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
오일( | |
출생지 | 진류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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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 237년 |
국적 | 후한 → 촉나라 |
작위 | 도정후 → 고양향후 → 제양후 |
경력 | 중랑장 → 토역장군 → 호군 → 관중도독 → 좌장군 → 독한중, 거기장군 겸 옹주자사 |
친척 | 목황후(누이) 오반(족제) |
오의(중국어 정체자:
생애
[편집]연주 진류군(현재의 허난성 카이펑시)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유언을 따라 촉으로 들어갔다. 유언은 죽은 아버지와 교분이 있었다.[1] 유언의 아들 유장 때 중랑장을 하였다. 212년(건안 17년) 유비가 촉을 침략하였다. 213년 유괴, 냉포, 장임, 등현과 같이 광한군 부현(涪縣)으로 나아가 유비를 저지하려 했으나 격파되었다. 오의는 유비에게 투항하고 토역장군(討逆
평가
[편집]고상하면서도 강직했으며 널리 사랑하는 마음씨도 있었다.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어하면서도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 228년 제갈량이 첫 북벌을 개시했을 때 사람들은 노련한 위연이나 오의가 그 선봉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5]
인명
[편집]《삼국지》에서는 일률적으로 오일, 《화양국지》에서는 일률적으로 오의라 하였다. 후대 사서들은 오일과 오의를 혼용하였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사마의의 이름인 懿(의)를 피휘한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삼국지》의 다른 부분에선 懿,
삼국지연의
[편집]사서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오의라 표기하였다. 낙성 전투의 서전에서 등현이 전사하는 등 전황이 좋지 않자 오란과 뇌동을 부장으로 삼고 유순과 함께 그 원군으로 간다. 장임이 거짓으로 패하며 유인한 장비를 협공하여 궁지에 몰지만 시기적절하게 당도한 조운에게 사로잡히고 투항한다. 이후 제갈량의 북벌에 종군하여 오반과 더불어 제갈량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한다. 제갈량 사후 거기장군이 되어 한중을 진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참고 문헌
[편집]전임 유염 |
촉한의 거기장군 234년 ~ 237년 |
후임 ? (243년부터 등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