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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Лёгкий танк Т-26 |
이반 젠케비치의 애국 공원 소장 T-26S 소개 및 기동 영상[1] |
T-26은 영국의 V-26 경전차를 소련이 개량하여 국산화시킨 경전차이다.
T-26은 전간기 소련이 제작한 전차들 중, BT 전차와 더불어 고성능을 자랑했던 전차로써, 향후 90여년 간의 소련, 러시아 전차 개발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전차이기도 하다.
소련 최초의 대량생산 전차이며, T-26을 1만대 가량 생산하며 얻은 노하우를 이후 전차들에 적용시켰기 때문에 BT 전차가 T-34 전차에게 기동성을 물려줬다면, T-26은 물량을 물려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 당시 매우 혁신적이었던 차량답게, 특이한 기록이 여러 개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세계 최초로 충각으로 전차를 격파한 전차"'이며, 이 밖에도 "세계 최초로 야시장비를 장착한 전차"라는 칭호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선진적인 전차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시대의 전차들보다 높은 성능과 낮은 가격으로 수많은 나라들에 공여되며 "믿고 쓰는 소련제 무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전차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전간기의 T-34로 평가한다.
소련 내에서는 세계 대전 후 냉전 초기에 퇴역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MBT가 활약하는 1960년대 ~ 1970년대까지 현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T-26을 바탕으로 해서 각종 파생차량이 개발되었는데, 화염방사전차, 가교전차, 자주포, 공병전차, 정찰 장갑차 등이 생산되었으며, 그 양도 통합하면 1,700여대에 가까웠다.
따라서 T-26 계열은 총 12,000여량이 도입되어 8,000대가 생산된 BT 전차와 함께 1930년대 소련군의 주력전차 역할을 맡았다.
당대 전차 중에서는 준족과 강력한 펀치력을 가진데다 무엇보다도 싼 가격으로 소련군 내부의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T-26은 전간기 소련이 제작한 전차들 중, BT 전차와 더불어 고성능을 자랑했던 전차로써, 향후 90여년 간의 소련, 러시아 전차 개발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전차이기도 하다.
소련 최초의 대량생산 전차이며, T-26을 1만대 가량 생산하며 얻은 노하우를 이후 전차들에 적용시켰기 때문에 BT 전차가 T-34 전차에게 기동성을 물려줬다면, T-26은 물량을 물려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 당시 매우 혁신적이었던 차량답게, 특이한 기록이 여러 개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세계 최초로 충각으로 전차를 격파한 전차"'이며, 이 밖에도 "세계 최초로 야시장비를 장착한 전차"라는 칭호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선진적인 전차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시대의 전차들보다 높은 성능과 낮은 가격으로 수많은 나라들에 공여되며 "믿고 쓰는 소련제 무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전차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전간기의 T-34로 평가한다.
소련 내에서는 세계 대전 후 냉전 초기에 퇴역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MBT가 활약하는 1960년대 ~ 1970년대까지 현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T-26을 바탕으로 해서 각종 파생차량이 개발되었는데, 화염방사전차, 가교전차, 자주포, 공병전차, 정찰 장갑차 등이 생산되었으며, 그 양도 통합하면 1,700여대에 가까웠다.
따라서 T-26 계열은 총 12,000여량이 도입되어 8,000대가 생산된 BT 전차와 함께 1930년대 소련군의 주력전차 역할을 맡았다.
당대 전차 중에서는 준족과 강력한 펀치력을 가진데다 무엇보다도 싼 가격으로 소련군 내부의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Лёгкий танк Т-26 | |
제원 | |
개발기관 | 빅커스-암스트롱, 레닌그라드 제174번 공장 |
개발연도 | 1928년 ~ 1931년 |
생산연도 | 1931년 ~ 1940년 |
생산기관 | 레닌그라드 제174번 공장,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고르키 자동차 공장 |
생산댓수 | 12,001대[2] |
운용연도 | 1931년 ~ 현재[3] |
운용국가 | |
전장 | 4.65m |
전폭 | 2.44m |
전고 | 2.24m |
전비중량 | 9.8t 1939년형: 10.5t |
탑승인원 | 3명 (조종수, 전차장, 탄약수) |
엔진 | 암스트롱 시들리식 4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 |
최고출력 | 1937년형 이전: 90hp 1937년형 이후: 95hp |
출력비 | 9.38hp/t |
현가장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최고속도 | 30km/h / 25km/h (평지 주행 시 / 야지 주행 시) |
항속거리 | 240km / 140km (내장 연료 탱크 적재 시 평지 / 야지), 330km / 190km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평지 / 야지) |
주무장 | T-26A 초기형: 7.62mm DT 기관총 1정 (2,961발) T-26A 후기형: 37mm 퓌토 PS-1 야포 (222발) T-26B: 45mm 19-K 1932년형 전차포 1문 (124발) T-26S: 45mm 20-K 1932/34년형 전차포 1문 (185발) |
부무장 |
T-26RT 내부 구조도 |
"T-26 시리즈"의 전반적인 내부 구조는 상단의 사진과 같다.
우선, T-26 시리즈의 상징적인 무장인 45mm 53-K 대전차포는 후술하겠지만 T-26B부터 대형 포탑에 장착되었다. 그 이전에는 7.62mm DT 기관총 2정이 장착된 쌍포탑 1931년형과, 한쪽 포탑을 37mm 퓌토 대전차포로 교체한 1932년형이었는데, 해당 쌍포탑 형들은 전투 효율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어 단일 대형 포탑으로 교체한 것이다. 자연스레 포탑이 대형화되며 내부 용적도 넓어 운용인원들의 편의성도 당대 경전차들보다 훨씬 나은 편에 속했다.
엔진은 빅커스 Mk. E에서 가져온 암스트롱 시들리식 4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을 라이센스 하여 그대로 사용했으며, 본판인 암스트롱 엔진보다는 살짝 뒤쳐졌지만 그래도 운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특히, 엔진의 신뢰도가 높아 시동을 걸때 점화 플러그에 전기가 빠르게 충전되어 엔진 점화가 동시대 타 전차들보다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가장치는 당대 다른 전차들과 비슷하게, 4륜식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을 채택하였으며, 구조가 단순한데다 신뢰성이 높아 험지나 악지에서도 운용이 쉬웠다고 한다.
라이트는 왼쪽 모서리나, 오른쪽 모서리가 아닌, 차체 정 중앙에 대형 라이트를 1개 장착하였으며, 1935년형에 들어서면 등화관제가 유리한 접이식 라이트로 교체되었다.
무전기는 일반적인 T-26에는 장착되지 않았으며, 지휘전차인 T-26RT에만 무전기가 장착되었다. 이 때문에 중화민국이 구매한 T-26들은 전부 쌍방 무전이 가능한 T-26RT 뿐이었다.
추가적으로, 1934년식 이후로 포탑 상단에 환풍구가 추가되면서 포를 발사한 뒤에 포연이 자욱한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포발사 후, 운용 인원이 해치를 열어 위험하게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풍구로 포연을 배출하며 운용 인원들에 대한 안전까지 꾀하였다.
우선, T-26 시리즈의 상징적인 무장인 45mm 53-K 대전차포는 후술하겠지만 T-26B부터 대형 포탑에 장착되었다. 그 이전에는 7.62mm DT 기관총 2정이 장착된 쌍포탑 1931년형과, 한쪽 포탑을 37mm 퓌토 대전차포로 교체한 1932년형이었는데, 해당 쌍포탑 형들은 전투 효율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어 단일 대형 포탑으로 교체한 것이다. 자연스레 포탑이 대형화되며 내부 용적도 넓어 운용인원들의 편의성도 당대 경전차들보다 훨씬 나은 편에 속했다.
엔진은 빅커스 Mk. E에서 가져온 암스트롱 시들리식 4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을 라이센스 하여 그대로 사용했으며, 본판인 암스트롱 엔진보다는 살짝 뒤쳐졌지만 그래도 운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특히, 엔진의 신뢰도가 높아 시동을 걸때 점화 플러그에 전기가 빠르게 충전되어 엔진 점화가 동시대 타 전차들보다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가장치는 당대 다른 전차들과 비슷하게, 4륜식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을 채택하였으며, 구조가 단순한데다 신뢰성이 높아 험지나 악지에서도 운용이 쉬웠다고 한다.
라이트는 왼쪽 모서리나, 오른쪽 모서리가 아닌, 차체 정 중앙에 대형 라이트를 1개 장착하였으며, 1935년형에 들어서면 등화관제가 유리한 접이식 라이트로 교체되었다.
무전기는 일반적인 T-26에는 장착되지 않았으며, 지휘전차인 T-26RT에만 무전기가 장착되었다. 이 때문에 중화민국이 구매한 T-26들은 전부 쌍방 무전이 가능한 T-26RT 뿐이었다.
추가적으로, 1934년식 이후로 포탑 상단에 환풍구가 추가되면서 포를 발사한 뒤에 포연이 자욱한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포발사 후, 운용 인원이 해치를 열어 위험하게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풍구로 포연을 배출하며 운용 인원들에 대한 안전까지 꾀하였다.
KS "루스키 르노 (руски рено)" |
소련은 1차 세계대전 및 적백내전 당시 절찬리 사용되었던 FT-17들의 활약상을 직접적으로 본 것과 적백내전 당시에 크라스노예 소르모포 공장에서 완벽히 복제하여 생산한 KS를 운용하면서 장차 지상전의 방향은 전차가 주축이 될 것을 직감하였으며, 그로 인해 지상 전력을 증강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V-26 |
허나, FT-17과 그 개량형인 MS-1은 192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명백히 도태되었으며, 주변 열강에 비해 열세였던 지상 전력의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해 소련은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떠오른 것이 본국에서 퇴짜를 맞고 소련에게 접촉한 나중에 BT 전차가 될 "존 월터 크리스티" 박사의 M1931 경전차와, T-26의 전신이 되는 빅커스
빅커스 Mk. E는 막상 본토인 영국에서는 군대 제식 채용에 시큰둥하였으나 약소국이나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들에서는 큰 환영을 받았으며, 이러한 국가들 중에는 소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소련은 BT 전차를 채용함과 동시에 Mk. E의 생산 라이센스를 빅커스 사로부터 취득, 생산하며 제식명 "T-26"이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구분되는 T-26A, B 등 알파벳 명칭들은 소련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나치 독일에서 부여한 명칭이며, 소련과 미국에서는 연식별로 분류한다.
"최초의 T-26"으로써, 쌍포탑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단포탑의 T-26B가 제작되며 퇴역하였고, 남겨진 차량들은 일종의 장갑차로 이용되었다.
Т-26 Обр.1931 |
최초의 T-26인 1931년형 모델, 또는 T-26A로 통칭되는 사양은 병렬식으로 DT 기관총이 장착된 총탑이 2개 탑재된 모양이 특징이며, 1932년까지 1,617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기관총의 경우 엄폐물이 없는 대인전에서나 효과를 보였지 잘 세워진 진지나 토치카에 숨어있는 적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점차 기관총 장착형들은 도태되었으며, 이듬해인 1932년 개량을 진행하게 된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Pz.Kpfw. T-26A 737(r)으로 이름붙이고, 제식화했다.
그러나 기관총의 경우 엄폐물이 없는 대인전에서나 효과를 보였지 잘 세워진 진지나 토치카에 숨어있는 적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점차 기관총 장착형들은 도태되었으며, 이듬해인 1932년 개량을 진행하게 된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Pz.Kpfw. T-26A 737(r)으로 이름붙이고, 제식화했다.
Т-26 Обр.1932 |
1932년에 새롭게 개량된 쌍포탑형으로서, 기존의 DT 기관총의 대물 화력 부재 문제로 프랑스제 37mm 호치키스 포 라이센스를 얻은 후 개량해 생산한 37mm PS-1 포를 우측에다 배치하여 성능을 높이려 하였다. 후에는 라인메탈 사의 37mm PaK30을 카피한 37mm PS-2 포로 교체했으며, 추가로 생산하기보다는 기존에 이미 생산되어 있던 차량들을 개조한 개체가 더 많은 편이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위의 1931년식처럼 같은 이름으로 Pz.Kpfw. T-26A-5 737(r)으로 이름붙이고, 제식화했다.
무장을 강화한 것은 좋았으나, 쌍포탑에 포탑 당 인원이 하나씩 할당되므로 37mm 포탑의 사수는 오직 혼자서 적 관측, 조준, 사격, 장전을 순차적으로 반복해야 하므로 피로도가 쌓인다는 단점과 쌍포탑 특성상 우측 포탑은 좌측을, 좌측 포탑은 우측의 적을 조준/사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기에 1933년형부터는 단포탑으로 개량된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위의 1931년식처럼 같은 이름으로 Pz.Kpfw. T-26A-5 737(r)으로 이름붙이고, 제식화했다.
무장을 강화한 것은 좋았으나, 쌍포탑에 포탑 당 인원이 하나씩 할당되므로 37mm 포탑의 사수는 오직 혼자서 적 관측, 조준, 사격, 장전을 순차적으로 반복해야 하므로 피로도가 쌓인다는 단점과 쌍포탑 특성상 우측 포탑은 좌측을, 좌측 포탑은 우측의 적을 조준/사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기에 1933년형부터는 단포탑으로 개량된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총 6,065대가 생산되었으며, 이는 T-26 시리즈 중에서도 최다 생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일 많이 생산된 사양답게 세계 각국에서 마구 사용했는데, 중화민국, 나치 독일, 스페인, 핀란드, 터키 등 다수의 국가들이 노획, 공여, 구매 등을 통해 입수하여 무장하였다.
제일 많이 생산된 사양답게 세계 각국에서 마구 사용했는데, 중화민국, 나치 독일, 스페인, 핀란드, 터키 등 다수의 국가들이 노획, 공여, 구매 등을 통해 입수하여 무장하였다.
Т-26 Обр.1933 |
1933년형에서는 45mm 20-K 전차포로 개수되며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된다.[5]
종전의 쌍포탑형과 비교 시에도 더 낮은 가격, 더 높은 내구성, 더 높은 전투력으로 각광받았다.
환풍구가 포탑 오른쪽 지붕에 추가된 사양은 1934년형이다.
초기에 생산된 T-26B는 T-26A의 차체를 그대로 유용했기에 차체 사양은 T-26A와 동일하다.
종전의 쌍포탑형과 비교 시에도 더 낮은 가격, 더 높은 내구성, 더 높은 전투력으로 각광받았다.
환풍구가 포탑 오른쪽 지붕에 추가된 사양은 1934년형이다.
초기에 생산된 T-26B는 T-26A의 차체를 그대로 유용했기에 차체 사양은 T-26A와 동일하다.
Т-26 Обр.1935 |
T-26B 초기형과 다른 점은 우선, T-26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전방 접이식 라이트가 이 시기부터 장착되었다.[6]
또한, 이전까지의 T-26B는 일체형 해치로서, 포수 및 전차장으로 분리된 해치가 아니었기에 시야 확보와 같은 사소한 사항에서도 적에게 포탑 내부를 보여주었던데다가 크기가 너무 커서 전차장은 물론 탄약수와 항상 같이 열어야 했으므로 효율성이 낮았기 때문에 일체형 해치를 반으로 잘라, 각자가 해치를 열 수 있게 만들며 임무 배분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7]
또한 1935년형에서는 차체를 용접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35년 말에는 T-26 1935년형 포탑 후면에 기관총 볼마운트와 DT-29 기관총 1정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는 야시 장비의 탑재인데, 이는 세계 최초로 전차에 야시장비를 장착한 것으로,[8] 야간 작전 수행시 포탑 인원들의 더 나은 시야를 보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이전까지의 T-26B는 일체형 해치로서, 포수 및 전차장으로 분리된 해치가 아니었기에 시야 확보와 같은 사소한 사항에서도 적에게 포탑 내부를 보여주었던데다가 크기가 너무 커서 전차장은 물론 탄약수와 항상 같이 열어야 했으므로 효율성이 낮았기 때문에 일체형 해치를 반으로 잘라, 각자가 해치를 열 수 있게 만들며 임무 배분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7]
또한 1935년형에서는 차체를 용접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35년 말에는 T-26 1935년형 포탑 후면에 기관총 볼마운트와 DT-29 기관총 1정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는 야시 장비의 탑재인데, 이는 세계 최초로 전차에 야시장비를 장착한 것으로,[8] 야간 작전 수행시 포탑 인원들의 더 나은 시야를 보장할 수 있었다.
Т-26 Обр.1936 |
"T-26B의 최종형"으로 불리는 사양이며, 다양한 개선점이 적용된 T-26으로 알려져 있다.
P-40 마운트 |
첫번째로, 대공 전용 마운트에 7.62mm DT 대공기관총을 장착했다는 것인데, 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대공용 기관총을 야전에서 임시로 장착하여 사용했던 것이 복엽기들이나 보병들을 상대로 높은 효율을 낸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군부에서도 이를 적극 추진한 결과물이다. 1937년형에 와서는 정식으로 DT 대공기관총이 보급되었다.
두번째로는 해치의 완전한 변화이다. 중기형까지만 해도 초기형의 일체형 해치를 그냥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임시변통형이었지만, 후기형에서는 전차장 전용 해치와, 탄약수 전용 해치가 드디어 분리되었다.
마지막으로, 후기형 T-26B부터는 TPU-26 내부 인터폰이 도입되어 각 전차간의 무전이 가능해지고, 추가로 안테나도 핸드레일 식이 아니라 일반 직선형의 안테나로 교체되었으며, 구동계의 개량을 통해 최대 95마력의 출력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이전까지와 다르게 완전 환골탈태한 T-26B 후기형은 스페인 내전과 할힌골 전투, 겨울전쟁, 계속전쟁 등의 전쟁에 참전하였고, 동시대의 전차들과 동급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며 대전차전에서 압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T-26B의 경우 중기형과 다른 점이 거의 없으며, 해치의 분리 정도가 적용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T-26B의 초기형과 후기형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해치가 분할되어 있는가와 없는가 정도.
이렇게 개량을 거쳤음에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실전을 치러 격파된 차량을 조사한 결과 화재 시 승무원 캐빈으로 불이 유입되는 순간에는 원통형 포탑에 적재된 탄약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말 그대로 화염이 밖으로 솟구치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T-26S 초기 생산분부터 포탑을 개량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두번째로는 해치의 완전한 변화이다. 중기형까지만 해도 초기형의 일체형 해치를 그냥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임시변통형이었지만, 후기형에서는 전차장 전용 해치와, 탄약수 전용 해치가 드디어 분리되었다.
마지막으로, 후기형 T-26B부터는 TPU-26 내부 인터폰이 도입되어 각 전차간의 무전이 가능해지고, 추가로 안테나도 핸드레일 식이 아니라 일반 직선형의 안테나로 교체되었으며, 구동계의 개량을 통해 최대 95마력의 출력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이전까지와 다르게 완전 환골탈태한 T-26B 후기형은 스페인 내전과 할힌골 전투, 겨울전쟁, 계속전쟁 등의 전쟁에 참전하였고, 동시대의 전차들과 동급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며 대전차전에서 압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T-26B의 경우 중기형과 다른 점이 거의 없으며, 해치의 분리 정도가 적용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T-26B의 초기형과 후기형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해치가 분할되어 있는가와 없는가 정도.
이렇게 개량을 거쳤음에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실전을 치러 격파된 차량을 조사한 결과 화재 시 승무원 캐빈으로 불이 유입되는 순간에는 원통형 포탑에 적재된 탄약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말 그대로 화염이 밖으로 솟구치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T-26S 초기 생산분부터 포탑을 개량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T-26B의 약점이었던 포탑을 개량한 최종 개량형으로서, 전 세대인 T-26B와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일 많이 참전한 사양으로, 전기형 후기형 모두 합쳐 총 2,618대가 만들어졌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Pz.Kpfw. T-26C 740(r)라는 제식명으로 사용했으며 핀란드군은 T-26C라는 제식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T-26S 후기형에 대하여는 따로 제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독일군과 핀란드군은 T-26S 전기형과 T-26S 후기형을 따로 제식명을 등록하지 않고 동일한 사양으로 묶어 구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노획한 독일군은 Pz.Kpfw. T-26C 740(r)라는 제식명으로 사용했으며 핀란드군은 T-26C라는 제식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T-26S 후기형에 대하여는 따로 제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독일군과 핀란드군은 T-26S 전기형과 T-26S 후기형을 따로 제식명을 등록하지 않고 동일한 사양으로 묶어 구분한 것으로 추측된다.
Т-26 Обр.1937 |
T-26B는 동시대 전차들을 상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간 여러 지역에서의 운용을 통해 드러난 단점은 가솔린을 이용하는 소련 경전차의 특성상 화염병 같은 외부 고열에 노출될 시 차체의 폭발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으로, T-26S를 개발할 때는 원통형 포탑이 스페인 내전에서 화염병에 의해 파괴된 경험을 교훈삼아 엔진 배기구를 후방으로 돌린 새로운 포탑을 장비했다.
또, T-26B에서 추가된 DT 기관총 전용 마운트와 접이식 라이트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리고 가장 진보한 점은 일전의 리벳 접합이 아닌 전기용접 공법을 도입하여 리벳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없앴으며, 추가로 주포 안정장치를 처음으로 탑재하여 공격력도 강화되었다.
이런 큰 성과에 소련 군부에서도 흡족해하며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생산되어 소련 기갑 전력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렇지만 차체 방호력이 종전의 T-26B와 동일하였기에, 이후 최종 개량형인 T-26S 1939년형에 와서는 경사장갑을 채용하기에 이른다.
또, T-26B에서 추가된 DT 기관총 전용 마운트와 접이식 라이트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리고 가장 진보한 점은 일전의 리벳 접합이 아닌 전기용접 공법을 도입하여 리벳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없앴으며, 추가로 주포 안정장치를 처음으로 탑재하여 공격력도 강화되었다.
이런 큰 성과에 소련 군부에서도 흡족해하며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생산되어 소련 기갑 전력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렇지만 차체 방호력이 종전의 T-26B와 동일하였기에, 이후 최종 개량형인 T-26S 1939년형에 와서는 경사장갑을 채용하기에 이른다.
Т-26 Обр.1939 |
T-26B 후기형이 T-26B의 최종형이라면, T-26S 후기형은 "모든 T-26의 최종형"이다.[9]
기존의 T-26S 초기형에서 차체 측면을 경사장갑으로 증강하여 더 나은 방호력을 꾀하는 등, 여러 개량점을 적용시킨 것이 특징이다.
T-26B, T-26S 초기형형과 더불어 수많은 차량이 독소전쟁과 계속전쟁에 참전했으며,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생산되었다.
기존의 T-26S 초기형에서 차체 측면을 경사장갑으로 증강하여 더 나은 방호력을 꾀하는 등, 여러 개량점을 적용시킨 것이 특징이다.
T-26B, T-26S 초기형형과 더불어 수많은 차량이 독소전쟁과 계속전쟁에 참전했으며,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생산되었다.
- 동급 대비 강력한 주포
T-26은 1933년에 들어서면서, 동급 대비 매우 강력한 주포인 45mm 20-K 주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주포는 당대 경전차급에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구경이 큰 주포였다.
특히, 45mm 20-K의 화력은 명품으로 취급받는 보포스 제 37mm Psv/K.36 포와 독일제 37mm KwK36 포보다 위력적이었으며, 비슷한 구경을 지닌 이탈리아의 1935년형 47/32 포나 일본제 1식 기동 47mm 속사포[10]보다도 관통력이 높았다.
- 높은 신뢰성
T-26은 그 본질이 신뢰성이 높아 수출 실적이 매우 높았던 빅커스 Mk. E를 개량한 물건이었기에 신뢰성은 원본과 동등할 정도로 믿을 만한 내구도를 보여주었으며, 이 덕에 각종 환경에서도 문제 없이 운용되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그 추운 러시아보다 더 한랭(寒冷 )의 땅인 핀란드에서도, 찌는 듯한 더위의 원난 성 및 동남아시아 전역에서도, 모래바람 날리는 페르시아에서도, 늪지가 많은 프랑스의 중원에서도 원활한 기동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굉장히 많은 전선에서 다양한 실전을 겪었으며, 이들 전역에서 모두 활약했다는 것에서 T-26의 신뢰성은 증명되었다.
- 쉬운 정비성 및 조작성
운용 인원이 3명인데다, 소련제 장비답게 조작법이 쉬운 편에 속해 경력이 부족한 전차병을 빠르게 숙달시켜 전투에 내보낼 수 있었으며, 정비성도 매우 간편했기에 핀란드, 독일같은 경우도 소련군이 유기한 T-26을 노획하여 피탄흔을 메꾸고 수리하여 자국 군대에 편제하는 등, 여러 군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느린 속력
T-26의 최속은 35km/h 정도가 한계였는데, 이 때문에 적 조우 시 기동으로 도주하거나 우회를 통해 적을 기습하는 전술을 쓰기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 단점이 장점이 될 때도 있었는데, 속도가 느렸기에 보병들과 보조를 맞추기 상당히 좋았으며, 이 덕에 순찰용으로 재편성되어 사용될 수 있었다.
- 얇은 장갑
장갑 수치가 15mm 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거의 모든 대전차병기에 의해 격파될 수 있었다. 특히, 겨울전쟁 중 핀란드군이 라티 L-39를 이용하여 측면을 가격해 내부 인원을 사살하고 별로 피해를 입지 않은 T-26을 노획하여 수리한 뒤 자국 편제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무전 장비 부족
T-26RT를 제외한 T-26 시리즈에는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각 전차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큰 피해를 입는 원인이 되었다.
전차 포는 매우 강력하나 공축기관총의 성능은 그리 좋지 못하다. 또, 엔진의 실린더가 과열되면 기름이 실린더에 공급되기도 전에 증발하므로, 제대로 기름이 공급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2~3시간마다 엔진의 점화 플러그가 제대로 충전되기 때문에 시동을 걸 때에는 편리하다.- T-26을 운용한 국민당군의 평가.
T-26은 전간기 전차들 중 매우 강력하고 혁신적인 전차였지만, 전간기라는 시대적 한계와 기술적 한계로 인한 단점 또한 혼재했다.
그러나 그런 태생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각종 전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었으며, T-34-76이나, T-60, T-70이 등장한 이후에도 주력 경정찰전차로 사용되었다.
동유럽권에서의 평가로는 T-34-76의 등장 및 미국의 렌드리스가 시행되기까지 전선에서 잘 버텨준 전차라고 평가하였으며, 이 외 국가에서는 극한의 추위에서도, 작열하는 사막에서도, 찌는 듯한 정글에서도 무리없이 기동하며 적들과 용감하게 맞서 싸운 전차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전선에 구애받지 않고 싸웠다는 점은 M4 셔먼 시리즈와도 동일한데, 셔먼도 T-26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각지의 환경에서 싸우고, 그 신뢰성을 증명해내었기 때문이다.
총평으로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보다 강력한 전차들과 맞서 싸운데다, 전차 및 기갑 차량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군사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전차로 평가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T-26/파생형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T-26/실전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T-26/운용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T-26/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T-26/모형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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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단차는 BRDM-2의 GAZ-41 엔진으로 기동한다. 이 때문에 기존 T-26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2] 일반 무장형 차량들은 10,300대로 추산되며, 나머지 1,701대는 교량전차, 정찰용 차량, 포병 관측 차량, 물자 및 견인용 트랙터 등의 파생형이다.[3] 러시아 및 핀란드에서 의장용으로 사용 중. 스티븐 잘로가의 저서에 따르면 본가인 소련에서는 1941년에 퇴역 후 치장장비로 전환 예정이었으나, 냉전 극초기였던 1946년 초까지 사용되었다.[4] 소련 육군, 소련 해군[5] 45mm 전차포는 기술 부족으로 포의 구경이 늘었을 뿐 대전차능력은 사실상 타국의 37mm와 동일한 물건이지만, 구경의 증가로 오는 파괴력은 37mm보다 높았다.[6] 핀란드의 경우 이 접이식 라이트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는지 타 노획 차량에도 이 접이식 라이트를 장착해 등화관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7] 다만 중기 생산분 중에서도 1935년 초기형에는 해치가 일체형으로 되어있었다.[8] 물론 NVD와 같은 야간투시경이 아니라, 그냥 서치라이트를 포방패에 추가로 장비한 것이다.[9] 일부 사료에서는 현대화형이라는 의미로 "T-26M"이나, "T-26-1"이라고도 한다.[10] 카탈로그 상으로는 최대 80mm 관통 가능이었지만, 실제 일본 공업력의 한계로 66~70mm 정도에서 그쳤다.[11] 77 페이지 분량이며, PDF 파일로 되어 있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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