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팔정
영팔정(
개요
[편집]영팔정은 고려말∼조선초 문신인 하정 류관(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자와 호인 하정의 ‘정’자를 따서 ‘모정’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양팔정은 배움의 장소로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이 모임을 갖던 건물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현지 안내문
[편집]영팔정은 조선초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하정(
夏 亭 ) 류관이 모산리의 지세와 경관이 좋아 세거지로 정하고, 그의 아들 맹문(孟 聞)에게 명하여 1406년(태종 6)에 건립한 정자이다.[2]초창 당시 정자의 이름은 나주목사 유두명이 마을 이름인 모산의 "
茅 "자와 유관의 호인 하정의 "亭 "자를 따서 '茅 亭 '이라고 하였다. 그 후 율곡 이이(1536~1584)가 이곳에 와서 유관의 학덕을 기리면서 주변 경관을 팔경시(八景 詩 )로 읊었으며, 그 위에 고경명, 남이공, 유상운 등이 팔경시를 연작하였던 곳이하 하여 '詠 八 亭 '으로 바뀌었다.[2]영팔정과 직접 관련된 유물로는 정자 내부에 보관된 제영(
題詠 ), 기문현판(記文 懸 板 )과 동계책(洞 契 冊 )이 있다. 영팔정은 조선 초기에 건립된 정자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사정(社 亭 )으로서 역할은 물론 강학 장소, 향약 집합소로도 이용되어 마을민의 구심체가 되었던 곳이다. 또한 현존하는 모산동약(茅 山洞 約 )은 지방사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현판은 남구만(1629~1711)의 글씨이다.[2]
각주
[편집]참고 자료
[편집]- 영팔정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지역N문화 선비문화의산실 누정 영팔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