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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서(金湑)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개설]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의 수로왕 탄생 연대가 서기 42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서기 65년인 신라계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연도보다 23년이 빠르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가 되는 것이다. [연원]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가 설치되면서 가락국 왕 김수로의 후손들이 김해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으며, 중시조 김유신 이후 148개의 계파로 나뉘었다. 그중 경파(きょう)·사군파(よんくん)·삼현파(さんけん)·문경공파(ぶんけいこう) 후소들의 수가 가장 많다. 청도군에 세거하는 김해 김씨는 수로왕의 13세손인 김유신을 중시조로, 49세손인 김관을 파시조로 한 삼현파이다. 삼현은 청도의 삼현으로 불리는 김극일(きむ克一かついち)·김일손(きむ馹孫)·김대유(きむだいゆう)를 일컫는 말이다. [입향...

  • [정의] 1589년(선조 22)에 정여립(ていなんじりつ)[1546~1589]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 혐의로 박해를 받고,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조대중(曺大ちゅう) 등이 화를 입은 사건. [개설] 기축사화(おのれうし)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고변(つげへん)에서 시작되어 1591년까지 수많은 동인의 인물들이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이를 통해 동인과 서인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크게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기축사화의 발단은 황해도 관찰사 한준(かんじゅん)[1542~1601]과 재령 군수 박충간(ぼくただしただし)[?~1601], 안악 군수 이축(李軸)[1538~1614], 신천 군수 한응인(かんおうとら)[1544~1614] 등이 정여립의 역모를 고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조정에서는 선전관과 의금부 도사를 황해도와 전라도에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정여립은 황해도 안악군에 사는 변숭복(あたりたかしぶく)[?~1589]을 통해 그의 제자였던 안악 교생 조구(ちょうたま)가

  • [정의]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군인이자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가계] 본관은 고령(こうれい).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117번지[현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에서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의 저명한 항일 운동가인 박상희(ほおしょう熙)는 박정희(ぼくただし熙)의 형이다. 5·16 군사 정변을 함께 감행한 김종필(金鍾泌きんしょうひつ)은 박상희의 사위로, 박정희의 처조카이다. 부인은 육영수(りくえいおさむ)이고, 자녀는 딸 박근혜(ほお槿むくげめぐみ), 박서영[본명 박근영(ほお槿むくげれい)]과 아들 박지만(ほおこころざしばん)이 있다. [활동 사항] 1. 군사 쿠데타 이전의 전력 박정희는 1932년 3월 25일 구미공립보통학교[현 구미초등학교], 1937년 3월 25일 대구사범학교[현 대구교육대학교], 1942년 3월 25일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1944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박정희는 1937~1939년까지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공동주택단지 [개설] 개나리 아파트는 1~6차까지 1,840가구로 1970년대 영동[강남]택지개발사업 당시 지어져 강남 일대가 주거중심으로 도약하는데 일조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11-1번지의 대지 43,365㎡에 5층 건물 27개동, 12층 건물 10개동, 13층 건물 3개동으로 총 40개동의 대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단위세대는 19평형 90가구, 21평형 120가구, 24평형 73가구, 26평형 110가구, 28평형 140가구, 29평형 60가구, 30평형 140가구, 31평형 277가구, 34평형 182가구, 41평형 144가구, 47평형 144가구, 48평형 96가구, 57평형 168가구, 62평형 96가구로 총 1,84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연면적은 66,748㎡이며, 난방은 중앙난방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업주체는 삼호주택이 맡았으며, 1978년 12월 30일 사업승인을 통과하여 1980년 5월 12일 준공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신법리에 있는 공립 특수목적 고등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교육 목표는 ‘인성과 기술력을 갖춘 나노 분야 영 마이스터 육성’이고, 교훈은 ‘꿈·열정’이다. [변천] 한국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는 1966년 12월 19일 무안농업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67년 3월 10일 개교하였다. 1973년 1월 9일 무안농업고등학교에서 무안종합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78년 11월 4일 무안종합고등학교에서 무안실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년 3월 1일 무안실업고등학교에서 밀양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2009년 3월 1일 밀양공업고등학교에서 밀양전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19년 3월 1일 밀양전자고등학교에서 한국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전환 개교하였다. 2022년 1월 7일 제53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 총 4,495명의 졸업생[제1회 나노마이스터고 졸업생 90명]을 배출하였다. [교육...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밀알학교는 기본생활자립 능력과 자신의 재능을 길러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자주적인 인간을 육성함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장애 극복 의지와 강인한 체력을 배양[건강한 사람]하고, 기본질서의식을 확립하고,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도록 한다[더불어 사는 사람]. 자기결정능력을 증진시키고 자립생활의 기능 강화[자주적인 사람]를 세부 목표로 한다. 교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배우고 바르게 자라자’이다. [변천] 밀알학교는 1996년 12월 24일 설립을 인가받고 1997년 3월 10일 13학급을 편성[유치부 3학급, 초등부 5학급]하여 개교하였다. 1998년 3월 3일에는 중학부 과정 2학급이 설치 인가받아 총 17학급이 된 것을 시작으로, 2001년, 2003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1년까지 꾸준히 학급편성을 늘려 현재 총 32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2002년 11월

  • [정의] 울산광역시 지역에서 살구 크기의 돌을 던지고 받으며 노는 놀이. [개설] 공기놀이는 두 명 또는 여럿이 되는 여자아이들이 살구나 살구만한 돌 다섯 개를 가지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던지고 집거나 받는 놀이이다. 이를 ‘살구받기’, ‘살구놀이’ 등이라고도 한다. [연원] 공기놀이의 연원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규경(李圭けい)[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둥근 돌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공기(拱碁)라고 한다. 둥근 돌알을 공중에 던져 손바닥으로 받고 이미 받은 것을 솥발 형태로 만드는 것을 솥발공기[かなえあしきょう]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놀이 도구는 살구 또는 살구 크기의 돌 다섯 개이며, 놀이 장소는 던지고 받기에 적당한 공간이면 된다. [놀이 방법] 살구 크기의 돌 다섯 개를 준비한 후 선후를 정한다. 다섯 개 돌을 땅에 흩뿌리고 그

  • [정의]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내란을 일으키자 인조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난 사건. [개설] 1623년(인조 1) 서인 세력은 인조반정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33인을 등위로 나누어 책록하였다. 그중 2등에 녹훈된 이괄(李适)[1587~1624]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에 1624년 인조는 공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어 직산과 천안을 거쳐 공주에 이르렀으며, 다시 환궁할 때에는 직산에 머물렀다. 이괄의 군대는 1만여 명의 반란군을 이끌고 영변에서 남하하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장만(ちょうばん) 휘하의 관군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역사적 배경] 1623년(인조 1) 서인 세력은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하였다. 인조반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33인은 정사공신에 녹훈되고 등위에 따라 벼슬을 얻었다. 이때 이괄은 반정 계획에 늦게 참여하였다 하여 2등에 책록되고 아들과 아우는 논공행상

  • [정의] 일제강점기 의료 사업, 교육 사업, 여성과 빈민 구제를 위해 헌신했던 미국 출신의 간호 선교사. [개설] 서서평(じょ舒平)[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는 1880년 9월 26일 독일 헤센주 비스바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가 가톨릭 미션스쿨에 진학하였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1901년 뉴욕주에 있는 성 마가병원 간호전문학교(St. Mark’s Hospital Nursing School)를 졸업하였다. 이후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고 남장로교회에서 파송(おく)하는 해외 선교사에 자원하여 1912년 한국으로 왔다. 서서평은 입국하여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활동하였는데, 1919년 3.1운동으로 부상당한 조선인들을 치료해 주고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해 줬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활동이 금지되자 전라남도 광주 제중원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서서평은 최흥종 목사가 설립한 '나환자수용소'를 찾아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하였으며, 조선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동에 있는 소년 보호 시설. [설립 목적] 오륜정보산업학교는 10세 이상 19세 미만의 10호 처분[국가 교정 시설에 24개월 간 수감 교육] 위탁 교육, 직업 능력 개발 훈련, 컴퓨터, 검정고시 준비, 보호자 교육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47년 1월 8일 부산소년원으로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2가에 개원하였다. 주택지에 자리 잡은 소년원은 주변 주민들의 이전 요구에 따라, 1970년 3월 12일 오륜동으로 이전하였고, 1974년 3월 1일 법무부 제4공공 직업 훈련원 설치 인가를 받았다. 1980년 9월 2일 직업 훈련 소년원으로 지정[법무부 훈령 제87호]되었고, 1990년 3월 1일 오륜초등학교를 개교하였다. 1994년 12월 29일 직업훈련원을 오륜직업전문학교로 변경하였고, 1997년 1월 11일 소년원 자체를 오륜직업전문학교로 변경하였다. 2000년 9월 1일 오륜정보산업학교로 변경하였고, 2005년 3월 3일 신축 청사를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소고기 처지개살과 우둔살을 두껍게 썰어 낸 소 생고기. [개설] 뭉티기란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만하게 뭉텅뭉텅 썰어낸 생쇠고기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처지개살[사태살의 일종으로 소 뒷다리 안쪽의 허벅지살]을 뭉텅뭉텅 썰어 참기름, 마늘, 굵게 빻은 고춧가루 등을 섞은 양념에 푹 찍어 먹는다. 유일하게 대구에만 있다. [연원 및 변천] 뭉티기는 1950년대 후반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의 ‘너구리’라는 실비집의 창업주인 정재인에 의하여 등장한 음식이다. 정재인이 근처의 정육점에서 신선한 고기를 공급 받아 근막을 발라내고 힘줄을 끊어 내어 큼직막하게 썰어 손님상에 내기 시작한 것이 시조이다. 처음에는 묵은지에 싸서 먹었지만 이후 간이 센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 먹게 되었다. 대구광역시가 산업도시로 발전하면서 산업 노동자들의 술안주로 출발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썰어 낸 모양을 본떠 뭉텅이, 뭉치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인 ‘뭉티기’라는 이름을...

  • [정의] 1987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던 오대양(주)에서 일어났던 집단 자살 사건. [역사적 배경] 오대양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ぼく順子じゅんこ)는 1984년에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였다.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던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았으며, 이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3명을 살해한 후 잠적하였다. 그리고 범행과 조직의 전모가 공개될 것을 우려해 집단 자살극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과]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던 오대양(주)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결과] 오대양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 [정의]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선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순흥안씨는 문성공(文成ふみなりおおやけ) 안향(やす珦)의 8대손 안선손(安善あんぜんまご, 1422~1497)이 안동권씨(安東あんどうけん)의 사위가 되어 15세기 중엽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순흥안씨는 시조 안자미(安子やすこ)가 고려시대 신호위상호군(かみとらまもるうえまもるぐん)에 추봉되었고, 후손들이 순흥현에 세거하면서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순흥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입향경위] 문성공 안향의 8대손 안선손이 권구서(けんきゅうじょ)의 사위가 되어 처가 마을인 와룡면 가구리에 정착하였다. 안선손은 자녀 교육에 힘을 쏟아 손자 안수(やす琇, 1489~1546), 증손 안제(やす霽, 1538~1602) 부자는 문과에 급제하여 고성군수와 충청도사를 지냈다. 안제는 백담(かしわ潭) 구봉령(おおとりよわい)에게 배웠으나 학업이 성취한 뒤에는 도학을 닦기 위하여 회곡(みそだに) 권춘란(けん春蘭しゅんらん)과 함께 퇴계(退すさけい) 이황(李滉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온달과 평강공주에 대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는 평강공주(平岡ひらおか公主こうしゅ)가 어려서 아버지 평원왕(平原へいげんおう)[?~590]에게 들은 말을 지키기 위하여 온달(ゆたかたち)[?~590]에게 시집간다는 이야기이다. 온달은 평강공주의 내조로 무술과 학문을 익혀 후일 장군 벼슬에 오르게 된다. [채록/수집 상황]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는 2011년 1월 18일 전라북도 익산시 용동면 대조리 삼정마을에서 김기철에게서 채록하였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는 2011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평강공주는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다. 공주가 어려서 울면 평원왕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며 겁을 줘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평강공주가 장성하자 평원왕은 평강공주를 좋은 곳에 시집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평강공주는 평원왕에게 자신은 온달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궁궐을 나왔다. 온달은...

  • [정의] 2003년 7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전라북도 부안 군민들이 벌인 핵 폐기장 설치 반대 운동. [개설] 2003년 7월 14일에 전라북도 부안 군수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핵폐기물의 처리·관리 시설인 핵 폐기장[방폐장]의 부안군 위도 유치를 신청했고, 부안에서는 핵 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이 시작되었다. 2003년 7월 24일에 산업자원부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어 전라북도 부안군의 위도면을 핵 폐기장 부지로 최종 확정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주민들은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위도면의 방폐장 건설을 막기 위해 항쟁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주민들 상당수가 부상을 당했으며 사법 처리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2004년 2월 14일 방폐장 건립에 대한 부안 군민의 찬반 투표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은 91%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법적 효력에 대한 논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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