붙은 지 오래지만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은 답보 상태다. 시범아파트 내 S부동산 관계자는 “서울시 요구대로 신통기획안을 따르지 않으면 재건축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민들은 (신통기획으로) 사업이 순항할 것이란 기대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더 등장할지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빠른 면목7구역, 입주까지 최소 10년 #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신통기획안에 단지 내 공공보행교 조성을 제안하면서 조합원과 자치구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강북을 가로지르는 보행교가 들어서면 단지 내에 외부인이 오갈 수 있는 데다 조합원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000억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합은 2년 넘게 갈등을 지속하다 최근 보행교 계획을 배제한 자체 정비계획안을 꾸려 강남구에 제출했다. 압구정3구역 조합 관계자는 “보행교의 경우 주민이 이득을 보기 어려운 구조여서 계획안에서 제외했다”며 “당초 2031년 입주를 예상했으나 사업이 지연돼 2032~33년 입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서울 낡은 주택가 정비 ‘모아타운’ 사업도 주민 갈등 탓 진척 더뎌 사업성 높이려면 채산성 확보 먼저…재초환·분상제 규제부터 확 풀어야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신통기획이 사업 4년 차를 맞은 가운데 ‘신속’과 ‘통합’을 모두 놓친 채 표류하고 있다. 신통기획은 2021년 오 시장이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정상화를 내걸고 시작한 서울시 대표 사업이다. 서울시가 적극 개입해 통상 5년가량 걸리던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제도다. 시가 제시하는 공공·사업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면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당시 오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경직됐던 정비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신통기획을 제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42만 가구로 전체 아파트의 25.6%에 달하는데, 서울시는 이런 노후 단지를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신통기획을 제시했다. 정비구역지정 기간을 줄여준 데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 사업 초기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지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4년여 가 지났지만 신통기획으로 재개발·재건축을 진행 중인 124개 지역(3월 말 기준)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2022년 내놓은 주택 공급 대책 때 2027년까지 신속통합기획으로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사업 초기 상태인 곳이 대다수다. 2027년까지 10만 가구를 공급하려면 현시점에서는 적어도 재개발·재건축이 본궤도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3월말 기준 사업의 첫 단추인 정비계획이 지정된 곳은 17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의회는 신통기획 지연 요인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당초 전체 재개발·재건축 사업 과정 중 5년가량 소요되는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2년 이내로 축소하면 공급 속도가 개선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은 추진위원회 설립, 조합 설립, 사업 인가, 이주 및 철거 등 최소 9~10여 단계를 거쳐야 해 예상처럼 ‘신속’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본지가 서울시 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412곳의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계별 소요 기간을 분석한 결과 추진위 설립 이후 착공까지는 평균 14.66년이 소요됐다. 신통기획으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당겨진다고 해도 실제 결과물이 나오려면 최소 10~1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신통기획안을 확정해 올해 1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중랑구 면목7구역은 신통기획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곳으로 꼽히지만, 실제 입주까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면목7구역 관계자는 “구체적인 이주 계획이나 착공 등의 계획을 세우기엔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며 “서울시에서도 최대한 빠른 추진을 위해 협조하고 있지만, 신통기획이라는 명칭만큼의 신속함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도봉구 쌍문3구역도 사업 속도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쌍문3구역 인근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이주를 부담스러워하는 주민이 많아 사업 속도가 더디다”며 “이주하고 착공까지 적어도 6~7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신통기획은 도시정비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서울시가 도움을 주는 만큼, 기부채납 일환으로 데이케어센터 등 공공시설 설치가 필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주민과 자치구 간 충돌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집값이 비싼 여의도나 강남·송파구 등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보행교, 덮개공원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압구정3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신통기획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엄연히 민간사업인데 이렇게까지 (서울시가) 밀어붙이는 게 맞느냐”며 “재건축을 촉진해 도시를 정비하려는 건지, 주민과의 분쟁을 키우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뉴타운처럼 희망 고문만 하다 사라질 판”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내놓은 신통기획안을 수정하거나 사업 신청을 철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신통기획 1호 사업지였던 송파구 오금동 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제시한 높은 임대주택 비율로 사업을 중단하려다 전용면적 변경 등으로 비율을 낮춰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각각 2022년과 2023년 신통기획을 추진했던 강남구 대치동 선경1·2차 아파트와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 아파트는 주민 반대로 아예 신통기획을 철회, 일반 재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놓고선 서울시의 요구 사항만 한가득이었다”며 “신통기획은 과거 뉴타운처럼 희망 고문만 하다 또 사라질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부동산 공사비 상승,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서울시가 당초 예상한 사업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0.1로 2021년 7월 대비 15.7% 상승했다. 김태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추정분담금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오른 추가분담금을 과연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느냐가 큰 문제”라며 “(시의회에서) 서울시에 용적률 추가 상향, 기부채납 비율 완화 등을 제안하고 있으나 추진 동력이 약화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공급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며 “기획 이후 주민 갈등까지 서울시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신통기획의 성공 여부는 서울시가 얼마나 합리적인 타협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며 “임대주택이나 기부채납 비율을 양보할 수 없다면 임대주택 매입 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사업 이탈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4.09.28 01:21

  • 사업성 높이려면 채산성 확보 먼저…재초환·분상제 규제부터 확 풀어야

    사업성 높이려면 채산성 확보 먼저…재초환·분상제 규제부터 확 풀어야

     ━  신통치 못한 ‘신통기획’   서울시 신통기획의 핵심은 절차 간소화를 통한 재개발·재건축(도시정비사업) 사업기간 단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4·7 보궐선거를 승리한 직후 ‘6대 재개발 규제 완화’를 발표했는데, 첫 번째가 재개발 대상 확대였고 그다음이 ‘정비구역 지정기간 단축(5년→2년)’이었다. 세 번째 목표 역시 ‘동의율 확인 단계 간소화’였다. 행정절차를 최소화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의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무엇보다 ‘속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자 윤석열 정부는 올해 초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6년 만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8월에는 6년간 17만6000가구를 착공하겠다는 주택공급대책을 내놨는데, 이 대책의 핵심 역시 속도다. 수많은 절차 때문에 10년 이상 소요되는 재건축 절차를 간소화해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초기 절차를 확 줄인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통해 재건축 기간 6년 정도로 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른바 ‘재건축 패스트트랙법’을 논의 중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의 이 같은 ‘속도전’에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도시정비 전문시행사 관계자는 “사업 절차를 단순화해도 채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도시정비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업 단계 완화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잠실 주공5단지나 대치 은마 아파트가 행정절차가 복잡해서 30여 년간 답보상태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실제 잠실 주공5단지는 재건축 사업 시작 29년 만인 최근에야 재건축 정비계획 결정안을 고시했다. 이 아파트는 그동안 조합원 간 마찰, 층수 및 학교 부지 존치에 따른 논란이 일면서 재건축이 사업이 공회전을 거듭해 왔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구속되기도 했고, 사업이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는가 싶었던 은마 아파트는 최근 조합장 선출 결과를 두고 소송이 벌어지며 또다시 사업 지연 위기를 맞고 있다.   관련기사 ‘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서울 낡은 주택가 정비 ‘모아타운’ 사업도 주민 갈등 탓 진척 더뎌 재건축과 달리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 대비 토지주가 많은 재개발은 더 어렵다. 재건축처럼 대지지분(새 아파트를 받을 권리)이 일정하지 않아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는 “절차 간소화 자체도 의미는 있지만 그보단 주민 간 이견을 중재하고 사업 채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공사 중단 위기를 맞았던 반포 주공1단지 아파트 1·2·4주구는 최근 시공사와 공사비 인상에 합의했는데, 공사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서울 아파트값 상승으로 인한 채산성 확보가 꼽힌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구조상 주변 아파트값이 오르면 일반분양 분양가를 인상해 조합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오르면서 공사비를 증액해도 조합원 부담이 늘지 않을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나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를 걷어내는 것도 채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인근 집값 상승분과 비용 등을 빼고 8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고 50%를 환수하는 제도인데, 재건축 사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재초환 대상 재건축 단지는 전국 68곳에 이른다. 수도권 47곳, 지방 21곳이다. 서울에선 31개 단지에 재초환이 부과될 예정인데, 가구당 평균 부과예상액은 1억6677만원에 이른다.   정부는 재초환 폐지를 추진 중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는 기본형건축비 등으로 분양가를 제안하는 제도인데, 현재 공공택지는 물론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아파트도 대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정비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건 결국 채산성”이라며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재초환 등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4.09.28 01:17

  • 14명이나 나선 서울시교육감, 보수도 진보도 단일화 난항

    14명이나 나선 서울시교육감, 보수도 진보도 단일화 난항

     ━  10·16 재보궐선거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선 진영 마다 ‘후보 단일화’가 최대 관건인데, 난항을 겪고 있다.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단일화와 거리두는 후보가 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선 5명이 출마했다.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 홍후조 고려대 교수 3인이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달 20~22일까지 여론조사를 해 23일 최종 1인을 가린다는 계획이지만 단일화를 주도하는 통합대책위(통대위)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후보도 있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윤호상 전 서울미술고 교장, 김영배 전 상명대 특임교수는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진보 진영에선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추진위)’가 25일 확정을 목표로 단일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상자가 줄고 있다. 초기엔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경범 서울대 교수, 김용서 교사노조위원장,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안승문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등 8명이었는데 두 사람(김경범·김용서)이 출마 의사를 접었고, 김재홍 전 총장이 단일화에서 빠졌다. 김 전 총장은 12년 전 선거 비리로 당선 무효형을 받은 곽 전 교육감의 출마에 대해 “공동체 내 부적격 출마자를 가리는 자정을 기대했으나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5명이 된 것이다.   야권 성향이나 아예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는 출마자도 생겼다.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전 이화여대 교수와 소설 『범도』를 쓴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출마 선언을 했다. 앞서 최보선 전 서울시교육의원도 진보 진영의 단일화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보선은 조희연 교육감이 해직 교사 특혜채용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치러진다. 2006년 교육감 직선제 도입 후 당선된 서울시교육감 4명 모두 유죄를 받는 불명예다. 이에 따라 교육감 선출방식을 바꾸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강화에선 보수, 영광·곡성에선 진보 ‘집안 싸움’ 대안으로 빈번하게 거론되는 게 광역단체장 후보와 시교육감 후보의 ‘러닝메이트’제다. 윤석열 대통령도 임기 첫해인 지난 2022년 12월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러닝메이트로 출마하고 지역 주민들이 선택한다면 지방 시대, 균형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페이스북에 “교육감 선출 방식의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며 같은 방식을 거론했다.   2006년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는 과거 교육위원과 학부모 대표가 교육감을 뽑던 간선제 방식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였다. 당시 선거인단이 소수다보니 밀실 합의, 금품 비리 등이 발생했다. 현 방식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공천이란 거름망이 없는 가운데 발생하는 후보자의 난립, 낮은 인지도와 주민의 무관심으로 인한 대표성 문제, 합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가운데 발생하는 후보당 수십억원의 선거비용 등이 그 예다. 시·도지사 후보자가 교육감 후보자와 함께 출마한다면,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러닝메이트제 옹호론자들의 생각이다.   다만 러닝메이트제의 경우 사실상 교육감 후보를 정당이 결정해 정치 개입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금도 없다곤 할 수 없으나, 러닝메이트제가 되면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셈이어서다.   교원단체들은 이 때문에 대체로 러닝메이트제에 부정적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강원도가 전국 최초로 도지사와 교육감을 한 조로 묶어 선거를 치르는 러닝메이트제 법제화를 추진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5개 교원단체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현재 교사의 정당 가입도 제한되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감을 특정 정당의 사실상 공천을 받아서 운영하는 것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내 논의도 맴돌고 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직선제를 러닝메이트제로 바꾸는 관련법 개정안을 지난 4일 발의했지만, 입법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반대한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직선제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적 상징성이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지금의 직선제를 고수할 순 없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은 수십억대 선거비용에 빚쟁이가 되거나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부정적인 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며 “직선제는 본래의 의미를 퇴색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9.21 01:14

  • 강화에선 보수, 영광·곡성에선 진보 ‘집안 싸움’

    강화에선 보수, 영광·곡성에선 진보 ‘집안 싸움’

     ━  10·16 재보궐선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전남 영광에서 지지세력 결집에 나섰다. 지난 16일 장세일 후보와 전통시장을 방문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민주당] 10·16 기초단체장 재·보선이 치러지는 곳은 4곳이다. 국민의힘(부산 금정구)과 더불어민주당(전남 곡성군)이 각각 한 곳씩 이겼지만 나머지 2곳(인천 강화군, 전남 영광군)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2년여 흐른 이번에도 양당의 우세가 압도적인 건 아니다.   유천호 군수의 작고로 치러지는 강화 보선에선 국민의힘 출신들끼리 싸운다. 국민의힘이 1·2차 경선을 거쳐 확정한 후보는 박용철 전 인천시의원이다. 박 후보는 “14년간 인천시의원과 강화 군의원으로 강화군 구석구석을 뛰어서 강화군정에 누구보다 해박하다”는 걸 앞세운다.   오랫동안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탈당, 무소속으로 맞선다. 예비후보 때엔 국민의힘 소속이었지만 공천 과정에 불참했다. 민선 3·4기 인천시장과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그는 “국민의힘 인천시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선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못해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인천시당은 “안 전 시장은 강화군수 후보자 공천신청도 하지 않는 등 본인 스스로 심사 및 경선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14명이나 나선 서울시교육감, 보수도 진보도 단일화 난항 국민의힘 출신 간 싸움의 틈을 더불어민주당 한연희 후보, 무소속 김병연 전 인천시장 지역협력특별보좌관 등이 파고들고 있다.   강화군에선 2년 전 지방선거 때에도 내분이 있었다. 일부 인사들이 반발하자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유 군수가 탈당,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당시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는 없었다.   영광과 곡성에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조국 대표 등이 해당 지역에서 월세를 살면서 선거운동을 벌이자 민주당도 긴장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19일 장현 후보와 함께 출근 인사를 하는 모습. [뉴스1] 먼저 고공전을 펴는 건 조국 대표다. 그는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곡성의 토란 농장에서 일하고 막걸리를 함께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19일엔 영광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호남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의가 민주당보다 더 강하고 높아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은 영광군수 후보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입당한 장현 전 호남대 교수, 곡성군수 후보로는 박웅두 당 농어민위원장을 공천했다.   영광군수 후보에 장세일 전 전남도의원, 곡성군수 후보에 조상래 전 전남도의원을 공천한 민주당은 호남 최다선 국회의원인 박지원 의원(5선, 해남-완도-진도)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수성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도 호남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연다.   호남에선 주도권을 두고 연신 다투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지만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선 단일화 여부를 두고 ‘밀당(밀고 당기기)’ 중이다. 금정이 국민의힘 강세 지역이라 야권 다자구도에선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당에선 변호사 출신인 김경지 지역위원장, 조국혁신당에선 류제성 전 민변 사무차장을 공천했다. 류 후보는 19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금 당장 단일화 테이블로 나와 윤석열 심판의 대의에 동참해 달라”고 목소리를 키웠다.   국민의힘에선 경선 과정을 거쳐 윤일현 후보가 본선에 진출했다. 세무사 출신인 윤 후보는 구의원 3선을 지내 지역을 잘 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에선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20%, 한국갤럽 13일자)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한 게 부담이다. PK(부산·울산·경남)에서도 잘한다는 여론이 21%에 그쳤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9.21 01:08

  • 트럼프의 북핵 접근법은 톱다운 방식…해리스는 한·미·일 협력으로 대북 압박

    트럼프의 북핵 접근법은 톱다운 방식…해리스는 한·미·일 협력으로 대북 압박

    지난 10일 ABC방송이 주관한 TV 토론에서 드러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 한반도 접근법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해리스는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반면,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 시절 대북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강조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김정은과 러브레터들을 교환했다”면서 “독재자들이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길 응원하는데, 왜냐면 그들이 아첨과 호의로 (트럼프를) 조종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라”고 응수했다. 자신의 재임 시절 김정은과 세 차례 만나면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동결시켰다는 주장을 부각시킨 것이다. 앞서 열린 민주·공화 전당대회에서도 해리스는 “나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과 같은 폭군이나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고, 트럼프는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재집권하면 나는 김정은과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두 후보 중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와 안보지형은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먼저 북·미 관계의 변화 여부다. 트럼프는 여전히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김정은과 잘 지낼 것” “긴장 풀고 야구나 보러 가자고 제안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서 보듯 트럼프는 독자적인 톱다운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칭한 해리스는 그와의 직접적인 접촉 대신 한국·일본과의 삼각 협력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트럼프 당선 땐 북·미 간 최악의 딜 경계해야” “누가 대통령 되든 우리 기업엔 부정적 영향”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에서도 두 사람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해리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려는 외교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을 요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트럼프는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를 검토하면서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군까지도 염두에 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을 압박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는 등 한반도 주변 분위기가 달라질 경우 바이든 정부 때 강화됐던 북핵 대응을 위한 확장억제(핵우산) 등이 다소 느슨해질 수도 있다.   경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중국 견제라는 기본적인 틀이 유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국과 교역 규모가 큰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차기 정부에 따라 그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반도체 산업에 있어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고, 트럼프는 보다 강화된 자국 반도체 육성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산업에서 해리스는 적극적인 지원을, 트럼프는 지원 반대를 천명했으나 관련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현재는 다소 완화된 모습이다. 또 트럼프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에게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천명해 한국 등을 긴장시키고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4.09.21 00:59

  • "트럼프 당선 땐 북·미 간 최악의 딜 경계해야" "누가 대통령 되든 우리 기업엔 부정적 영향"

    "트럼프 당선 땐 북·미 간 최악의 딜 경계해야" "누가 대통령 되든 우리 기업엔 부정적 영향"

     ━  [미국 대선 D-45] ‘해리스·트럼프 한반도 정책’ 전문가 대담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오른쪽)와 서정건 경희대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정책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다. 최영재 기자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일 ABC방송이 주관한 TV 토론 이후 해리스가 근소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지만 오차 범위 내로 현재로선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 두 후보는 그동안 전당대회와 전국 각지 유세를 통해 차별화된 정책을 내세우면서 표심을 끌어들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 두 후보가 내세운 경제, 외교, 이민, 낙태 등과 관련된 정책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반도 정책도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대미 정책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할 경우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와 트럼프의 정책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과 관련해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와 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 등 전문가 2명의 분석과 전망, 대책 등을 들어봤다.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재집권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북·미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박인휘=“트럼프는 자신이 세계에서 김정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반영돼 현재 대북 기조와는 크게 다른 정책이 나올 것이다. 이 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북·미 관계는 대폭 개선되거나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서정건=“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2기 행정부는 가장 중요한 첫해인 2025년에 주로 중국 견제, 우크라이나 전쟁, 국경 문제, 관료제 등 산적한 이슈에 골몰할 것이다. 북한 이슈는 2026년 중간선거 이후에 자신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도 대미정책 변화에 주저할 가능성 지난 18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뉴욕 유세장에서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강경하다. 혹시 트럼프의 정책과 충돌하는 경우는 없을까. 박=“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할 부분은 지난 2016년 대선에 임했던 트럼프 캠프와 현재 대선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 캠프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트럼프 주변 전문가들이 이전보다 매우 정교하게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졌다.” 서=“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만나려고 할 때 소위 ‘나쁜 딜(bad deal)’이 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수집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또 미국의 행정부, 의회, 언론, 정당 등을 대상으로 공공 외교를 적극 펼쳐야 한다.”   관련기사 트럼프의 북핵 접근법은 톱다운 방식…해리스는 한·미·일 협력으로 대북 압박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해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인가. 박=“선거 유세 과정에서 나온 멘트라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언론 브리핑이나 회담이었다면, 트럼프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토릭 차원에서 던진 말로 봐야 한다.” 서=“트럼프 개인이 지지자들 앞에서 행한 발언을 공식적인 외교 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김정은 위원장이 내심 트럼프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을 것 같은데, 트럼프 재집권 시 북한의 대미 정책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박=“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해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외교 담판을 해봤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기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북한 핵무기에 대해 최종적으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로 인해 오히려 김정은이 대미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승리하면 또다시 주한미군을 담보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가 거론될 것 같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박=“트럼프 재집권 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공화·민주를 막론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선호하는 미국인들의 정서도 우리 정부에겐 부담이다. 일정 부분의 인상은 수용하되, 거기에 합당한 반대급부를 얻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보다 강력한 핵우산 등이다.”   카멀라 해리스 국내에선 자체 핵 보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가 거론되기도 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트럼프 집권 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노려볼 만한 이익은 무엇인가. 서=“공화당 쪽에서 나오는 얘기다. 핵 정책에 있어 민주당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미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원자력과 관련해선 미 의회의 입법이 중요한데, 우리가 미 의회를 설득해서 핵 보유를 얻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는 경제 대책도 내놓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짓는 공장에 대한 보조금의 근거가 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환경과 무관한 사기”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되는데, 대책은. 박=“두 가지 대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실제 산업 정책은 의회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에 의원 외교 등을 통해 미 상·하원의 의사결정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 한국 기업과 공장이 있는 미국 지역구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둘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이 미 국민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해 기업 가치와 이미지를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트럼프는 전당대회 수락연설에서 “동맹국들이 우리를 이용했다. 미국에서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100~200% 관세를 부과해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여기엔 한국도 포함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서=“보복 관세 정책에 집중하는 트럼프와 달리 민주당 쪽은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다소 유연한 입장이다. 어느 정당이 정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린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16년에 당선됐던 트럼프는 캘리포니아주의 환경 규제에 대해 무력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소송으로 시간만 끌다가 결국 유야무야됐다. 대통령과 의회, 양대 정당뿐만 아니라 주 정치와 사법 시스템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해리스의 대북정책은 트럼프와 크게 다르다. 바이든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덜 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가 집권할 경우 대북정책은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나. 서=“해리스가 집권한다면 우선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후에 순차적으로 북한 정책에 대한 리뷰가 내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미국 내에서 어떻게 얼마나 정치 쟁점이 될 것인가에 따라 향후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박=“같은 민주당 소속이라는 차원에서, 큰 틀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3일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김정은에 대한 접근 방식도 트럼프와 다를 것 같다. 해리스는 “독재자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해리스와 김정은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으로 전망하나. 서=“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은 외국의 독재자와 만날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 왔다. 이는 민주주의 수호 및 독재 반대라는 민주당의 이념적 지향과 대통령으로서의 외교 리더십 간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모두 독재자를 만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해리스는 해외 독재자들, 특히 김정은을 거론하면서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여성 후보로서 군사·안보 이슈에 강한 면모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국제 관계 해법에 있어 트럼프와 대척점에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해리스가 집권할 경우 북한의 대미 정책은 어떻게 전개될까. 바이든 정부 때의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북한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까. 서=“북한의 경우 일단 핵 능력의 고도화와 ICBM 완성이 최대 관심사다. 이를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미국과의 만남에 열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확장억제 전략을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해리스가 승리한다면 북한의 대미 정책은 현재와 같은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민주당 쪽은 보조금·세제 혜택 다소 유연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등과 관련된 정책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가. 서=“확장억제와 관련해선 북한 핵에 대한 한·미 공조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가가 중요하다. 핵 공유에 부정적인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핵협의그룹(NCG) 방식의 핵 공동 대응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다.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선 트럼프 정도는 아닐지라도 지속적인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의 지위와 관련된 변화는 적어도 해리스 정권 하에서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확장억제,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등과 관련된 정책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해리스는 동맹에 대한 인식도 트럼프와 다르다. 한·미·일 3자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바이든 시대에 강조되기 시작한 격자형 동맹 방식, 혹은 소다자주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미국 주도 리더십을 확실히 유지하면서도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선호해 온 일종의 다자주의적 접근을 가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실용적인 참여 입장에 대해 미리 검토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박=“한·미·일 협력 강화가 유지될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강조된 만큼, 이 전략의 성공 조건 중 하나인 한·미·일 협력이 앞으로도 중시될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관세 등과 관련해서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은. 박=“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다.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산업 전반과 연동된 측면이 강해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마켓 전체에 대한 전략과 고려가 필요하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노동자들의 입장을 적극 고려하는 민주당 전통을 감안할 때 한국 경제에 미칠 피해가 다소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세의 경우, 해리스나 트럼프나 비슷한 정책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4.09.21 00:59

  • 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하드 보일드 액션, 그가 장르다

    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하드 보일드 액션, 그가 장르다

     ━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영화 ‘베테랑2’ 촬영 현장에서 배우 황정민(왼쪽)에게 연기 디렉션을 하는 류승완 감독. [사진 CJENM] 약 30년전인 1997년 쯤,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청년이었던 음악감독 조영욱은 불현듯 ‘난장 영화제’라는 것을 기획했고 예술의전당, 그것도 토월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예술의전당에서 그런 상영회가 가능했다. 요즘처럼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 상영을 하던 시절이었다. 필름 수급, 곧 영화사에서 예술의전당까지의 필름 배달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조영욱은 발 빠르고 똘똘한 아르바이트를 구하자고 했고 단박에 류승완이란 이름이 나왔다. 당시 류승완은 20대 초반이었고 뭐든지 해야 할 때였다. 조실부모했고, 가난했으며, ‘변질헤드’라는 단편을 연출했지만 이곳저곳에서의 연출부 일만으로는 생계가 힘든 때였다. 단 몇 푼이라도 아쉬울 때였다. 마침 그는 오토바이를 몰 줄 알았다. 류승완은 바로 합류했다.   십자인대 끊겨 이젠 고난도 발차기 못해 서도철 형사 역의 황정민. [사진 CJENM] 그런데 사단이 났다. 영화 한편은 보통 필름 4캔 분량이다. ‘워킹&토킹(Walking&Talking, 1996)’이었는지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Welcome to the Dollhouse, 1997)’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류승완은 세 번째 캔을 빼놓고 배달을 했고, 그걸 체크하지 못한 어리숙한 젊은이들은 그대로 영화를 상영했으며, 이상하게 영화가 짧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모 평론가는 영화적 생략과 점프 컷의 의미를 설명해 가며 매우 예술적인 작품이라는 식의 GV(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영화제를 만든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쉬쉬하며 숨기기에 바빴다. 류승완 혼자 엄청 당황해 했음은 물론이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고해, 뒤늦은 진술은 해당 영화 두 편을 수입했던 영화사 올리브 커뮤니케이션 윤명오 이사의 빈소에서 이루어졌다. 윤씨는 지난해 8월 타계했고 빈소에는 류승완·조영욱·박찬욱 등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모두들 외롭고 엄숙했던 빈소에서 서로 그러지 말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결국 이 때의 얘기를 하면서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가난했던 아이 류승완의 꿈은 한국의 이소룡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액션 키드가 되는 것. 그가 자신의 영화 ‘짝패’(2006)에서 스스로 540도 발차기를 선보인 것을 보면 처음엔 연출보다 액션 연기에 관심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배우로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적이 많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는데 현관에 들어서서 철가방을 턱 내려놓고 짜장면과 단무지를 척척척 꺼내는데 그 액션 각이 경력 10년 차 정도되는 ‘철가방’ 그 자체였다. 영화 ‘짝패’에서는 아예 주연급으로 영화 전체에서 활약한다. 그는 이 영화 촬영 도중 부상을 당했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국내 스턴트 액션의 1인자이자 역시 ‘짝패’에서 주연을 맡았던 정두홍에게서 위로의 전화를 받는다. 정두홍은 “십자인대만 괜찮으면 돼. 걱정마”라고 했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십자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류승완은 이제 540도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   유럽의 평론가들에게 한국의 감독들의 어떤 점이 주목을 끌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국 영화에 정통한 몇몇은 한국 영화감독들에게서는 ‘고유한 독특함(uniqueness)’이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다. 박찬욱의 ‘올드 보이’는 박찬욱만 찍을 수 있고 봉준호의 ‘괴물’은 봉준호만이 찍을 수 있는데 액션 장르에 있어 류승완의 영화는 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실제로 액션의 서스펜스 측면에서 ‘모가디슈’의 탈출 장면 같은 스트리트 몹 씬(mob scene)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은 한국에 류승완 밖에 없다. ‘베를린’같은 첩보 스릴러를 구상하고, 각본을 쓰며, 연출을 할 수 있는 감독 역시 류승완 밖에 없다. 류승완은 어느덧 류승완식의 전쟁역사액션, 첩보 스릴러, 수사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류승완표라는 라벨이 생겼고 스스로 장르가 된 감독이 됐다. 이제 그의 영화는 류승완 장르로 분류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던 27살이래 지난 24년간 그는 연출과 제작, 출연까지 합하여 40편이 넘는 영화에 관여해 왔다. 류승완은 1973년생이다. 그도 50을 넘겼다.   박선우 형사 역의 정해인. 시종 두 배우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 이어진다. [사진 CJENM] 최근 개봉한 ‘베테랑2’는 개봉 6일 만에 400만 명을 모았다. 주말을 넘기는 개봉 열흘 째에는 600만 관객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이라면 천만 각이다. 물론 극장들의 탐욕, 과도한 스크린 몰아주기 덕도 톡톡이 보고 있지만 극장 측으로서는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될 영화에 몰아 주고 돈을 벌겠다는 심산이다. 그들이 봤을 때 ‘베테랑2’는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이다. 류승완·황정민·정해인의 이름값이 정상급이고 무엇보다 영화의 콘텐트가 받쳐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베테랑2’가 이전의 1편(2015)에 비해 못 하다느니 하는 지적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비판의 각도가 조금 어긋나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섬세하게 품질론을 내세울, 그런 류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는 늘 재미와 의미의 비중을 적절한 비율로 섞되 재미를 의미보다 앞에 세운다. 이 영화의 빌런(악당)이 지닌 서사가 없다는 지적들을 많이 하지만, 그래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들을 하지만 만약 이 자경단같은 연쇄살인마의 앞선 이야기, 그가 왜 살인마가 됐는지를 구구이 설명하려면 이 영화는 OTT 드라마로 갔어야 했을 것이다. 2시간 안쪽의 영화에서 감독은 늘 이야기의 어디를 강조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류 감독, 24년간 40편 넘는 영화에 관여 류승완은 이번 ‘베테랑2’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가족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서도철의 아들은 학교에서 학원폭력의 피해를 당하며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서도철 본인 역시 연쇄살인마(이지만 한국의 사법제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 흉악범 강간범 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종의 응징자)를 쫓으면서 범인의 행동에 조금이나마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을 때리는 애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도철은 선을 넘지 않는다. 아들을 때리는 아이들도 원칙적으로 처리한다. 매맞는 아들을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범인이다. 그래서 범인은 범인이고 형사는 형사이다. 이것이야 말로 ‘베테랑2’가 보여주는 단순명료한 주제이다.   류승완이 이번 영화에서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라면 먹는 장면이다. 찢어지고 부르트고 시퍼렇게 멍이든 얼굴로 서도철은 라면을 끓인다. 그는 자신처럼 얼굴이 깨지고 찢어진 아들(변홍준)을 식탁으로 부른다. “여 와서 한 젓갈 해. 아 한 젓갈만 해. 얼릉!” 자고 있던 아내(진경)가 깨고 라면을 한 입 뺏어 먹으며 “어우 짜. 애한테 이렇게 짠 걸 멕이고 아이 참”이라고 투덜거린다. 류승완이 ‘베테랑2’로 복구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대의 가족주의이며 평범한 가정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것이 바로 1편과 2편의 차이이며 어떤 사람들은 1에 비해 2는 ‘한 방’이 없다고 말하지만 류승완은 그걸 어쩌면 의도적으로 없앤 것으로 보인다. 격정의 한 방보다는 여운과 여유의 아우라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류승완도 나이를 먹었고 애들이 많이 컸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눅눅해졌다.   황정민과 류승완은 영화를 통해 숱한 교감을 이루어 낸다. 서로가 서로의 얼터 에고이다. ‘베테랑1, 2’ ‘부당 거래’, 류승완이 제작한 ‘인질’ 등을 통해서이다. 언뜻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보여도 황정민이 그간 보여 준 많은 액션 연기, 곧 ‘크로스’와 ‘길복순’ ‘교섭’,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의 액션연기가 류승완과의 그간의 작업이 없었다면 밑바탕이 튼튼했을까. 황정민-류승완 조는 이제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감독 류승완과 배우 황정민 콤비의 결정적인 장면은 ‘베테랑2’의 후반부이다. 서도철은 절뚝거리며 터널 벽을 기대고 앉는다. 막 범인과의 격렬했던 일합을 끝낸 상황이다. 그의 입에서는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아 힘들어, 아후 힘들어 죽겄네.” 그러면 차츰 동료 형사들이 슬금슬금 옆으로 와 앉는다. 팀장(오달수)과 팀원들(장윤주·오대환·김시후)도 어구어구 힘들어 하는 표정들이다. 황정민의 그 지친 표정은 류승완이 지난 시절 영화를 만들며 여기까지 온 지친 마음을 대변한다. 감독과 배우는 그런 식으로 교감한다. 류승완의 하드 보일드 액션의 원더랜드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2024.09.21 00:21

  • 투란도트·탄호이저…100만원 티켓도 떴다, 뜨거운 오페라 시장

    투란도트·탄호이저…100만원 티켓도 떴다, 뜨거운 오페라 시장

     ━  하반기 오페라 빅매치   하반기 오페라 시장이 유례 없이 뜨겁다. 최근 예술의전당 ‘오텔로’와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가 전초전을 치렀고,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민간 프로덕션들의 ‘투란도트’ 빅매치에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한 스타들이 몰려온다. 서구의 메이저 극장들이 관객 노령화로 침체되는 반면 관객 저변 확대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돌파구를 찾는 걸까.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 공연 중 소란 일으킨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오른쪽)와 테너 김재형. [사진 세종문화회관] 지난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 무대에 선 ‘세기의 디바’ 안젤라 게오르규가 테너 김재형의 앙코르에 자존심이 상해 패악을 부렸다. ‘질투의 화신’ 토스카에 제대로 빙의한 셈인데, ‘게오르규가 게오르규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그의 ‘성깔’은 악명 높다. 2016년 빈 슈타츠오퍼에서도 최고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에게 질투해 비슷한 소동이 있었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인 무대였다. 환갑을 맞은 게오르규의 사실상 ‘마지막 토스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토스카의 대명사’답게 빛바랜 가창력을 연기로 커버하는 내공이 빛났고, 8년 만에 만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도 찰떡호흡이었다. 폭행 전력 탓에 비호감 신세였던 김재형은 해프닝 때문에 되려 ‘파바로티의 재림’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예술의전당 기획 프리미엄 오페라 시리즈 ‘오텔로’에 출연한 테너 이용훈.(오른쪽). [사진 예술의전당] 오페라시장이 세계적인 스타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달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1주일간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로 변신했다. 지난해 ‘노르마’에 이은 예술의전당 프리미엄 오페라 시리즈로 로열오페라 ‘오텔로’를 가져온 것. 2017년 요나스 카우프만의 오텔로 데뷔작으로 영상까지 발매된 핫한 버전이었다. 카우프만과 어깨를 견주는 테너 이용훈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마에스트로 카를로 리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을 믿기 힘들 만큼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올해 개막공연이었던 ‘투란도트’. [사진 솔오페라단] 10월부터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빅매치까지 예고돼 있어 과열 기미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민간 프로덕션들이 100억원대 제작비를 내세운 ‘투란도트 vs. 투란도트’다. 솔오페라단은 110년 전통의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최초 내한을 추진했고, 박현준 한국오페라협회장이 꾸린 프로덕션은 2003년 서울월드컵경기장 야외오페라의 흥행을 재연한다며 ‘어게인 2024 투란도트’로 명명했다. 두 프로덕션 사이 아티스트 중복 계약 등 잡음도 있고, 각각 55만원과 100만원으로 책정된 티켓 최고가도 역대급이라 화제 만발이다.   솔오페라단은 다니엘 오렌 음악감독의 지휘로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 개막공연을 세트째 가져와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1만석 규모의 KSPO돔을 채운다. 고전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감독으로 유명한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프로덕션으로, 폭 46m에 높이 18m의 무대에 오케스트라를 제외한 출연진이 500여 명에 달하는 초대형 공연이다. 올가 마슬로바 등 세계적 스타 외에 한국인 최초로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전여진도 만날 수 있다.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12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7000석 규모의 코엑스홀에 ‘황금의 성’을 짓는다. 폭 45m, 높이 17m, LED 스크린을 활용한 무대에 200억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붓는다. 올해 라스칼라 극장의 뉴 프로덕션을 만든 다비데 리버모어가 연출을,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쿠라 등이 지휘를 나눠 맡고,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등 14개국 오페라 가수들이 집결하는 페스티벌 스케일이다.   박현준 한국오페라협회장은 “유럽도 극장 시스템은 어렵고 페스티벌 콘텐트만 살아남는다. 매년 유명 가수들이 찾아오는 페스티벌 규모로 열어 세계 오페라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대형 오페라는 단점도 있다. 이용숙 오페라평론가는 “세계적인 가수가 내한해도 마이크를 써야 하니 관객이 원하는 소리는 아니다. 화제성을 낳고 저변을 확대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품질 면에서 좋은 공연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정호 공연평론가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민간 자본이 스타를 동원한 전막 오페라의 고가 티켓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실내체육관과 이벤트 시설에서 어쿠스틱보다 볼거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베로나 원형극장이나 브레겐츠 축제처럼 관광 자원을 활용한 야외 오페라의 아우라는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야외 오페라의 운치는 올해 3회째를 맞는 서울문화재단의 ‘한강노들섬클래식’ 축제가 담당한다.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로 꼽히는 비제의 ‘카르멘’(10월 19~20일)이 전석 무료인데, 지난해 ‘세비야의 이발사’가 야외 오페라의 각종 제약을 뛰어넘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줘 기대치가 훌쩍 높아졌다. ‘팬텀싱어’ 테너 존노의 전막 오페라 주역 데뷔도 화제다. 지난해 온라인 예매가 30초만에 매진돼 올해는 객석의 10%를 65세 이상을 위한 전화예매로 받았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초청한 비발디 오페라 ‘광란의 오를란도’. [사진 이탈리아페라라시립오페라극장] 사실 오페라 마니아들의 관심은 따로 있다. 성숙해진 시장은 베르디·푸치니를 넘어선 레퍼토리를 요구한다. 올해 21회째를 맞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대중성보다 다양성에 방점을 찍는다. 지난해 ‘살로메’‘엘렉트라’ 해외 프로덕션으로 호평 받았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표작 ‘장미의 기사’(10월 4~5일)를 국내 프로덕션으로 30년 만에 선보인다. 왈츠 선율이 흐르는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다. ‘니벨룽의 반지’ ‘엘렉트라’ 등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스페셜리스트인 에반-알렉시스 크리스트가 지휘를, 세계적인 테너 출신 조란 토도로비치가 연출을 맡았다. 비발디 ‘광란의 오를란도’(10월 11~12일) 아시아 초연도 흥미롭다. 카운터테너와 콘트랄토가 나오는 이색적인 바로크 오페라로, 이탈리아 페라라시립오페라극장의 최신 프로덕션이다.   국립오페라단의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원어 버전 전막 오페라로는 처음 제작하는 바그너 ‘탄호이저’(10월 17~20일)로 바그네리안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한다고 나섰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주목 받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의 2021년 대구오페라축제 ‘니벨룽의 반지’에 이은 바그너 재도전이다. 국립은 내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 등 바그너 시리즈를 이어간다.   올해 대작 풍년이긴 하지만 오페라 시장의 파이는 아직 작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상반기 공연시장 현황 분석에 따르면 성악 및 오페라 공연의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54.8%가 증가해 다른 장르에 비해 상승세이긴 하나 절대적인 수치는 기악 공연의 절반 수준이다. 이용숙 평론가는 “코로나 기간 오랜 적체 탓에 공연이 많을 뿐 시장이 커졌다는 실감은 없다”면서 “세계적인 프로덕션이나 전설의 디바를 끝물에라도 보여주는 의미는 있지만 시장이 좋아지려면 매력적인 신작 프로덕션이 많아야 한다. 올해 ‘한여름 밤의 꿈’ ‘죽음의 도시’ 등 용감하게 현대 오페라 신작을 만들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처럼 레퍼토리를 확장해야 새 바람이 불 것”이라고 진단했다.   K오페라의 도약을 위해선 아티스트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손수연 오페라평론가는 “세계 오페라계가 불황이라 한국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외국 가수 초청을 넘어 콩쿠르에서 입상한 한국 가수들의 세계 주요 극장 진출이 많아져야 K오페라 르네상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호 평론가도 “세계적 톱스타들이 인정하는 오페라 지휘자가 정명훈에 머물러 있다”면서 “해외 지휘자에 의존하는 제작 시스템은 여전히 한국이 오페라 변방임을 보여준다. 해외 인력을 통솔해 전막을 끌고 갈 수 있는 오페라 지휘자 양성에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9.14 01:03

  • 왕실 추석 차례상, 술·과일·포·식혜·국수 정도로 단출했다

    왕실 추석 차례상, 술·과일·포·식혜·국수 정도로 단출했다

    최근 SNS에 ‘추석과 담배는 백해무익이니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이에 호응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추석은 수확의 계절을 맞아 풍년을 감사하며 햇곡식으로 밥과 떡과 술을 빚어 조상에게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민족 최대 명절이다.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조상과 대지의 신에게 감사하는 그야말로 즐거운 날인데 없어져야 한다는 과격 발언은 왜 나오는 걸까. 추석 차례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한상 가득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주부의 고달픔이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복잡한 의례를 솔선수범해 왔던 종가에서도 간소한 추석 차례상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왕실에선 추석 차례상 제물로 목면(메밀국수)을 올렸다. [사진 온지음] 복잡한 제사 상차림 규칙이나 전통은 오히려 민족이 지켜온 의례 상차림의 존재 이유와 의미마저 혼란스럽게 한다. 제사상을 차리면서도 조상을 기리는 여러 기제사와 명절 차례(다례)를 이해 못하는 사림들이 많다.   당대의 제사 문화와 음식 문화를 충실하게 반영한 연구 자료로서 조선 왕실을 예로 들면, 왕실에선 제사로서의 다례(차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궁중의 제사 다례로는 탄일다례, 기신다례, 주다례, 절기다례 등이 있는데 ‘탄일다례’는 죽은 이의 생일을 맞아 이를 기리는 제사다. ‘기신다례’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다. ‘주다례’는 상례를 치르는 동안 죽은 이에게 매일 정오에 올리는 제사로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모든 행사를 치르니 크게 의미가 없다. 정초,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명절에 지내는 ‘절기다례’는 설날과 추석에 조상에게 드리는 차례가 남아 있는 정도다.   우리는 ‘메뉴’라는 외국어에 익숙하지만, 고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한글 단어 ‘발기(ᄇᆞᆯ긔)’가 있다. 특히 기록을 중시한 조선 왕실에선 상차림의 음식명을 세세히 기록한 음식 발기를 많이 남겼다. 한자로도 기록했지만 대부분 여성이 한글로 기록해 이해도 쉽다. 왕실의 중요한 행사였던 제사 상차림의 음식명을 쓴 기록은 ‘제향발기’라고 하는데,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가 정리한 ‘경우궁제향발기’가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신다례에는 8촌(24㎝) 높이의 고임 음식으로 가장 많은 제물을 올렸다. 약과, 중박계, 홍산자·백산자, 강정, 각색 절육, 오미자·율·흑임자·송화다식, 생리, 준시, 생률, 율·조·백자병, 화채, 석이단자, 약식, 전복초, 생선전유어, 해삼전, 양전유어, 간전유어, 편육, 족편, 각색누름적, 나복채, 어적·우적·전체수, 식혜, 홍합탕, 생치탕, 목면, 추청, 초장, 개자 등 30기 48종으로 상을 차렸다. 탄일다례에도 9촌(약 27㎝) 높이로 총 20기 21종의 많은 제물을 올렸다.   하지만 한식, 단오, 추석, 삭망 등 절기다례 때는 간단하게 제주(술)와 과일, 우포(쇠고기 육포), 식혜, 목면을 각 1기(그릇)씩 올렸다. 낯선 이름인 목면(麵)은 메밀국수를 말한다. 조선시대 때 밀가루보다 메밀이 더 흔한 식재료였고 이로 국수를 만들어 추석다례에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 왕실의 후궁이자 왕의 생모였던 이가 정성스레 전한 추석 차례상의 기본은 술, 과일, 포, 식혜, 국수 정도였다. 추석 차례 음식 대표로 알려진 송편도 토란탕도 제향발기에선 보이지 않는다.   올 추석엔 조선 왕실의 제향발기 대로 전통주 한 병, 과일 하나, 육포, 식혜 그리고 국수 한 그릇을 조상께 올려보자. 이리 해도 전통에 어긋나지 않는다. 물론 원래 의미대로 온 가족이 즐거운 추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2024.09.14 00:01

  • 사과·포도 대신 애플망고·샤인머스캣 '글로벌 차례상'

    사과·포도 대신 애플망고·샤인머스캣 '글로벌 차례상'

     ━  지구온난화가 바꾼 차례상   “더 빨간 게 필요하면, 애플망고는 어떠세요?”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한 청과물점. 가게를 지키던 김용국(52)씨가 “애플망고도 애플, 즉 사과니까 조상님도 이해해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좌판 위에는 새빨갛다 못해 검붉은 애플망고가 놓여 있었다. 김씨는 “차례상에 올린다며 빨간 사과를 찾는 손님이 많지만 새빨간 사과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너스레가 통했을까. 차례상에 올릴 빨간 사과를 찾던 주부는 결국 애플망고를 손에 들고 가게를 떠났다.   다음날인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도 추석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하지만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가격이 크게 뛰어 ‘귀한 몸’이 돼버린 생선엔 지갑을 닫고 돌아서기 일쑤였다. 굴비를 보러 나왔다는 주부 박현숙(55)씨는 “조기 가격이 너무 올라 차례상엔 차라리 옥돔을 올려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울상이 된 건 상인들도 마찬가지. 수산물 가게 주인 임모(62)씨는 “수온이 올라 물고기가 잡히질 않으니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니 매출도 늘지 않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굴비 가격은 전년 대비 63.5%, 조기 가격은 41.9%나 급등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추석 차례상도 크게 바뀌고 있다. 새빨간 사과는 갈수록 줄고 있고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쉽게 잡히던 조기와 명태 등은 이미 귀한 생선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홍동백서(べにひがししろ西にし·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와 ‘어동육서(さかなひがしにく西にし·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 맞춰 차례상을 차리려는 소비자들도 대체 품목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땅과 바다 가리지 않고 불어닥친 지구온난화가 차례상에 오를 과일과 생선까지 바꿔놓는 모습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사과가 빨간색을 잃어버린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열대야가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사과는 안토시아닌 색소로 인해 빨간색을 띠게 되는데, 이 색소는 섭씨 25도 이상에선 분비가 억제된다. 그런데 올여름엔 서울을 비롯해 한반도 전역에서 역대급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며 역대 최장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한현희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관은 “안토시아닌 색소는 15도의 서늘한 기후에서 활발하게 생성되는데, 야간에도 25도를 넘는 고온이 지속되다 보니 사과가 붉게 물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색소 분비에 사용될 에너지가 호흡에 사용되면서 크기만 커지고 당도는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빨간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10년까지만 해도 전 국토의 68.7%에 달했던 빨간 사과 재배 가능 지역이 2030년엔 24.8%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경상북도 등 빨간 사과로 유명했던 남부 지방에선 아예 노란 사과 등 기후변화에 적합한 신품종 육성으로 눈을 돌린 상황이다.   반면 사과를 재배하기엔 추운 기후로 여겨졌던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은 지난해 930㏊에서 올해 1600㏊로 급증했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될 경우 머지않아 전국에서 강원도만 유일하게 사과 재배에 적합한 기후대로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진흥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며 “우리가 늘 접하던 빨간 사과도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찾은 시민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열대 과일이지만 어느새 우리나라 포도 최대 품종이 된 샤인머스캣도 보인다. [뉴스1]   ‘온대 과일’이 사라진 자리를 ‘열대 과일’이 대체하고 있는 흐름도 눈에 띈다. 애플망고와 샤인머스캣·용과 등이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 등 열대 지역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여겨졌던 애플망고는 이미 제주도와 전남 영광에서, 용과는 경북 김천과 전북 김제 등에서 재배 중이다. 샤인머스캣은 어느새 국내에서 생산되는 포도 중 최다 생산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애플망고와 샤인머스캣이 사과와 포도 대신 차례상에 오르는 일도 빈번해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추석 차례상마저 ‘글로벌화’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온난화의 영향은 바다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측정한 한반도 인근 바다의 지난해 연평균 수온은 19.8도로 1990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온이 계속 상승하자 조기(굴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산으로 대체됐다. 뜨거워진 한반도 바다를 떠나 멀리 북쪽으로 이동한 명태는 이젠 러시아 정부로부터 어획 쿼터를 할당받아 잡아 오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가격이 만만찮은 탓에 일부 소비자들은 조기를 빼고 차례상을 차리거나, 옥돔 등 과거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서 주로 잡히던 어종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이 굴비 등 차례상 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사과 대신 애플망고, 포도 대신 샤인머스캣, 조기 대신 옥돔이 올라가는 차례상에 문제는 없을까. 이에 대해 성균관 측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예전에 저장이나 운송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각 지역에서 나는 품목으로 상을 차리는 게 통용됐다는 설명이다.    방동민 전 성균관 의례부장은 “중국의 옛 문헌을 보면 바나나를 올렸다는 표현이 성대한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며 “조상을 생각하며 귀한 음식을 올린다는 마음만 있다면 열대 과일로 상을 차려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2024.09.14 00:01

  • "AI 버금가는 투자처" 노화세포 제거 등 '항노화' 속속 노크

    "AI 버금가는 투자처" 노화세포 제거 등 '항노화' 속속 노크

     ━  불로장생의 꿈 성큼   엑스프라이즈는 1억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2030년까지 괄목할 만한 항노화 연구를 선정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엑스프라이즈] 불로장생은 가능한가? 인류의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연구가 전 세계에서 불붙고 있다. 이른바 항노화 연구다. 늙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을 목표로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오일 머니’를 배경으로 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물론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등 빅테크 큰손들도 나선 까닭에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버금가는 투자지”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경쟁을 부추기는 건 인류의 고령화 속도다. 2060년이면 65세 이상 세계 인구가 18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20년의 2.5배에 이를 만큼 노인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대수명이 크게 늘면서 지병 없이 오래 사는 ‘건강수명’과의 격차 해결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한국만 해도 기대수명(2014~2022년 평균)은 82.6세, 건강수명은 65.3세로 그 차이가 17.3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달아오른 관심만큼 시장도 확대일로다. 온라인 데이터 플랫폼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항노화 시장 규모는 2021년 626억 달러(약 83조8000억원) 수준에서 2027년 931억 달러(약 124조63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에 주목한 글로벌 이벤트까지 나왔다.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을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재단 ‘엑스프라이즈(XPRIZE)’는 1억100만 달러(약 1352억원)의 상금을 걸고 2030년까지 괄목할 만한 항노화 연구를 선정하겠다고 나섰다.   재단 측에 따르면 “미션은 최소 10년에서 20년 이전 수준의 근육, 인지, 면역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선 질병과 장애가 없는 65~80세 노인을 상대로 1년 이내에 시술을 마쳐야 한다. 이후 검증을 거쳐 항노화 기능상 10년이 더 젊어지면 6100만 달러(약 817억원), 15년이면 7100만 달러(약 951억원), 20년이면 8100만 달러(약 1085억원)를 상금으로 받는다.   국내 업체 피알지에스앤텍 도전장 지난 7월 접수를 시작했는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426개 팀(지난 11일 현재)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중 상당수가 대학이나 벤처 의료기업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응모한 부산의 희귀유전질환 치료제 개발 업체인 피알지에스앤텍은 “노화와 관련된 희귀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지원했다”며 “(조로증 질환인) 허치슨-길포드 조로 증후군(HGPS) 및 베르너 증후군(WS)에 대한 치료제를 연구·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현재 항노화 연구의 방향은 ▶노화 세포 제거 ▶노화를 늦추는 물질 개발 ▶세포 역노화 등 크게 세 가지다. 항노화 연구의 최전선인 실리콘밸리에서도 ‘노화 세포 제거’ 연구가 한창이다. 일례로 베이조스 회장이 투자한 생명공학 회사인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노화 세포를 제거해 노화 관련 질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중단 또는 역전시키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장수 동물을 실험하기도 한다. 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동물실험용 흰 쥐의 수명은 2~3년인데,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큰 병 없이 최대 40년을 산다. 게다가 암도 걸리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사육 중인 구마모토대학 대학원 생명과학연구부의 미우라 교코 교수는 NHK와 인터뷰에서 “이 쥐는 노화 세포를 자동으로 소멸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며 “인간에게 응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추출해 신약 개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인 진료비 등 사회적 비용 낮출 듯 노화를 늦추는 항노화 후보 물질 ‘NMN’도 주목받고 있다. NMN은 비타민처럼 원래 모든 생물의 체내에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성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이를 인위적으로 보충하면 노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아직은 동물 실험 단계로 인체에 대한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세포를 역노화시켜 장기 기능 등을 개선하는 일명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기술에도 투자가 활발하다. 명칭처럼 세포를 초기화시켜 세포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22년 케임브리지대 바브라함연구소는 53세 성인의 피부 세포를 20대 피부 세포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적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항노화 연구가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경우, 노인 진료비 급증이 단적인 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전년 대비 5.2% 증가한 875만 명(2022년 기준)인데, 같은 기간 진료비는 8.6% 증가한 44조 118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진료비의 43.1%에 달한다. 이 같은 비용 증가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없는 상황에서 항노화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초기 비용이 비싼 만큼 부자들만 혜택을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생명윤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웨어햄 위트레흐트대 교수는 지난해 더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부자가 오래 살수록 부는 계속 늘어나고 정치적 영향력도 더 커질 것”이라며 “사회가 이미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2024.09.14 00:01

  • 상남자가 '드랙퀸' 변신? 무모한 도전 덕에 더 뜨거운 삶

    상남자가 '드랙퀸' 변신? 무모한 도전 덕에 더 뜨거운 삶

     ━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킹키부츠’ 롤라 역 강홍석   영화 ‘파일럿’에선 취업을 위해 여장을 한 조정석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드랙퀸(화장과 의상으로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이 아무리 짙은 화장을 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어도 남성성을 감추기 힘들다. 아니, 애초에 누굴 속이려는 게 아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다 못해 직접 몸에 두르고 스스로를 만족시킬 뿐.   이런 남자들이 10년 전만 해도 미친 사람 취급 받곤 했지만, 지금은 독특한 성향을 인정받는다.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인공 롤라도 한몫 했다. 2014년 초연 당시 상남자 포스로 ‘여자 옷을 입어야 자신 있는 남자’에 빙의했던 무명 배우 강홍석은 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 ‘하데스타운’과 ‘알라딘’까지 3개의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을 동시에 섭렵하고 있는 ‘강홍석의 시대’를 열어준 것도 롤라다.   제리 미첼이 가장 아끼는 한국 배우 7일 개막하는 뮤지컬 ‘킹키부츠’(11월 10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의 주역 강홍석. 10년 전 무명배우였던 그는 이 작품으로 단숨에 스타로 떴다. 최영재 기자 “롤라는 누가 해도 사랑 받는 역할이에요. 요즘 ‘쥐롤라’도 인기지만, 10주년이 되니 초연 때 더블캐스팅이었던 오만석 선배가 많이 생각나네요. 정말 많은 가르침에다 밥까지 먹여주시면서 하나하나 같이 만들어 주셨거든요. 초연 끝내고 뉴욕에 공연 보러 갈 때 주신 용돈으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알라딘’을 보며 언젠가 지니 역할을 꼭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이번에 이뤄진 거라 감사한 마음이 더하네요.(웃음)”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드랙퀸 롤라를 연기하는 강홍석. [사진 CJENM] ‘킹키부츠’는 수퍼스타 신디 로퍼의 음악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창작자 제리 미첼의 연출·안무로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작품. 제리 미첼이 가장 아끼는 한국 배우로 알려진 게 강홍석이다. “처음엔 드랙퀸이면서 이성애자인 롤라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제리 미첼이 미국·영국에는 그런 사람 너무 많으니 어렵게 접근하지 말라더군요. 분명 존재하고 있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즐겁게 전하는 캐릭터가 롤라예요. 아마 제리 미첼이 자신을 투영한 것 같아요. 공연 때마다 꼭 오시는데, 말이 안 통해도 주변을 밝게 만드는 분이거든요. 65세에 복근도 엄청나시고, 정말 매력적인 분이죠.(웃음)”   그는 요즘 10년 새 달라진 세상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초연 당시엔 캐스팅되고도 드랙퀸에 대해 잘 몰랐을 정도로 생소한 문화였다. “롤라의 기분을 느껴보려고 풀착장 상태로 대학로에 간 적이 있어요. 이렇게 쳐다보는구나 싶고, 택시 안 공기도 너무 이상했죠. 관객도 대부분 뮤지컬 마니아인 젊은 여성분들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분들이 주변인들을 데려오면서 점점 달라졌죠. 얼마 전 작은 콘서트를 했는데, 롤라처럼 꾸미고 온 ‘오빠’들이 정말 많았어요. 누구나 즐길 만한 공연인데, 그런 세상이 된 것 같아 좋네요.”   ‘킹키부츠’ 공연에서 드랙퀸 롤라 역을 맡은 강홍석(가운데)과 엔젤 역 남자배우들. [사진 CJENM] 스토리는 평범하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두 청년 찰리와 롤라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성공을 향하는 성장 스토리인데, 강홍석도 트라우마가 있었단다. “얼굴이 큰 트라우마였어요. 뮤지컬을 처음 접할 땐 조정석 선배나 주원 같은 훈남들의 직업이라 생각해서 꿈도 안 꿨죠. 최근까지도 누가 외모를 칭찬하면 늘 부정했는데, 한 팬이 편지를 주셨어요. 자기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라는 말에 한방 먹었죠. 이제 제가 잘생긴 사람이라 믿으며 살기로 했어요.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정말 훈남이라고요?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을 위해 어제 이 더위에 한강을 11㎞나 뛰었죠. 초연 오디션 영상을 보면 저도 깜짝 놀라요. 지금이 더 어려 보여서요.(웃음)” 20일 오후 강홍석배우를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2024.08.20.   사실 강홍석은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상남자 롤라다. 특히 해외 버전의 롤라들은 선이 고운데, 그를 상반된 캐릭터로 이끈 건 흑인음악이었다. “어려서부터 흑인이 되고 싶을 정도로 흑인음악을 좋아했어요. 힙합, 모타운 재즈, 아프리카 음악까지 들었죠. 그런데 제가 엄청 좋아하던 빌리 포터가 브로드웨이 초연 롤라였던 거예요. 그분 영상을 보고 갑자기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죠. 너무 아름답고 섹시했거든요. 28년간 남성성만 키워왔는데, 나도 한번 아름다움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다음날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죠.”   흑인음악 애정 담은 자작곡 싱글 내기도 그럼에도 롤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100㎏가 넘는 거구가 한 달 20㎏을 감량하는 등, 무모한 도전이 삶을 바꿔 놓은 셈이다. “지니처럼 ‘딱 내꺼’도 있지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세상 사는 데 정답은 없나 봐요. 중요한 건 뜨거움이죠. 전에도 제가 워낙 뜨거웠거든요. 뭐 하나 없을까 열심히 찾았죠. 뮤지컬 판도 분명 팝의 세상이 올 거라 믿으면서요. 클래시컬 쪽에선 ‘버터 빼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브로드웨이가 다 팝 천지가 됐네요.”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드랙퀸 롤라를 연기하는 강홍석. [사진 CJENM]   그의 도전은 진행 중이다. 흑인음악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자작곡 싱글 앨범도 냈고, 최종 목표는 뮤지컬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다. “‘라라랜드’나 ‘드림걸즈’ 보면 너무 부럽거든요. 우리 이야기로 그런 걸 꼭 만들고 싶어요. 제가 봉산탈춤과 마당극을 전공하다시피 했고, 마당극을 세계화시키는 게 꿈이죠. 꼭두각시놀음을 요즘 감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황정민 같은 배우가 출연하고 정재일 같은 분이 음악을 맡아 꽹과리· 장구·피아노·드럼까지 더한 멋진 작품을 찍을 생각을 하면, 심장이 떨립니다.” 강홍석은 지금도 뜨거웠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9.07 00:59

  • “미 연준 빅컷 가능성…적정 코스피는 3257선, 17% 저평가”

    “미 연준 빅컷 가능성…적정 코스피는 3257선, 17% 저평가”

     ━  ‘닥터둠’ 김영익의 반전   제롬 파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왔다”고 밝혔다. 이제 관심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릴지, 미국의 금리 인하가 한국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쏠리고 있다.   우선 금리 인하 시기는 9월로 예상되는데, 인하 폭이 가파를 수 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시기와 속도에 대해 앞으로 발표될 경제 데이터와 전망 그리고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고려하면서 결정할 것이라 했다.   연준의 통화정책 목표가 물가 안정과 고용 최대화에 있는 만큼 두 가지 데이터가 중요하다. 우선 물가는 안정되고 있다. 2022년에 7.1%였던 개인소비지출 물가상승률(전년 같은 달 대비)이 올해 6월에는 2.5%로 낮아졌다. 금리 인상의 시차 효과로 소비 등 수요가 위축되면서 9월 이후 물가상승률은 2%대 초반까지 더 낮아질 전망이다.   ‘테일러 준칙’ 따른 미 3분기 적정금리 4.2%   문제는 고용이다. 고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소비인데, 소비 증가세는 앞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가계 저축률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가계 저축률은 3.6%로, 2000~2019년 상반기 평균치 5.2%보다 훨씬 낮았다.   실질소득도 소비 증가를 제한하는 요인인데, 지난해 4월 이후 1인당 실질소득은 5만 달러 초반대에서 정체하고 있다. 특히 중위 가구의 실질소득은 2019년 7만8250달러에서 2022년에는 7만4580달러로 4.7%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은 늘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5%(2010~23년 평균 1.9%)에서 올해 6월에는 2.5%까지 늘었다.   그래픽=이윤채 lee.yoonchae@joongang.co.kr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소비가 줄면 기업 매출과 이익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 경영자들은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고용이 코로나19 때처럼 급격히 줄지는 않겠지만, 고용이 줄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또다시 가계의 소비를 줄이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8월에도 고용 둔화가 지속한다면 연준은 9월 17~18일에 개최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내릴까. 필자가 ‘테일러 준칙’에 따라 적정금리를 추정해보면 2024년 3분기 4.2%로, 현재 연준이 유지하고 있는 5.25~5.50%보다 훨씬 낮다. 9월 FOMC에서 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11~12월 FOMC에서도 추가로 금리를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이 같은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미국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즉, 현재 상황이 침체로 접어든 만큼 금리 인하 폭이 커질 것이고, 이 덕에 침체에 빠지더라도 골은 깊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픽=이윤채 lee.yoonchae@joongang.co.kr 우리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거 실업률이 올라가는 시기에 미국 금리가 하락하면 달러인덱스도 떨어졌다. 2008년 1월~2024년 7월 데이터로 분석해보면 실업률과 달러인덱스의 상관계수는 -0.68로 나타났다. 실업률과 S&P500의 상관계수도 -0.63으로 나왔다. 실업률이 상승할 때 달러인덱스나 주가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원화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달러인덱스다. 미국의 실업률 증가와 함께 달러인덱스가 하락하면 원화 가치는 상승할 수 있다. 7월 1390원까지 하락했던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최근 1330원 안팎까지 상승했다. 연준이 9월 빅컷을 단행하면 원화 가치는 1250원 정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   원화 가치 상승은 수입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생산자·소비자 물가 안정을 불러올 것이다. 환율과 물가가 안정되면 한국은행도 10월부터는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 금리 하락은 시차를 두고 소비 등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수출이 증가하면서 우리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는 만큼, 내수가 살아나면 경제 회복 속도는 좀 더 빨라질 수 있다.   주가, 장기적으로 명목 GDP 따라 상승 주가는 장기적으로 명목 GDP를 따라 상승한다. 2001~23년 명목 GDP가 연평균 5.7%였고 이 기간 코스피는 6.9% 상승했다. 올해 명목 GDP는 5.5%(실질 GDP 2.5%+GDP 디플레이터 3.0%)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적정 코스피는 3257선이 된다. 최근 코스피가 2700 안팎에서 변동하고 있는데, 적정 수준에 비해 17% 정도 저평가된 상태라는 얘기다.   주가는 시간이 가면 제자리로 간다. 최근 2년 우리 주가의 상대적 부진으로 많은 투자자가 미국 증시로 갔다. 미국보다는 한국 증시 투자 비중을 늘릴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001년 9·11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품 붕괴를 예고해 ‘한국의 닥터둠’으로 불린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2024.08.31 01:20

  • 시대 흐름 놓쳐…화면 밖으로 사라진 라이코스·엠파스·프리챌

    시대 흐름 놓쳐…화면 밖으로 사라진 라이코스·엠파스·프리챌

     ━  위기의 토종 포털    라이코스의 마스코트 검은색 개와 엠파스 로고. [중앙포토]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검색시장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린다. 야후·라이코스·엠파스·다음·네이버 등이 포털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대표주자는 글로벌 포털이었던 야후였다.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 포털 다음이 내건 광고 문구(1999년)처럼, 당시 야후는 국내 포털이 넘어서야 할 벽이자 목표였다. 1997년 야후코리아는 유럽 등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에 무혈입성한 뒤, 진출 1년 만에 300만 페이지뷰를 기록하며 국내 대표 포털로 등극했다.   그러나 야후의 독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네이버가 지식검색서비스인 ‘지식iN’을 등장시키고, 다음이 카페 등 커뮤니티 서비스로 새 흐름을 열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업계(IT) 관계자는 “당시 한국은 인터넷 발달이 느려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했기 때문에 검색 서비스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었다”고 전했다. 네이버와 다음은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 이용자끼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강화하며 주도권을 가져왔다.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야후는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리다 2012년 철수를 결정했다.   관련기사 쫓기는 네이버, 추월당한 다음…“AI 전환 골든타임 놓쳐” 경고등 “소버린 AI, 글로벌 경제 주권국·종속국 가를 것” 이 무렵 회한의 눈물을 흘린 것은 야후만이 아니다. 엠파스·라이코스·프리챌·파란닷컴 등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포털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네이버와 다음이 시장을 지배하며 벌인 규모의 경쟁에 밀려난 영향이 컸다. 자연어 검색으로 인기를 끌었던 엠파스는 2006년 SK컴즈에 인수됐고, 마스코트인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로 유명했던 라이코스는 다음이 인수했다가 2010년 인도 기업에 재매각했다.   네이버와 다음의 양강 시대로의 재편은 국내 포털 성장의 발목을 붙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포털 독과점, 뉴스 편향 등 포털 때리기가 매년 반복되고 있는 바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 국내 포털 중심의 승자독식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생존의 기로에 있어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포털업계에서 트래픽이 폭증하는 고성장의 시대는 끝났다”라며 “혁신 서비스와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만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영역 구분이 없어지는 플랫폼 시장에서 네이버가 압도적인 지배적 사업자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그럼에도 규제 목소리가 높아졌다면 개선점을 찾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4.08.24 00:56

  • 쫓기는 네이버, 추월당한 다음…"AI 전환 골든타임 놓쳐" 경고등

    쫓기는 네이버, 추월당한 다음…"AI 전환 골든타임 놓쳐" 경고등

     ━  위기의 토종 포털   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면,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선 구글 제국의 낮과 밤이 따로 없다. 통계조사기관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7월 기준 전 세계 91%가 구글 검색 망으로 연결돼 있다. 지역별로는 구글이 유럽 검색 망의 91.3%, 아시아의 90.9%, 아프리카에선 96.6%를 지배한다. 전 세계가 구글의 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를 얻고 답을 찾는 셈이다.   ‘구글 천하’에서 자국 검색엔진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 3곳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부가 구글 침투를 막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이 중 러시아 얀덱스는 지난달 사업을 포기하고 자산을 러시아 컨소시엄에 넘기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얀덱스는 1990년대 후반 나스닥에 상장하며 ‘러시아의 구글’로 불렸지만,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여파로 인터넷 공간의 통제권이 러시아 정부로 넘어갔다.   관련기사 시대 흐름 놓쳐…화면 밖으로 사라진 라이코스·엠파스·프리챌 “소버린 AI, 글로벌 경제 주권국·종속국 가를 것”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한국은 검색 시장 1위를 토종 기업이 사수하고 있는 특이한 국가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에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데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되살아난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도 몸을 사리고 있다. 웹로그 분석 사이트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국내 웹 검색 시장의 점유율은 네이버가 54.3%로 부동의 1위다. 다음으로 구글(37.6%), 마이크로소프트(MS) 빙(3.8%), 다음(3.1%)이 각각 2∼4위를 차지했다.   10대 85% “유튜브 활용 정보 탐색” 문제는 네이버와 다음이 버티는 국내 검색시장에서 구글과 빙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구글과 빙의 점유율을 합치면 41.4%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8월 들어 일일 기준 40%를 지속적으로 넘어섰다. 카카오의 다음은 이미 빙에도 따라잡혔다. 검색엔진으로서 존재감이 약해진 다음은 ‘야후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론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네이버의 1위 수성도 위태롭다. 올해 첫날 국내 검색엔진 시장의 점유율은 네이버 62%, 구글 28.3%였다. 이때 두 회사의 격차는 33.7%포인트였다. 그런데 불과 7개월여 만에 점유율 차이는 16.7%포인트로 좁혀졌다. 올 들어 구글이 10%포인트 가까이 성장하는 동안 국내 1위 네이버는 -7.7%포인트 역성장한 탓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검색엔진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핵심 키워드는 AI다. 구글과 MS가 생성형 AI를 검색서비스에 도입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MS는 지난해 초 오픈AI와 대대적인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오픈AI의 챗GPT를 빙에 탑재했다. 구글은 지난해 5월 대화형 AI ‘바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 AI를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의 공습에 국내 포털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하반기 거대언어모델(LLM)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다음은 대화형 AI 서비스를 선보이지 못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빅테크의 AI 공습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대화형 AI 바드의 발표 당시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어와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이기 때문에 도전적인 과제”라며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을 깜짝 공개했다. 영어를 기반으로 번역된 문장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주고받은 대화는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자국어 기반 토종 포털의 차별화는 힘을 잃게 된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한국은 시장 규모는 작지만 혁신적인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주목하는 시장”이라며 “토종 포털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국내 포털의 ‘신뢰도’도 약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2002년 ‘네이버 지식iN’, 2003년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 서비스를 내놓으며 다양한 정보와 커뮤니티 제공으로 국내 검색시장의 최강자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과도한 광고와 연계된 블로그와 카페글 등이 검색 신뢰도를 낮췄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신뢰도가 최우선인 전문지식 검색에선 네이버가 구글에 크게 밀린다는 진단도 나왔다. 지난해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 나스미디어에 따르면 ‘전문·학술 자료 검색 시 구글을 선호한다’는 이용자(16.8%)는 네이버(8.7%)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전문가 “해외 진출 돕는 정책 필요”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검색 행태도 달라졌다.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최근 1주일 내 정보 탐색 시 이용한 플랫폼’으로 10대의 85.4%가 유튜브를 꼽았다. 영상 검색에 환호하는 건 꼭 10대만도 아니다. 7월 기준 국내 MAU(월 활성 이용자) 1위 앱은 유튜브(4580만 명), 2위 카카오톡 (4500만 명), 3위 네이버 (4309만 명) 순이다.   지난 파리 올림픽 중계방송의 하이라이트 콘텐트 선호도 역시 1위가 유튜브(57%), 2위가 네이버(20%), 3위가 인스타그램(8%)이었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플랫폼에서 이동 자체가 쉽고 비용이 들지 않기에 더 재미있고, 즐거운 서비스를 찾아 즉각 이동하는 멀티호밍(다수 플랫폼을 이용하는 현상)이 대세”라며 “국내 포털에서 다른 서비스로 이동했다면 그만큼 검색 효용성이 낮아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규제 리스크도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을 규제할 이른바 ‘플랫폼법’을 추진 중인데, 토종 기업 역차별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포털 때리기와 규제 리스크가 시장을 옥죄면서, 플랫폼 생태계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신규 채용도, 신규 투자도 말라가고 있다. 올해 카카오는 신입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다. 규제보다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AI 개발업체인 AIPRM은 한국이 미국의 AI 기술을 따라잡기까지 약 447년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규제 리스크에 몸을 사리는 사이 “AI 전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이대호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국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규모를 확대하고 해외 진출을 돕는 방향의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4.08.24 00:55

  • "소버린 AI, 글로벌 경제 주권국·종속국 가를 것"

    "소버린 AI, 글로벌 경제 주권국·종속국 가를 것"

     ━  위기의 토종 포털   2022년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ChatGPT)’의 등장은 전 세계 플랫폼 기업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검색엔진 시장을 지배하던 구글의 점유율이 주춤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메타의 ‘라마’,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플랫폼 시장에선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IT 리서치 업체인 가트너가 매년 내놓은 신기술 보고서인 ‘AI 하이프사이클’에 ‘소버린 AI’를 포함한 배경이다.   소버린 AI는 ‘주권을 확보한 인공지능’으로 자체 인프라, 데이터, 인력 및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용해 AI를 구축한 국가의 역량을 의미한다. 수년 내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소버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소버린 AI가 국가의 패권을 결정짓는 21세기 신무기가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개발 중인 생성형 AI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네이버 5년간 AI 투자 1조, MS는 작년 13조 김명주 교수는 “막대한 데이터 등 한국이 가진 강점을 적극 활용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KT는 믿음 등을 생성형 AI 시장에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AI 경쟁이 본격화하면 국내 포털 시장이 수년 내 외국 기업으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2일 만난 김명주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장(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은 “소수의 빅테크가 시장을 장악하지 않도록 우리만의 AI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AI 컨소시엄을 꾸려 글로벌 틈새시장을 노리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답했다.   소버린 AI가 왜 중요한가.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고도화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챗GPT, 제미나이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개발한 생성형 AI 기술이 사실상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데, 향후 이런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고 운영할 능력이 없는 국가는 패권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술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AI 주권 즉, 소버린 AI를 확보하려 경쟁하고 있다. 소버린 AI의 유무는 향후 글로벌 경제의 주권국이냐, 종속국이냐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관련기사 쫓기는 네이버, 추월당한 다음…“AI 전환 골든타임 놓쳐” 경고등 시대 흐름 놓쳐…화면 밖으로 사라진 라이코스·엠파스·프리챌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생성형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력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데이터에 차별과 편견이 담겨있다면 결과물 또한 왜곡된 내용이 나온다. 과거 챗GPT에게 ‘독도는 어느 나라 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라는 답변이 나온 것도 편향된 데이터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의 가치관과 역사를 제대로 학습하고, 반영하는 우리 고유의 AI(소버린 AI)가 필요한 이유다.”   주요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가장 투자가 활발한 곳은 역시 생성형 AI의 본국인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해 874억 달러(약 116조원)를 AI에 투자, 전 세계 AI 투자액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 중에서는 GPU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소버린 AI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타국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인데, 엔비디아와 인도는 인도어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소버린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해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은 오픈AI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자체 기술로 소버린 AI를 확보하려는 시도도 병행한다. 일본 정부는 고성능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소프트뱅크에 내년까지 474억엔(약 4300억원)을 투자, 일본어 모델을 채택한 소버린 AI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AI 기본법 등 제정, AI 산업 진흥 필요 주요 AI기반 검색 엔진 규제·법과 같은 무형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통상 신기술이 나오면 대중적으로 확산된 뒤 그를 통제하기 위한 규제와 법이 등장하는데, AI의 경우 규제와 법이 먼저 등장한 느낌이다. 선진국이 규제를 통해 AI 시대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영국은 지난해 런던 포럼에서 인공지능안전성연구소(AISI)를 영국에만 설립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AI 생성물에 삽입하는 워터마크를 상무성이 직접 제작해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AI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세계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라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삼성·네이버·KT·LG·SK·카카오 등 개별 기업이 각개전투하고 있다. 한국 IT 기업은 언어 장벽 등으로 가뜩이나 해외 진출이 까다로운데, 투자 자체도 규모가 작다. 네이버의 경우 소버린 AI를 신규 먹거리로 삼아 투자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비교하면 투자액과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네이버는 지난 5년간 AI에 1조원을 투자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13배에 달하는 100억 달러(약 13조3000억원)를 지난해 오픈AI에 투자했다.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이미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플랫폼을 뒤집기란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는 2030년 AI 세계 3대 강국을 선언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AI 강국으로 가려면 정부의 역할도 필수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세우고 있는 AI 장벽을 개별 기업이 어떻게 넘을 수 있겠나.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AI 기본법 등을 제정해 AI 산업을 진흥해야 한다. 일부 주장처럼 특정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막대한 세금을 투자하기보다는 외자 유치, 기업 간 협업 등을 조율하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AI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논의 중인 국가AI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기술은 부족하나 자체 언어와 문화를 가진 국가로의 수출도 가능할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컬처 등을 활용하면 중동이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와 손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4.08.24 00:52

  • 영남 일색 지도부, 저조한 투표율…민주당서 호남은 변방?

    영남 일색 지도부, 저조한 투표율…민주당서 호남은 변방?

     ━  민주당 전당대회로 본 호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들이 지난 4일 오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강선우·정봉주·민형배·김민석·이언주 의원. [뉴시스] #1. ‘호남, 민주당 상징인가? 변방인가?’   더불어민주당의 8·18 전당대회 이후인 20일 광주KBS가 마련한 토론회의 제목이다. 사회자는 도입부에 “광주·전남에서 지도부에 한 명도 끼지 못했고 특히나 (최고위원에) 세 번 연속 도전이 실패하면서 여당 아니라 야당에서도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임명 때 호남 인사를 배려해야 한다.”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과 우상호 전 의원이 최근 한 말이다. 우 전 의원은 “호남 대표성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했고 박 의원은 아예 특정 의원을 거명했다.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호남’이었다. 김대중(DJ) 대통령 때는 물론이고 DJ 이후에도 그랬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지도자는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을 동력 삼아 도약했다. 전자가 DJ라면 후자는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의 숙제는 압도적인 호남세를 여하히 덜 드러내느냐였다. 그러니 호남이 민주당의 ‘변방’이거나 ‘안배’의 대상이란 됐다는 주장은 과거에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얘기다.   DJ·노무현·문재인 모두 호남 기반 외양상으론 그럴만하다. 지도부의 출신지 풍경이 바뀌었다. 이재명 대표, 그리고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3명(전현희·김병주·이언주)이 영남 출신이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선산은 경남 사천에 있다. 유일한 예외가 한준호 최고위원인데 호남보단 전북 정체성(전주)이 강하다. 호남 출신을 강조하던 민형배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더군다나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21년엔 서삼석 의원이, 2022년엔 송갑석 의원이 도전에 실패했다.   당원 구성이 극적으로 바뀌었냐면 그렇지 않다. 민주당 당원 512만 명 중 호남에 거주하는 당원이 33.3%다. 이번 전대의 권리당원 선거인단 122만여 명 중 33.5%였다. 셋 중 하나란 의미다. 수도권 비중이 40%대로 올라섰다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본인 또는 부모가 호남 출신인 ‘출향 호남인’일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호남의 발언권이 강한 구조란 의미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이번 경선에서 호남이 이제 하위파트너가 됐다는 게 명확히 드러났다”며 “서삼석·송갑석·민형배 의원의 득표율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11.11%(서삼석)에서 9.05%(민형배)가 됐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조 실장이 특히 주목하는 건 투표율이다. 권리당원들의 현장투표만 보면 전국 투표율이 30.9%인데 호남 투표율은 20.3(전북)~25.3%(광주)이었다. 제주(18.4%) 정도를 빼곤 최하위권이었다. 이번엔 광역단체별 경선을 끝낸 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ARS투표를 실시, 투표율을 42.3%로 끌어올렸다. 13만9000여 명이 뒤늦게 참여했는데 이들까지 포함한 지역별 투표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ARS투표 때 지역을 묻지 않아서란 이유다. 당에선 “이번에도 전국 투표율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조 실장은 “(현장투표 때) 5, 6%포인트 차이를 따라잡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전대에선 광역단체별로 현장투표와 ARS투표를 병행해서 지역별 투표율이 나왔다. 전체 권리당원 투표율이 37.1%일 때 호남은 34.1(전북)~37.5%(전남)였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투표율에 주목하며 “호남의 불편함은 찬성률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투표율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어 “호남이 주도권을 쥔 게 아니라 종속화되는 구조”라며 “대구·경북(TK)과도 다른데, 홍준표 대구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호남 정치’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광의의 호남은 광주·전남과 전북 거주자뿐 아니라 출향 호남인도 포함한다. 인구 자체만 보면 호남이 영남에 밀리지만 출향 호남인까지 포함할 경우 또 이들 간 결집도까지 감안할 경우 영남과 대응한 경쟁을 벌여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조귀동 실장은 광주에서 27.8%까지 득표한 민형배 의원이 경기에도 7.5%를 득표한 점, 한 최고위원이 전북에서 21.3%(1위)였으나 광주·전남에선 12% 안팎으로 3위를 기록한 점을 들었다. 전북을 두곤 “거의 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표현했다.   조국당 신장식, 재선거위해 호남 월세살이 여기엔 반론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적절한 인물이 등장하면 호남이 주도권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호남은 지난 총선에서도 흔들린 바 있다”면서도 “호남인과 출향 호남인들이 (예전만큼) 같이 움직이진 않지만 그래도 야당을 지지하는 기본적 정서란 있다. 새 대안을 놓고 의사결정을 할 때 집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대에서의 낮은 투표율이 이 대표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표가 자신이 호남에서 흔들리면 지지율이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다고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36.7%)을 제치고 호남에서 1위를 한 조국혁신당(44%)이 10·16 전남 곡성·영광군수 재선거에서 민주당을 제치고 ‘군수 당선자’를 내겠다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신장식 의원 등은 아예 현지에서 월세살이를 하겠다고 나섰다.     고정애·성지원 기자 ockham@joongang.co.kr

    2024.08.24 00:01

  • "군림하는 리더십 걱정" "민생·정책 유능함 보이는게 중요"

    "군림하는 리더십 걱정" "민생·정책 유능함 보이는게 중요"

     ━  초유의 연임 ‘이재명 2기’…민주당 인사 3인에게 듣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가 지난달 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회 전국당원대회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8·1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당 대표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재명 전 대표가 56일 만에 ‘전’을 떼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선출직 당 대표론 초유의 연임이다. 2년 전 자신이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 득표율(77.8%)도 갈아치울 기세다.   공공연하게 ‘일극 체제’란 말이 나오지만 최고위원 선거를 보면 단층선도 보인다. 이 전 대표의 지지 언급 이후 일부 친명계의 표 몰아주기에 정봉주 후보가 “당내 암 덩어리인 ‘명팔이(이재명 팔이)’를 뿌리 뽑을 것”이라고 반발하면서다.   그렇다면 지방선거(2026년)와 대통령 선거(2027년)를 대비할 이재명 2기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당 장악력은 강고한가. 전국 선거에서 승리할만한 실력을 입증할 것인가. 민주당을 속속들이 아는 3인에게 물었다. 민주당 원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과 86출신으로 4선의 비대위원장을 지낸 우상호 전 의원, 그리고 친명계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이다.   이 전 대표와 DJ(김대중)의 당 장악력을 비교해 달라는 말에 3인이 각각 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이 전 대표가 더 세다. 단, 뿌리는 약할 것이라고 본다.”   “비주류가 말을 안 해서 반대파가 없어 보이는 거다. 약한 주류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견제·저지하려면 총선 승리를 이끈 이재명 대표 정신으로 뭉쳐야 되지 않겠냐는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의 의지가 굉장히 강한 거다.”   미묘하게 엇갈린다. 3인과의 문답을 순차로 풀었다. 먼저 유 전 총장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 전 대표가 초강세다. “적대적 공생도 이런 공생이 없다. 저쪽(윤석열 정권)만 믿고 민주당엔 민주주의가 없고, 저쪽은 수신제가가 안 돼 있다고 하지 않나. (윤 대통령이) 임기 중반을 지나면 (정치적 풍경에서) 상당히 사라질 텐데 그런 속에서 이 전 대표가 지금 식으로 군림하는 리더십, 자꾸 적을 만들어내는 리더십으로 어쩌려는지 걱정된다.”   DJ보다 더 센 것 아닌가. “세다고 봐야 하는데, 다만 DJ는 몇십년 고난의 역사를 버티면서 얻은 대중의 신뢰가 있었다. 여긴 그런 뿌리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팬덤은 잘 모르겠지만.”   지난 대선 때 중앙선대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우 전 의원은 이 전 대표를 향해 “되게 애정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약한 주류’란 표현을 썼다.   DJ에 비해 약하다고 한 이유는. “이번엔 사실상 (이재명) 찬반투표다. 김두관 후보가 도전자로서 기본 준비가 너무 안 돼 있었다. 원래대로면 30%대 득표를 할 수 있는 조건인데, 그걸 담지할 수 없다. 그러니 투표율이 낮아졌다. 이 전 대표를 좋아하는 사람만 찍었다. 호남은 우리 당 행사라면 적수가 없어도 60~70% 나왔다. 이번엔 20%대다. 호남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상당한 위험 요인으로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일극 체제가 완성됐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의 퍼센티지는 지난 전대에 비해 낮아졌다고 본다.”   당은 ‘기본사회’를 강령에 넣는 등 이 전 대표의 의중대로 가고 있다. “당은 장악됐다. 하지만 당내 대항세력이 정비가 안 돼 (이 전 대표 측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다. 기본사회를 강령에 넣는 걸 두고 ‘특정 후보 담론을 당헌에 넣을 수 있느냐. 나는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이 나와야 못 집어넣는 것 아니냐. 지금 여러 결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의 책임이 이 전 대표에게 있느냐, 나는 말하지 않는 비주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는 비주류가 비주류인가, 그들은 왜 정치 하는가 이런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있다. “‘당 대표가 사법리스크로 아웃되길 바란다’라거나 그런 얘기를 마치 검찰에서 들은 것처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불쾌하다. 차도살인 같은 것 아니냐. 설사 그런 게 이뤄지더라도 강하게 싸워야 한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제1야당 대표라면 명백한 부정부패나 명백한 범죄 행위로 날려야지, 선거법으로 날리는 거는 나는 정직하지 않다고 본다.”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이하 혁신회의)가 논란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 동교동계가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 때 ‘대깨문’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친노도 있었다. 항상 주류는 있고 그들이 당을 이끌어가는 게 책임정치다. 다만 주류 내부의 분열이 빨리 와, 내가 이 전 대표라면 골치 아플 것이다. 혁신회의 내부가 분열돼 있고 (정성호 의원 등) 원조 7인 회의와 혁신회의가 갈등한다. 과거엔 주류가 대선 때까지 똘똘 뭉쳐가다가  대선 이후 균열이 왔는데 지금은 대선 전에 오고 있다. 밖에서 보듯 강력한 주류가 아닌 약한 주류라고 본다. 대선연합이어야 되는데 총선 때 ‘이재명 팔아서’ 하려는 총선연합이었던 것이다.”   김경수 전 지사는 변수가 될까. “대선을 쭉 준비해 온 사람이면 위협적이지만 준비를 안 해오지 않았나. 가능성은 꽤 있지만 아직 몸도 안 푼 사람을 가지고 무슨 분열 얘기를 하나.”   2기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 전 대표는 도전자다. 도전에 필요한 인물들을 포용해야 하는데 총선 때 날렸다. 대선 이후 플러스 된 게 이언주 의원 정도인데 이 의원이 세력이 있나. 일단 86세력은 놓쳤고 친문은 놓친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이를 갈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중도로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소위 강성 지지층 틀에 갇혀버렸다. 되게 큰 아픔이 될 수 있다. 구도가 지난 대선 때보다 악화했다. 대선 전략 및 어젠다, 그리고 옆에서 그런 걸 할 사람도 없어 보인다.”   정성호 의원은 기대감을 피력했다. 다만 “민생에서 야당도 성과를 내야 한다.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해서 입법 성과를 내달라”거나 “당내에서 말을 못하는 의원이 있어선 안 되겠다. 당내 자유토론의 장이 만들어지고 당내 의견을 건강하게 수렴해 재집권 플랜을 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2기 지도부를 구성하고 인선도 해야 하는데 상당히 폭넓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의  당 장악력이 DJ 때보다 강화됐다고 말한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가 잘했다기보다 윤석열 정권 심판 의미가 훨씬 컸다고 본다. 총선 이후 현 정권의 기조가 전혀 바뀌고 있지 않다. 현 정권의 가혹한 정치 탄압적 수사에도 이 전 대표가 기소는 됐지만 잘 버텨오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이 전 대표로 뭉쳐야하지 않느냐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지가 강한 거다.”   투표율은 내려갔다. “권리당원 ARS 투표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지난번 전대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을 거다.”   결국 집권이 목표인데, 초유의 연임 체제가 도움될까. “이 전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번 전대에서 ‘일극 체제가 강화됐다’ ‘사당화됐다’며 대선에 도움 되겠나 하는데, 섣부른 판단 같다. 이 전 대표가 그런 우려에도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결국 민생과 정책에서 유능함을 보이는 것일 텐데, 그게 중요하다. 대안을 제시하고 당내 잠복한 다양한 의견을 드러내게 해서 당내 다양성과 민주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당의 단합을 유지하는, 민생과 통합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현재로선 탄핵소추안이나 법안 일방처리가 두드러져 보인다. “지금 정부여당의 책임도 굉장히 크다. 야당 입장에서 봤을 때 국정 운영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민생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가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하는데 ‘너희 마음대로 해’ 이거다. 야당에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거론된다. “개인적으론 무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걸 예상해서 뭘 하는 건 불필요하다고 보고,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혁신회의 등 친명계 조직이 논란이다. “지금 당원은 옛날과 달리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되려는 흐름이 있다. 당원들의 참여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고 본다. 강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분이 있지만 참고하면 될 거라고 본다. 혁신회의도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이 전 대표에게 ‘해체하라’는 주장도 있는데 당원의 자발적 조직을 당 대표가 해체하라는 건 반민주적인 것 아닌가. 당 대표가 원칙을 갖고 당을 운영하면 될 것이고 의원들도 그런 데 너무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2024.08.17 01:15

  • 합법과 불법 사이…전문직 꿈꾸는 '셜록 홈즈'

    합법과 불법 사이…전문직 꿈꾸는 '셜록 홈즈'

     ━  스토커인가 해결사인가, 탐정 논란   “추격전이요? 그건 초보 탐정들이나 하는 일이죠.” 경기도 군포시의 한 오피스텔 앞. 한모씨는 미련 없이 손을 운전대에서 내려놨다. 그의 직업은 ‘사설탐정’.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증거나 근거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역할이다. 이날 그는 금전 사기를 당했다는 의뢰인의 요청을 받고 채무자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을 뒤쫓던 중이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올 법한 추격전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첩보전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한씨는 차안에서 대기하다 채무자의 차량을 발견한 직후 3개 팀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뒤를 쫓았지만 도중에 추격을 중단해야만 했다. 한씨는 “상대가 눈치를 채고 숨어버리는 것도 난감한 문제지만 더욱 조심해야 할 건 탐정 자신은 물론 의뢰인도 법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현행법상 불법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게 탐정 활동의 최대 과제이자 노하우”라고 말했다.   탐정도 흥신소도 명칭은 모두 합법 최근 거리에 탐정 사무소가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협회 간판. [사진 대한민국 탐정협회] 탐정이 대중화된 시대. 몇 년 전부터 거리에 탐정 사무소 간판이 걸리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도 수백 개의 탐정 사무소가 의뢰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의 탐정 활동은 합법과 불법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뒤를 쫓는 미행도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위치 추적기 설치는 말할 것도 없고 도청 장치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다.   하금석 한국공인탐정협회장은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탐정 사무소는 합법, 흥신소는 불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명칭은 현재 모두 합법”이라며 “탐정이든 흥신소 직원이든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탐정이라고 해도 현행법상 허용되는 활동 범위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탐정 사무소를 찾는 의뢰인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까지 처벌받은 사례도 적잖다. 지난달 25일 광주지방법원은 별거 중인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배우자의 뒤를 쫓아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설탐정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면서 의뢰인 B씨에게도 벌금 50만원을 함께 선고했다. 재판부는 “직장 내부를 둘러보고 주차장 관리자를 탐문하는 등 사회 상규상 허용되는 정당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고 모든 탐정 활동이 처벌 대상은 아니다. 지난해 전남 장성군 지역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를 미행한 사설탐정은 스토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무 특성상 누군가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는 사설탐정 입장에선 법원의 판단을 수시로 확인하는 게 필수가 됐다. 탐정들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실제 업무보다 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이 같은 혼선이 빚어지는 건 탐정 활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회에서도 1999년 이후 탐정업에 관한 법률이 13차례나 발의됐지만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하고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는 사이 2018년 헌법재판소가 탐정 명칭을 일부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이듬해인 2019년 경찰청이 제한적으로나마 탐정 업무의 민간 자격 등록을 승인하면서 사설탐정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2020년에는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 ‘탐정’이란 명칭 사용도 합법화됐다. 하지만 탐정 업무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법률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이런 와중에 민간 탐정 자격증이 난립하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19년 탐정업 등록이 허용될 당시 5개였던 민간 탐정 자격증은 5년 새 103개로 급증했다. 이 중 하나라도 취득하면 경찰청에 등록되는 탐정이 될 수 있다 보니 민간 자격증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탐정업계에서는 합법적인 탐정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규정해 달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 직업군처럼 국가에서 엄격하게 자격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문도 곁들여진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탐정 명칭이 합법화된 반면 탐정업을 규정하는 법은 마련되지 않으면서 과거에 불법 흥신소를 운영하던 사람들까지 탐정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누구나 탐정 자격증을 만들고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보니 업계가 혼탁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선 임시 체포권, 일본은 경찰 등록 반면 일찌감치 탐정업이 성행한 미국은 탐정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공인 탐정에게 총기 소지나 임시 체포권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권한만큼 관리도 철저하다. 탐정 면허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은 일정 기간 기존 탐정 밑에서 경력을 쌓도록 하고 사무소를 개업할 때는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책임질 수 없다면 권한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본은 엄격한 가이드라인 속에서 일부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2007년 ‘탐정 업무의 적정화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 뒤 탐정 업무의 합법·불법 경계를 명확히 규정해 놨다. 그러다 보니 불륜 현장의 증거 수집도 엄격한 관리와 절차를 거칠 경우 합법적인 탐정 업무로 인정된다. 경찰에 정식으로 등록된 탐정이 사전에 사건 기록을 작성하는 등 절차를 밟으면 스토킹 등의 죄도 묻지 않는다.    손상철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교수는 “탐정업법의 공백을 계속 방치할 경우 사설탐정은 물론 일반인 의뢰인들도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될 우려가 크다”며 “탐정에게 어떤 공인 자격을 부여하고 어디까지 권한을 허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2024.08.10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