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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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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응공·무학의 번역
영어arhat
산스크리트어arhat
팔리어arahant
버마어ရဟန္တာ
(IPA: [yahanda])
중국어阿羅漢あらかん, 羅漢らかん
(한어 병음ēluóhàn)
일본어阿羅漢あらかん, 羅漢らかん
(로마자: arakan)
태국어อรหันต์
베트남어a-la-hán
불교 용어 목록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나한상

아라한(阿羅漢あらかん, 산스크리트어: arhat, 팔리어: arahant, 영어: perfected one[1]), 혹은 줄여서 나한(羅漢らかん)은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2][3][4]

산스크리트어 아르하트(arhat)의 음역어로 아라가(おもねしか) 또는 아라하(おもねしか)라고도 한다.[5][6] 의역하여 살적(ころせぞく· 불생(せい· 응수공양(おう供養くよう) 또는 응공(おうきょう)이라고도 하며,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유학(ゆうがく)의 성자에 대비하여, 성도(ひじりみち)를 모두 성취했기에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無學むがく) 또는 무학인(無學むがくじん)이라고도 한다.[7][8][9][10][11][12]

원래는 부처여래10가지 명호여래10호(如來にょらいじゅうごう) 또는 불10호(ほとけじゅうごう) 가운데 하나로 부처의 지위증득유정, 즉 부처 또는 여래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이후 부파불교 시대에서는 고타마 붓다에 대한 존경이 커져서 부처와 수행자로서의 아라한과는 구분하게 되었고, 성문4향4과의 최고위인 아라한향 · 아라한과유정을 통칭하여 아라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2][4] 나아가 부파불교에서는 모든 유정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은 될 수 있으나 부처가 되지는 못한다는 견해까지 나타났고, 이에 대해 모든 유정성불할 수 있다는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는 낱말을 부파불교의 폄칭인 소승(小乘しょうじょう) 즉 성문 · 연각2승(じょう)의 최고위의 성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게 되었다.[2]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 등에서 아라한을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 해설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13][14][주해 1] 아라한은 넓은 뜻에서는 대승불교보살 수행계위부파불교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키며, 좁은 뜻에서는 부파불교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킨다.[16] 불교 경전과 논서들에서의 아라한의 의미는 이러한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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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불교에서는 불십호(ほとけじゅうごう)의 하나로서 응공이 쓰여져서 불타도 아라한이라고 불렸으나 부파불교에서는 불타에 대한 추모의 염이 높아짐과 동시에 불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불타는 과거 수백천생(すうひゃくせんせい)의 장기에 걸쳐서 갖가지 이타(利他りた)의 선행을 해온 특별한 인격이며 석존 혼자만이 불타로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제자들은 이 인격완성자로서의 불타의 가르침을 듣고(聲聞しょうもん) 그에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으로 될 수 있지만 불타로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승불교가 흥기(興起こうき)한 후 아라한은 소승(小乘しょうじょう)의 성자(聖者せいじゃ)에게만 국한하게 되었다.[2]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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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10호(如來にょらいじゅうごう) 또는 불10호(ほとけじゅうごう)로서의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데서 응공(おうきょう)이라고 번역된다. 일체의 번뇌를 끊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고 다시 더 배울 바가 없다는 뜻에서 무학(無學むがく)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아라한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아주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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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천신이나 호법신장에게 직접 보호를 받으며 아라한을 살해할 경우 불교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인 아비지옥에 떨어진다.[출처 필요]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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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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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수의 저작을 구마라습이 번역한 한역본 《대지도론》에서는 여래10호로서의 아라한과 성문4과의 성자로서의 아라한을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아라가(おもねしか: '아라하'라고도 읽는다)라고 표기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아라한(阿羅漢あらかん)이라고 표기하여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원어는 동일하다.[15] 말하자면, 원어상으로는 문맥에 따라 구분해야 하는데, 구마라습이 이미 문맥에 따라 구분하여 《대지도론》을 번역해 놓은 상태인 것이다.

참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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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rder 2000, 67쪽.
  2.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부파불교의 사상 > 아라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아라한: 阿羅漢あらかん 아르하트(arhat)의 음역(音譯おんやく)으로서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데서 응공(おうきょう)이라고 번역된다. 즉 일체의 번뇌를 끊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고 다시 더 배울 바가 없으며(無學むがく),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원시불교에서는 불십호(ほとけじゅうごう)의 하나로서 응공이 쓰여져서 불타도 아라한이라고 불렸으나 부파불교에서는 불타에 대한 추모의 염이 높아짐과 동시에 불타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불타는 과거 수백천생(すうひゃくせんせい)의 장기에 걸쳐서 갖가지 이타(利他りた)의 선행을 해온 특별한 인격이며 석존 혼자만이 불타로 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제자들은 이 인격완성자로서의 불타의 가르침을 듣고(聲聞しょうもん) 그에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성문으로서의 최고위인 아라한으로 될 수 있지만 불타로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승불교가 흥기(興起こうき)한 후 아라한은 소승(小乘しょうじょう)의 성자(聖者せいじゃ)에게만 국한하게 되었다."
  3. 星雲せいうん, "阿羅漢あらかん 3".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阿羅漢あらかん:  梵語ぼんご arhat,ともえとし arahant。ため聲聞しょうもんよんはていち如來にょらいじゅうごういちまたつくおもねかんおもね訶、おもね囉呵、おもねはじむしか、遏囉曷帝。略稱りゃくしょう羅漢らかん、囉呵。意譯いやくおうおうきょうおうしんころせぞくせいせい無學むがく真人しんじんゆびだんつきさんかいおもえ惑,あかしとくつきさとし,而堪受世あいだだい供養くよう聖者せいじゃ。此果どおり於大おだいしょうじょうしか一般いっぱんみなさく狹義きょうぎ解釋かいしゃくせんゆび小乘しょうじょう佛教ぶっきょうちゅう所得しょとく最高さいこうはて而言。わか廣義こうぎごとのり泛指だい小乘しょうじょう佛教ぶっきょうちゅう最高さいこうはて
     よりどころ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まきさん阿羅漢あらかんどおりさんじょう無學むがくはてためぼとけ異名いみょうまたそく如來にょらいじゅうごういち。另據俱舍ろんまきじゅうよん舉出,阿羅漢あらかん聲聞しょうもんよんはてよん沙門しゃもんはていちため小乘しょうじょうごくはて可分かぶんためしゅそく:(いち)阿羅漢あらかんむこうゆびひさしざい修行しゅぎょう階段かいだん,而趨こう於阿羅漢らかんはてしゃ。()阿羅漢あらかんはてゆびだんつき一切いっさい煩惱ぼんのうとくつきさとし而受世間せけんだい供養くよう聖者せいじゃあかしにゅう此果しゃ,四智圓融無礙而無法可學,しょう無學むがく無學むがくはて學位がくいわかさい完成かんせい無學むがくせい乃至ないし無學むがくせい定之さだゆきはちひじりどう,以及無學むがく解脫げだつ無學むがくせいさとしとうじゅうしゅほうのりしょうためじゅう無學むがくささえ
     せき於阿羅漢らかん語義ごぎよりどころ大智たいちろんまきさん大乘だいじょう義章よしあきまきじゅうななほん翻譯ほんやく名義めいぎしゅう卷一けんいちまき二等舉出殺賊、せいおうきょうさんしょうため阿羅漢あらかんさんためいにしえ以來いらいさい常見つねみこれせつそく:(いち)ころせぞくぞくゆびおもえ惑。阿羅漢あらかんのうだんじょ三界さんがいおもえ惑,しょうころせぞく。()せいそくせい阿羅漢あらかんしょうにゅう涅槃ねはん,而不ふく受生於三かいちゅうしょうせい。(さん)おうきょう阿羅漢あらかんつきだんじょ一切いっさい煩惱ぼんのうおう受人てん供養くようしょうおうきょう梵語ぼんご arhan,ため梵語ぼんご arhat(阿羅漢あらかん單數たんすう主格しゅかく意譯いやく供養くよう、受尊敬そんけい上述じょうじゅつさんちゅう,以應きょういち較為適切てきせつ。此外,慧遠えおん於大おだいじょう義章よしあきまき十末亦以應化一切眾生、だんつきしょ惑等よん解釋かいしゃく阿羅漢あらかんまたぜんりつ毘婆すなまき四則舉出打壞三界車輻、とおはなれ一切いっさい惡業あくごう覆藏ふくぞうとうしゅ阿羅漢あらかん釋義しゃくぎ
     另就阿羅漢あらかん種類しゅるい而論,聲聞しょうもんよんはてちゅう阿羅漢あらかん其根せい利鈍りどん差別さべつ可分かぶんためろくしゅよりどころざつおもね毘曇しんろんまき、俱舍ろんまきじゅうとうしょ舉,そく:(いち)退すさ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つく退ずさあい阿羅漢あらかんゆび遭遇そうぐうしょう惡緣あくえんそく容易ようい退すさしつ所得しょとくはてしゃ。()おもえ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さく死相しそう阿羅漢あらかんゆびよし於憂懼退しつはて而思自害じがいしゃ。(さん)護法ご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さくもりしょう阿羅漢あらかんゆびのう守護しゅご而不致退しつはてしゃ。(よん)安住あんじゅう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さくじゅうしょう阿羅漢あらかんゆび退すさまたすすむ,而安住あんじゅう於果しゃ。()こらえたち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つくすすむしょう阿羅漢あらかんゆびのう迅速じんそく精進しょうじん,而達於不動ふどうほうしゃ。(ろく)不動ふどうほう阿羅漢あらかんまたさく不壞ふえしょう阿羅漢あらかんゆびなが退すさしつ所得しょとくほうしゃ
     上述じょうじゅつろくしゅ阿羅漢あらかんちゅうぜんしゅため鈍根どんこんしゃとく解脫げだつあるときあいしん解脫げだつ,而後しゃ係屬けいぞく利根りこんしゃとく不時ふじ解脫げだつある不動ふどうしん解脫げだつ詳言しょうげん,倘若のうぐうぜん因緣いんねん而得入定にゅうじょう解脫げだつしょうため解脫げだつ隨時ずいじ入定にゅうじょう,而無須等まちぼうしゅ特定とくてい因緣いんねん解脫げだつしょうため不時ふじ解脫げだつまたぜんまもる自己じこ所得しょとく阿羅漢あらかんはてなみ解脫げだつ煩惱ぼんのうしゃしょうためあいしん解脫げだつさいよし煩惱ぼんのう而退しつはて解脫げだつしゃしょうため不動ふどうしん解脫げだつ。此外,不動ふどうほう阿羅漢あらかん以其利根りこん形成けいせいまたぶんためりょうたねそく:(いち)ほん來生きすぎ不動ふどうしゅせいしゃしょうため退すさほう阿羅漢あらかん退すさあい阿羅漢あらかん。()よし精進しょうじん修行しゅぎょう而達不動ふどうほうしゃしょうため不動ふどうほう阿羅漢あらかん。此二者合上述之五者共為七種阿羅漢。わかさいえんさとしふつのり總稱そうしょうきゅうしゅ阿羅漢あらかんまたたたえためきゅう無學むがく
     另據ちゅうおもね經卷きょうかんさんじゅうなりろんまき一等いっとうしょ舉,以慧解脫げだつ、俱解ぬげだいえんさとしふつ,而形成けいせいいちしゅきゅう無學むがく。其中,藉智慧ちえりょく解脫げだつ煩惱ぼんのう阿羅漢あらかんしょうためとし解脫げだつ阿羅漢あらかんわかとく滅盡めつじんじょう,而於しん智慧ちえりょう方面ほうめん悉皆しっかい解脫げだつ阿羅漢あらかんのりしょう解脫げだつ阿羅漢あらかん。此二者再加無疑解脫阿羅漢(ざい解脫げだつちゅう通達つうたつ一切いっさい文義ふみよし,而得よん無礙むげかいしゃ),のりなりさんしゅ阿羅漢あらかん。〔ふつほんぎょうしゅう經卷きょうかんさんじゅうよんまきよんじゅう北本きたもと涅槃ねはん經卷きょうかんじゅうはち彌勒みろく上生わぶけい大乘だいじょうおもね達磨だるましゅうろんまきじゅうよん甘露かんろあじろんまきじょうだい毘婆すなろんまききゅうじゅうよん法華ほっけよし卷一けんいちなり唯識ゆいしき論述ろんじゅつまきさんまつ法華ほっけよし疏卷いち大日だいにちけい疏卷いちこぼし梵語ぼんご卷一けんいちげんおう音義おんぎまきはち〕(まいり閱「きゅう無學むがく」147、「ろくしゅせい」1302、「よんこうよんはて」1683) p3692"
  4. 해주. "아비달마 불교 - 알기 쉬운 교리 강좌 Archived 2016년 3월 13일 - 웨이백 머신", 《월간 불광》. 제196호. 2013년 2월 22일에 확인.
    "선업에 의해 선한 과보를 받아 선취에 태어남도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아비달마에서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이처럼 업보의 계박에서 벗어나 윤회를 초월하는 것이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번뇌를 소멸하고 깨달음의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출세간의 길, 곧 성도이다.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이에 견도, 수도, 무학도의 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무학도는 수도의 과정이라기보다 견도 수도에 의한 목적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이 무학이다. 견도의 견은 4제를 관한다는 의미이다. 견도 후에 알기는 해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애욕과 같은 번뇌까지도 수도의 과정에서 다 끊었을 때 비로서 아비달마에서 최고의 성자로 불리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도중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네단계 계위가 설정되어 있다.
    아라한인 응공은 여래십호의 하나이다. 부처님도 스스로를 아라한이라고 부르셨다. 그러한 아비달마논서에 있어서 수행자가 도달하는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는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깊이 숭앙하는 마음에서 불타의 위대함을 극찬하면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의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그들이 도달한 아라한이 결코 불타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5.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1b19 - T25n1509_p0071c01. 아라가(おもねしか) 1
    " ふくめいおもねしか」。うんなんめいおもねしか」? 「おもねめいぞく」,「しかめいころせ」——めいころせぞく」。如偈せつ
     「ふつ以忍ためよろい, 精進しょうじんためつよしかぶと
      持戒じかいためだいうま, 禪定ぜんじょうためりょうゆみ
      智慧ちえためこう; がいやぶ魔王まおうぐん
      內滅煩惱ぼんのうぞく, めいおもねしか。」
    ふく,「おもねめい」,「しかめいなま」——めいせい」。佛心ほとけごころ種子しゅし後世こうせい田中たなかなま無明むみょうぬかだつゆえ。 ふく,「おもねしかめいおう供養くよう」。ふつしょゆい使じょつきとく一切いっさい智慧ちえおう一切いっさい天地てんち眾生供養くよう;以是ふつめいおもねしか」。"
  6.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 K.549, T.1509, 제2권. pp. 83-84 / 2698. 아라가(おもねしか)3
    "또한 아라가(おもねしか)136)라고 부른다. 어찌하여 아라가라 하는가? 아라(おもね)는 적(てき)137)이요 가(しか)는 살(ころせ)138)이니, 곧 살적(ころせてき)이라 한다.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부처님은 인욕으로 투구를 삼고
      정진으로 갑옷을 삼고
      지계로써 큰 말을 삼고
      선정으로 활을 삼고

      지혜로써 좋은 화살을 삼아
      겉으로는 마왕의 군대를 깨뜨리고
      안으로는 번뇌의 도적을 무찌르니
      이를 아라가라 한다네.

    또한 아(おもね)는 불()이요, 라가(しか)는 생(せい)이니,139) 불생(せい)이라 한다. 부처님의 마음 종자가 뒷세상의 밭에서 생겨나지 않아 무명의 쭉정이를 벗기 때문이다.
    또한 아라가는 공양(供養くよう)을 받을 만한 분이라 하니, 부처님은 모든 번뇌가 모두 다하고 온갖 지혜를 얻었으므로 일체 천지의 중생들의 공양을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아라가라 한다.
    136) 범어로는 Arhat.
    137) 범어로는 ari.
    138) 범어로는 han.
    139) 범어 arhat를 부정접두어 a-와 rahat의 합성어로 보는 경우이다."
  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권. p. 85 / 1397. 무학(無學むがく)
    "논하여 말하겠다. 안근은 모두 바로 '견()'이며, 법계의 일부분인 여덟 가지 종류도 '견'이다. 그리고 그 밖의 것은 모두 비견()이다.
    어떠한 것이 여덟 가지인가?
    이를테면 유신견(ゆう) 등의 다섯 가지 염오견(しみけがれ)과 세간의 정견(せい)과 유학(ゆうがく: 무루지를 성취한 성자)의 정견과 무학(無學むがく: 성도를 모두 성취한 성자, 즉 아라한)의 정견이니, 법계 가운데 바로 이러한 여덟 가지가 '견'이며, 그 밖의 법계와 나머지 16계는 모두 비견이다."
  8. 운허, "阿羅漢あらかん(아라한) 1".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阿羅漢あらかん(아라한):
    [1] 【범】 arhan 소승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聲聞しょうもん) 4과의 가장 윗자리. 응공(おうきょう)ㆍ살적(ころせぞく)ㆍ불생(せい)ㆍ이악(はなれあく)이라 번역. ⇒대아라한(だい阿羅漢あらかん)ㆍ제사과(だいよんはて)
    [2] 여래 10호의 하나. 성문 아라한과 구별하기 위하여 ‘아라하’라고 하나 원어의 뜻은 같음"
  9. 운허, "無學むがく(무학".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無學むがく(무학):
    [1] 【범】 aśaikṣa 극과(ごくはて)란 뜻.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고, 소승 증과의 극위(きょく)인 아라한과를 얻은 이를 말한다. 이 지위에 이르면 더 배울 것이 없으므로 무학이라 하고, 이 자리를 무학위(學位がくい)라 한다.
    [2] 고려 말기 스님. 자초(ちょう)의 법호."
  10. 星雲せいうん, "無學むがく".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無學むがく:  梵語ぼんご aśaiksa。ためゆうがく對稱たいしょう。雖已佛教ぶっきょう真理しんりただしだん迷惑めいわくなおゆうしょ學者がくしゃしょうためゆうがく相對そうたい於此,無學むがくゆびやめたち佛教ぶっきょう真理しんり極致きょくち迷惑めいわくだんまた學者がくしゃ聲聞しょうもんじょう四果中之前三果為有學,だいよん阿羅漢あらかんはてため無學むがく。〔俱舍ろんまきじゅうよん法華ほっけげんさん卷一けんいち〕(まいり閱「きゅう無學むがく」147、「ゆうがく」2458) p5138"
  11. 승가제바 한역(T.26). 《중아함경》(ちゅうおもね含經) 제30권. 대정신수대장경. T1, No. 26, CBETA. 2022년 8월 23일에 확인:
    T01n0026_p0616a17║居士こじうんなんきゅう無學むがくじんおもえほう昇進しょうしんほう
    T01n0026_p0616a18║どうほう退すさほう退すさほう護法ごほう——まもるのり退すさまもるのり退すさ
    T01n0026_p0616a19║じつじゅうほうとし解脫げだつ、俱解脫げだついいきゅう無學むがくじん。」
  12. 승가제바 한역, 번역자 미상(K.649, T.26). 《중아함경》 제30권. 2022년 8월 23일에 확인:
    거사여, 어떤 것이 9무학인인가? 사법(おもえほう)ㆍ승진법(昇進しょうしんほう)ㆍ부동법(不動ふどうほう)ㆍ퇴법(退すさほう)ㆍ불퇴법(退すさほう)ㆍ호법(護法ごほう)보호하면 물러나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면 물러난다ㆍ실주법(じつじゅうほう)ㆍ혜해탈(とし解脫げだつ)ㆍ구해탈(俱解脫げだつ)이니, 이것을 9무학인9)이라고 한다.”
    9) 무학인(無學むがくじん阿羅漢あらかん)의 위계에 9종의 차별이 있다. 첫째 퇴법(退すさほう)이란 질병 등의 특별한 인연이 닥치면 곧 얻었던 과(はて)를 잃어버리는 자이니 아라한 중 가장 근기가 둔한 자이다. 둘째 사법(おもえほう)이란 얻은 아라한과를 잃게 될까 두려워 자살하여 얻은 과를 지키려는 자이다. 셋째 호법(護法ごほう)이란 얻은 법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키지만 만일 조금만 나태해도 곧 물러나고 잃어버리게 되는 자이다. 넷째 실주법(じつじゅうほう)이란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물러나지도 않고 또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자이다. 다섯째 승진법(昇進しょうしんほう)이란 수행을 능히 감내해 움직이지 않는 경지를 빨리 증득하는 자이다. 여섯째 부동법(不動ふどうほう)이란 어떤 역경계를 만나더라도 수행의 의지와 갖가지 삼매의 인연이 부서지지 않는 자이다. 일곱째 불퇴법(退すさほう)이란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얻은 법의 공덕을 잃지 않는 자이다. 여덟째 혜해탈(とし解脫げだつ)이란 지혜를 방해하는 번뇌를 끊어 지혜의 자유를 얻은 자이다. 아홉째 구해탈(俱解脫げだつ)이란 선정과 지혜를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끊어 심해탈(しん解脫げだつ)과 혜해탈(とし解脫げだつ)을 모두 성취한 자를 말한다.
  13.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1b19 - T25n1509_p0071c01. 아라가(おもねしか2).
  14.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 K.549, T.1509, 제2권. pp. 83-84 / 2698. 아라가(おもねしか)4.
  15. 운허, "阿羅漢あらかん(아라한) 2".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16. 星雲せいうん, "阿羅漢あらかん 4". 2013년 4월 20일에 확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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