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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반야

지혜, 정견, 무분별지를 뜻하는 불교 용어

반야(般若はんにゃ)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또는 팔리어 빤냐(paññā)를 가리키는 낱말인데, 뜻에 따라 지혜(智慧ちえ)로 번역하고, 간단히 (さとし) 또는 (とし)라고도 한다.[1] 반야는 제법의 실상, 즉, 모든 유위법의 실제, 즉, 우주 만물의 본성이 괴로움(변하고 무너지는 것) · 무상(일시적인 것) · 무아(실체 없는 것) 즉 (비어 있는 것, 인연따라 생기는 것)임을 아는 것 또는 보는 것[あきら五蘊ごうんみなそら = せい]으로, 나아가 이러한 앎과 봄의 극치[究竟きゅうきょうさとし = せい]에서 모든 번뇌소멸되어 열반증득함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진여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 = せい)를 뜻한다. 달리 말하면, 반야란 곧 정견이다. 요약하자면, 반야 즉 정견은 길이자 목표이다.[2][3]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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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즉 반야는 그 기초 또는 출발이 인과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4][5]을 아는 것 또는 믿는 것에 있다.[6][7][8][9] 즉, 인과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견(邪見じゃけん)이 없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다. 달리 말해, 8정도정견의 시작이다.[10][11] 인과 · 연기법이라고 할 때 불교에서는 특히 고집멸도의 4성제와 무명에서 노사까지의 12연기를 가리킨다. 4성제는 괴로움(고)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번뇌(집)이고 괴로움의 소멸 즉 참된 행복 즉 열반(멸)을 증득하게 하는 원인이 성도(ひじりみち) 즉 8정도(도)라고 천명한다. 12연기무명 즉 무지라는 번뇌가 5취온의 삶 즉 윤회를 일으키는 궁극의 원인이며, 무지의 소멸 즉 지혜 즉 반야가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궁극의 원인이라고 천명한다. 반야는 선한 업 즉 유익한 업을 쌓아 현세와 미래에 마음에 드는 좋은 결과 즉 기뻐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뿌리 또는 원인인 무탐 · 무진 · 무치3선근 중 무치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견을 완전히 갖추는 것, 연기법을 완전히 아는 것, 인과를 완전히 아는 것이 반야의 완성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이다.[12][13]

완전한 깨달음열반증득과 관련하여, 충분한 수행력이 쌓였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좌선삼매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4][15]

마땅히 열반이라는 최선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한다. 정진의 힘으로 깊은 선정에 들어 4념처 중 법념처에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으며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아 열반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이 괴로움은 일체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즉, 《반야심경》에서 설하고 있는 바처럼 제법을 관[あきら]하여 그 모두의 실상이 괴로움무상실체 없음임을 정견[]함으로써[あきら五蘊ごうんみなそら], 번뇌가 적멸하여 열반으로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모든 괴로움이 남김없이 사라진다[一切いっさいやく]고 말하고 있다. 정진 · 선정 · 반야바라밀에 의해 열반이 증득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야란 선정에 든 상태에서 제법의 실상이  · 무상 · 무아임을 아는 것 또는 관하는 것, 즉, 연기를 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무지를 비롯한 내부의 번뇌소멸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증득되는 열반의 무분별지라고 말하고 있다.

반야 즉 정견은 길이자 목표이다.[16][17] 인과를 믿는 것에서 출발하여 중도 연기를 보는 것이다. 선법(유익한 법)과 불선법(해로운 법)을 분별하고 식별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지켜나가는 진여분별지[げん眞如しんにょ]에서 시작하여 중도 연기에 대한 깨달음의 극치인 진여무분별지[はなれげん眞如しんにょ]에 이르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서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 혹은 팔리어 빤냐를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고 음역인 '반야'를 사용한 것은 불경의 한역(かんやく) 시 적용했던 원칙인 5종불번(しゅこぼし: 5가지 번역하지 않는 원칙) 가운데 존중불번(尊重そんちょうこぼし)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즉,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면 그 본래의 뜻은 깊고 심대하나 번역함으로 인해 그 뜻이 얕아지고 가벼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8] 하지만, 불교 논서들에서는 흔히 반야를 혜(とし)로 번역하고 있다.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반야(般若はんにゃ) 즉 혜(とし, prajñā, paññā)는 택법(ほう) 즉 간택(簡擇: 정확히 식별하여 판단함)[19][20][21]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으로, 5위 75법법체계에서 심소법(しんしょほう)의 대지법(大地だいちほう: 마음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2][23][24]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혜(とし)는 부파불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택법[25][26]간택[27][28]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이지만 5위 100법법체계에서 심소법별경심소(べつさかいしんしょ: 특정 대상 또는 경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9][30][31][32][33] 상좌부 불교의 교학에서는 8정도를 크게 (戒) · (じょう· 혜(とし)의 3학(さんがく)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せい)과 정사유(せい思惟しい)를 로 분류한다.[34][35] 이와 관련하여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ゆういん有緣うえんゆうばくほうけい)〉에서 고타마 붓다정사유(せい思惟しい)의 반대인 부정사유(不正ふせい思惟しい: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가 무명(無明むみょう)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구사론》 등에 따르면, (さとし· (· 명(あきら· (さとし· 해(かい· 혜(とし· 광(ひかり· (かん)을 통칭하여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36][37] 이 때문에 설일체유부5위 75법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법체계에서 혜(とし)라는 명칭의 은 있어도 (さとし· (· 명(あきら· (さとし· 해(かい· 광(ひかり· (かん)이라는 명칭의 은 없는데, 이들의 본질[自性じしょう, そう]이 모두 혜(とし)와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설일체유부에서는 성자의 지혜, 즉 출세간의 지혜, 즉 번뇌단멸하는 힘을 가진 무루혜 또는 무루지를 크게 법지(ほうさとし)와 유지(るいさとし)의 2가지로 구분한다. 법지욕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고, 유지색계무색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다. 또한,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4성제 ·  ·  · 의 각각의 측면에서 보아서 각각 고지(さとし· 집지(しゅうさとし· 멸지(めつさとし· 도지(みちさとし)라 한다. 그리고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깊이 또는 완전함의 측면에서 보아서 무학위아라한이 색계나 무색계의 선정에서 증득하는 무루지진지(つきさとし)와 무생지(なまさとし)라 한다.[38][39][40][41][42]

대승불교에서는 특히 부처가 증득한, 번뇌장소지장단멸함으로써 드러나는 진여를 깨친 완전한 지혜 또는 진여의 지혜, 즉 부처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 산스크리트어: nirvikalpa-jñāna, 니르비칼파 즈냐나)를 가리켜 반야(般若はんにゃ) 또는 마하반야(般若はんにゃ, 산스크리트어: mahāprajñā· 대반야(だい般若はんにゃ· 대지(大智たいち)라고도 하며, 보리(菩提ぼだい, 산스크리트어: bodhi· 대보리(だい菩提ぼだい· 대원경지(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 산스크리트어: ādarśa-jñāna) 또는 구경각(究竟きゅうきょうさとし)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여무분별지가 모든 성자선정(禪定ぜんじょう)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갖가지 무루혜의 근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의 각 종파는 진여무분별지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운다. 대승불교중관학파에서는 반야 또는 마하반야의 입장에서 현상을 관하여 온갖 번뇌를 벗어나게 하는 방편으로서의 선정(禪定ぜんじょう) 수행인 팔불중도(はち中道ちゅうどう)의 공관(そらかん)만을 세운다.[43]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에서는 진여무분별지본질의 입장에서는 근본지(根本ねもとさとし) 또는 근본무분별지(根本こんぽん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라 하고 진여를 완전히 깨칠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증득의 입장에서는 후득지(こうとくさとし) 또는 후득무분별지(こうとく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라 하며, 가행(ゆき: 노력, 방편) 즉 선정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진여무분별지의 일부로서의 갖가지 무루혜가행지(ゆきさとし) 또는 가행무분별지(ゆき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라 하며, 가행지근본지를 깨쳐 후득지가 드러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44]대승기신론》등의 대승불교여래장사상 계열에서는 진여무분별지 또는 자성청정심(自性じしょう清淨せいじょうしん)을 본질의 입장에서 본각(もとさとし)이라 하고, 증득의 입장에서 범부가 최초로 증득하는 무루혜상사각(相似そうじさとし)이라고 하고, 성자선정 수행 즉 지관(止觀しかん)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중간의 갖가지 무루혜수분각(隨分ずいぶんさとし)이라 하고, 성자근본무명을 끊고 진여를 완전히 깨쳐 본각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구경각(究竟きゅうきょうさとし)이라 한다.[45][46]

반야의 뜻이 넓고 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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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ñā의 번역
한국어반야, 혜
(로마자: banya)
영어wisdom,
understanding
산스크리트어prajñā
팔리어paññā
버마어ပညာ
(IPA: [pjɪ̀ɴɲà])
중국어とし, 般若はんにゃ
(한어 병음bōrě)
일본어般若はんにゃ
(로마자: hannya)
몬어ပညာ
([[[:틀:IPA-mnw]]])
샨어ပိင်ႇၺႃႇ
([piŋ2 ɲaa2])
티베트어shes rab
태국어ปัญญา or ปรัชญา
(RTGS: panyaa or pratyaa)
베트남어bát-nhã
불교 용어 목록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반야(般若はんにゃ), (とし) 즉 판단작용은 그 범위가 아주 넓고 그 깊이도 차이가 큰데, 크게 대별하면 나쁜 지혜 또는 그릇된 지혜인 악혜(あくとし)와 한 지혜 또는 바른 지혜인 선혜(ぜんとし)로 나뉜다.[47][48][49] 예를 들어, 8정도정견(せい)은 선혜에 속하며 그 반대인 부정견(不正ふせい) 또는 사견(邪見じゃけん)은 악혜에 속한다.[50][51]

엄격히 말하자면 악혜 즉 그릇된 판단작용도 여전히 판단작용이므로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지혜, 반야 또는 라고 할 때는 선혜만을 뜻한다. 이 경우, 즉 선혜로서의 판단작용식별력(識別しきべつりょく, 영어: power of discernment, discrimination[52])을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택법(ほう, 산스크리트어: dharma-pravicaya, 팔리어: dhamma-vicaya, 영어: discrimination of dhammas,[53] discrimination of states[54])이라고 한다. 즉 모든 (ほう)을 살펴서 참된 것[しん]과 거짓된 것[にせ], 선한 것[ぜん]과 악한 것[不善ふぜん]을 판별하여, 참된 것과 한 것을 취하고 거짓된 것과 한 것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55][56][57][58] 그리고, (しのべ, 산스크리트어: kṣānti)과 (さとし, 산스크리트어: jñāna, 즈냐나)와 (, 산스크리트어: dṛṣṭi)은 모두 혜(とし) 즉 택법(ほう)의 일종이다.[59] 이들 중 (にん)과 (さとし)는 거의 반드시 선혜만을 의미하는 용법으로 사용되며, ()은 선혜로서의 경우에는 정견이라 하고, 악혜로서의 경우에는 부정견 또는 사견이라 한다.

다시 선혜범부의 지혜인 문혜(聞慧) · 사혜(おもえとし· 수혜(おさむとし)의 3가지 유루혜(ゆうとし) 즉 3혜(さんとし)와 성인의 지혜인 무루혜(とし)로 나뉜다. 유루혜세간의 지혜 즉 세속적인 지혜이고 무루혜출세간의 지혜이다. 한편, (とし) 즉 판단작용 중에서도 결택 또는 결단의 능력이 있는 것을 가리켜 특히 (さとし, 산스크리트어: jñāna, 즈냐나)라고 하는데, 이 때의 결택 또는 결단의심 · 무명 등의 번뇌를 끊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60][61] 한편, (さとし· (· (あきら· (さとし· (かい· (とし· (ひかり· (かん)을 통칭하여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36][37]

불교에 따르면, 번뇌를 끊어내는 능력은 오직 무루의 지혜 즉 무루지 또는 무루혜만이 가지고 있으며, 유루혜세속적인 지혜문혜(聞慧: 들어서 생겨난 지혜) · 사혜(おもえとし: 스스로 생각하여 생겨난 지혜) · 수혜(おさむとし: 수행을 통해 생겨난 지혜)의 3혜번뇌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끊어내지는 못한다.[62] 하지만 이들 3혜무루혜를 이끌어내는 또는 증득할 수 있게 하는 방편이 되며, 이 때문에 범부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지혜이다.[63] 특히, 5계(五戒ごかい· 10선(十善じゅうぜん)의 계율을 지키면서 출세간을 지향하여 이들 3혜를 닦으면 반드시 어느 날 무루혜가 현전하게 되며 비로소 진정한 성도(ひじりみち: 성인들의 길, 무루의 길, 출세간의 길, 즉 부처의 지위 즉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64][65][66])에 들어서게 된다고, 즉 성인만이 가지는 지혜인 무루혜를 완전히 증득해가는 실제적인 단계인 부파불교견도위(どう) 또는 대승불교통달위(通達つうたつ)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다.[67][68][69][70][71] 이와 관련된 것으로, 상좌부 불교에서는 8정도를 크게 (戒) · (じょう· (とし)의 3학(さんがく)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せい· 정사유(せい思惟しい)가 에 속하며, 정어(せい· 정업(正業せいぎょう· 정명(せいいのち)이 에 속하며, 정정진(せい精進しょうじん· 정념(正念しょうねん· 정정(せいじょう)이 에 속한 것으로 분류한다.[34][35]

대승불교에서는 성인의 지혜인 무루혜 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지혜로서, 부처가 가진 지혜를 가리켜 흔히 반야(般若はんにゃ)라고도 한다.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모든 사물[こと]이나 도리[]를 명확하게 뚫어보는 깊은 통찰력을 말한다.[1]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일반의 세속적인 지혜 또는 주관객관(そう)을 떠나지 못한 상태 또는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혜인 유분별지(ゆう分別ふんべつさとし)가 아니며, 아직 부처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다른 성인들이 증득한 여러 무루혜 또는 무분별지보다도 더 뛰어난, 진여를 바르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이다.[44][72] 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는 주관객관(そう)을 떠난 평등한 지혜로서, 성인이 가지는 갖가지 무루혜의 근본이 되는 지혜이다.[73][74][75]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진여는 언어나 문자로서는 어떻게 묘사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주관객관이 분리된 분별심의 상태에서는 진여를 알 수가 없으며, 모든 생각과 분별을 떠난 모양[そう] 없는 참된 지혜의 상태에서만 진여를 완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여를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 또는, 진여의 완전한 지혜를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라 한다.[72]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에서는 반야를 얻어야만 성불하며 반야를 얻은 이는 곧 부처라고 말한다.[76]

대승불교중관학파에서는 단지 반야라는 말로써 부처가 가지는 무분별지를 가리키는데, 이에 비해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에서는 이 무분별지를 특히 보리(菩提ぼだい), 대보리(だい菩提ぼだい) 또는 대원경지(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라고 부른다.[77][78]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대원경지제8아뢰야식에 대해 전의(うたて: (識)이 지(さとし)로 변형되는 질적 전환)를 할 때 증득되며, 이와 동시에 제7말나식에 대한 전의(うたて)도 완전히 성취되어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는 무루지평등성지(平等びょうどうせいさとし)도 그 전체가 증득된다.[79][80] 마찬가지로 이와 동시에 제6의식에 대해 전의성취되어 묘관찰지(みょう觀察かんさつさとし)가 증득되고, 전5식에 대해 전의성취되어 성소작지(なり所作しょささとし)가 증득된다. 때문에 이들 4가지 (さとし)를 불과4지(佛果ぶっかよんさとし: 성불할 때 증득되는 과보로서의 4가지 지혜)라 하고, 간단히 4지(よんさとし)라고 한다.[81]

반야 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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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에서도 제행무상 · 일체개고 · 제법무아를 반야에 의해서 안다고 주장하지만, 반야는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요시되었다. 반야는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수행하는 보시(布施ふせ· 지계(持戒じかい· 인욕(忍辱にんにく· 정진(精進しょうじん· 선정(禪定ぜんじょう· 지혜(智慧ちえ)의 6바라밀(ろくみつ) 중 반야 바라밀(산스크리트어: प्रज्ञापारमिता prajñāpāramitā) 또는 지혜 바라밀로 설법되고 있으며,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로 여겨져 중요시되고 있다.[1] 역으로, 선정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82]

또한 반야는 "모든 부처(諸佛しょぶつ)의 어머니(즉, 성불의 원인)"라 불리며, 이러한 교의는 많은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이나 논서에서 널리 강조되고 있다.[1][76]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大智たいちろん)》에서는 육안(肉眼にくがん· 천안(天眼てんがん· 혜안(慧眼けいがん· 법안(法眼ほうげん· 불안(ふつ)의 오안()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 바라밀을 닦아야 한다는 불교 경전의 진술을 인용해 이를 해설하고 있다.[83]

인왕경》에서 고타마 붓다반야 바라밀닦는 것이란 복인(ふくにん· 신인(しんにん· 순인(じゅんにん· 무생인(なまにん·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의 5인(にん)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84][85][86][87] 5인10신 ·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등각 · 묘각52위보살 수행계위에서 최초의 10신을 제외한 나머지 상위의 42위42현성(よんじゅうけんきよし)을 (にん) 즉 지혜의 측면에서 다음의 5가지 그룹으로 재분류한 것이다.[84][85][88][89] 따라서, 《인왕경》에 따르면 반야 바라밀이란 현성(けんきよし), 즉 10신의 계위를 벗어난 수행자, 즉 실제로 불교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의 모든 대승불교수행과 그 수행의 과보로서 증득지혜 등의 모든 공덕을 통칭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살바야해(薩婆若海わかうみ) 즉 일체지(一切いっさいさとし) 즉 불지(ふつさとし)를 의미한다.[90][91][92]

  1. 복인(ふくにん): 10주 · 10행 · 10회향3현(さんけん)
  2. 신인(しんにん): 10지 가운데 초지 · 제2지 · 제3지
  3. 순인(じゅんにん): 10지 가운데 제4지 · 제5지 · 제6지
  4. 무생인(なまにん): 10지 가운데 제7지 · 제8지 · 제9지
  5.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 10지 가운데 제10지등각 · 묘각

반야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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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교의에서 반야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반야라고만 하지 않고 흔히 마하반야(般若はんにゃ· 대반야(だい般若はんにゃ· 대지(大智たいち· 대지혜(だい智慧ちえ)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명칭들은 불교 경전이나 논서의 제목에 흔히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반야바라밀다경(だい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けい)》·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訶般わか波羅蜜はらみつしんけい)》·대지도론(大智たいちろん)》 등과 같은 것이 있다. 또한 금강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금강반야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예로는 구마라집(ばと什)이 번역한 《금강경》의 원래 명칭인 《금강반야바라밀경(きむつよし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けい》이 있다. 당나라의 승려 현장은 자신이 번역한 《금강경》의 제목을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のう斷金だんきんつよし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けい)》이라고 하여,[93] 반야, 즉 무분별지혜가 능히 모든 것을 끊어내는[斷滅だんめつ] 금강(きむつよし; 다이아몬드)과 같이 근본 무명을 끊어내어[斷滅だんめつ] 성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반야 또는 마하반야 대신에 대보리(だい菩提ぼだい)라는 명칭을 사용한다.[주해 1] 유식유가행파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법공(ほうそら)의 경지에 다다르면 법집(ほう)인 소지장(ところともさわ)이 소멸되어 대보리(だい菩提ぼだい: 대지혜 · 완전한 깨달음)가 성취되고 그러면 부처가 된다.[77][78]

한편, 《열반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의 다른 이름으로는 수릉엄삼매(くび楞嚴三昧ざんまい), 금강삼매(金剛こんごう三昧さんまい), 사자후삼매(獅子吼ししく三昧ざんまい), 불성(佛性ぶっしょう)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선남자여, 수릉엄삼매(くび楞嚴三昧ざんまい)에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하나는 수릉엄삼매요, 둘은 반야바라밀(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이요 셋은 금강삼매(金剛こんごう三昧さんまい)요 넷은 사자후삼매(獅子吼ししく三昧ざんまい)요 다섯은 불성(佛性ぶっしょう)이다. 그 짓는 대로 따라서 곳곳 마다 이름을 얻느니라. 《열반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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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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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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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K.19, T.246).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9(5-1021), T.245(8-825).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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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9(17-641), T.1613(31-850).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황욱 (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 (영어) Bodhi, Bhikkhu (trans.) (2000). 《The Connected Discourses of the Buddha: A Translation of the Samyutta Nikaya》. Boston: Wisdom Publications. ISBN 0-86171-331-1.
  • (영어) Gethin, R.M.L. (1992). 《The Buddhist Path to Awakening: A Study of the Bodhi-Pakkhiyā Dhammā》. Leiden: E.J. Brill. ISBN 90-04-09442-3.
  • 불공 한역, 번역자 미상 (K.1340, T.245).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340(37-52), T.246(8-834).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현양성교론(顯揚けんよう聖教せいきょう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불공 한역 (T.246).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におう護國ごこく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けい)》. 대정신수대장경. T8, No. 246,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せいうん. 《ふつこうだい辭典じてん(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おもね達磨だるま俱舍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だいじょう五蘊ごうん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大乘だいじょうこう五蘊ごうん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주해

편집
  1. 성불에 이르게 하는 지혜, 또는, 성불에 이르렀을 때 성취하는 지혜를 지칭함에 있어, 유식유가행파에서 반야 또는 마하반야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보리 또는 대보리라는 낱말을 사용한 이유는 유식유가행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2대조류를 이루고 있었던 중관파에서 반야 또는 마하반야라는 낱말을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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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사상 > 사 상 용 어 > 동양사상 관계 > 불교 관계 > 반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おもね達磨だるま俱舍ろん)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29║八中正見是道亦道支。どうささえ而非どう
    T29n1558_p0133a01║七中擇法是覺亦覺支。さとしささえ而非さとし。毘
    T29n1558_p0133a02║ばばすな所說しょせつ如是にょぜ
  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그리고 8도지 중의 정견은 바로 도(みち)이자 역시 도지(みちささえ)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도지일 뿐 도는 아니다. 또한 7각지 중 택법은 바로 각(さとし)이자 역시 각지(さとしささえ)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각지일 뿐 각은 아니다.81) 비바사사(毘婆すな)의 설은 이상과 같다.
    81) 즉 8성도지 중 정견은 바로 견도인 동시에 견도위에서 닦는 8성도지 한 갈래[ささえ]이며, 7각지 중 택법은 깨달음인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한 갈래이다.
  4.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だいじょうこう五蘊ごうんろん).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31n1613_p0853a06║うんなん邪見じゃけんいいそし因果いんがあるそし作用さようある善事ぜんじしみ
    T31n1613_p0853a07║としためせいそしいんしゃよしいいぎょう煩惱ぼんのうせいごうゆうささえはん
    T31n1613_p0853a08║惱有さんしゅいい無明むみょうあいぎょうゆうしゅいいぎょう及有。
    T31n1613_p0853a09║ゆうしゃいいおもねよりゆき耶識しょ業種ぎょうしゅ此亦めいぎょう。如
    T31n1613_p0853a10║世尊せそんせつおもねむずかしわかぎょうのうあずか未來みらいはてかれまためいゆう。如
    T31n1613_p0853a11║とう。此謗めいためそしいんそしはてしゃはてゆうななささえいい
    T31n1613_p0853a12║めいしょく六處觸受生老死。此謗ためそしはてあるふくそし
    T31n1613_p0853a13║善行ぜんこう惡行あくぎょうめいためそしいんそし善行ぜんこう惡行あくぎょう果報かほう
    T31n1613_p0853a14║めいためそしはてそし此世ちちはは化生かせい
    T31n1613_p0853a15║眾生。此謗ためそし作用さよういいしたがえ此世往他作用さよう
    T31n1613_p0853a16║種子しゅしにん作用さよう結生ゆき相續そうぞく作用さようとうそし世間せけん
    T31n1613_p0853a17║阿羅漢あらかんとうため善事ぜんじだん善根ぜんこんためぎょう不善ふぜん根堅ねがた
    T31n1613_p0853a18║かたところためぎょうまたなま不善ふぜんなまぜんためぎょう
    T31n1613_p0853a19║うんなん見取みとりいい三見さんみ。及所蘊。ずいけいためさいため
    T31n1613_p0853a20║じょうためしょうためきょくしみとしためせい三見さんみしゃいい薩迦耶。
    T31n1613_p0853a21║あたり邪見じゃけんところ蘊者。そくかれしょ見所みどころこれ蘊。ぎょう
    T31n1613_p0853a22║如邪見じゃけんせつ
  5.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さよう)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よし)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번뇌에는 무명ㆍ애(あい)ㆍ취()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くだり) 및 유(ゆう)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おもねよりゆき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이를 비방하는 것을 인을 비방한다고 안다. 과보를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과보는 식(識)ㆍ명색(名色なしき)ㆍ6처(ところ)ㆍ촉(さわ)ㆍ수(受)ㆍ생(せい)ㆍ노사(老死ろうし)의 일곱 가지가 있다. 이를 비방함이 과보를 비방하는 것이다.
    또한 선행(善行ぜんこう)과 악행(惡行あくぎょう)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을 비방함이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과보를 비방함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화생(化生けしょう)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없다고 비방한다. 이러한 비방은 작용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왕생하는 작용, 종자를 지니고 있는 작용, 생을 맺어 상속하는 작용 등을 말한다. 세간과 아라한 등이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선한 일을 파괴함이다. 선근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하고, 불선근(善根ぜんこん)이 견고해지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불선을 낳고, 선을 낳지 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6. Mehm Tin Mon (2015). 《The Essence of Buddha Abhidhamma. Third edition. Mehm Tay Zar Mon, Mya Mon Yadanar Literature. p.42.
    The above eight cittas can be translated in the same way as we have translated the eight lobha-mūla cittas; the only change necessary is to replace ‘diṭṭhi — wrong view’ with ‘ñāṇa — knowledge’. This knowledge basically means the knowledge of knowing kamma and kamma-result.
  7.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40.
    Associated with knowledge (ñāṇasampayutta): Knowledge comprehends things as they are (yathāsabhāvaṁ). In the consciousness associated with knowledge, the word ñāṇa refers to the mental factor of wisdom (paññā-cetasika), which represents the root non-delusion (amoha). Consciousness dissociated from knowledge (ñāṇavippayutta) lacks this factor of wisdom, but it does not involve ignorance (avijjā) or delusion (moha), which pertains only to unwholesome consciousness.
  8.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おもね達磨だるま俱舍ろん)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13║しんとうなに
    T29n1558_p0132c14║えん次第しだい如是にょぜいい因果いんがさきおこり信心しんじん為果しおおせおさむ
    T29n1558_p0132c15║いんつぎおこり精進しょうじんよし精進しょうじんねん住所じゅうしょえんよしねん
    T29n1558_p0132c16║力持ちからもちしん便びんとくじょう心得こころえていのう如實にょじつゆえ
    T29n1558_p0132c17║しんとう如是にょぜ次第しだい
  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신’ 등은 어떠한 연유에서 이와 같은 순서로 설해진 것인가? 이를테면 인과에 대해 먼저 신심(信心しんじん)을 일으킨 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원인을 닦아야 하므로 다음으로 정진을 일으킨다. 정진으로 말미암아 염(ねん)은 소연에 머물게 되고,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바로 선정을 획득하게 되며, 마음이 선정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능히 참답게 아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신’ 등의 순서가 이와 같은 것이다.
  10. 용수 조, 구마라집 한역(T.1509). 《대지도론》(大智たいちろん) 제19권. 대정신수대장경. T25, No. 1509, CBETA:
    T25n1509_p0203a09║ せい智慧ちえ,如四ねんしょ
    T25n1509_p0203a10║ としとしりょくほうさとしちゅうせつ
  11. 용수 지음,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K.549, T.1558). 《대지도론》 제19권:
    정견(せい)이 곧 지혜[とし]이다. 이는 4념처와 혜근(とし)과 혜력(としりょく)과 택법각분(ほうさとしぶん)에서 말한 바와 같다.
  12. 구나발타라(もとめばつ陀羅) 한역, K.650, T.99 《잡아합경》 제12권 [제301경 〈가전연경〉(迦旃のべけい). CBETA.
    T02n0099_p0085c17║如是にょぜ我聞がもん一時いちじふつじゅうなし聚落しゅうらく深林しんりん
    T02n0099_p0085c18║ちゅうまちまろうどしゃなんじ尊者そんじゃ[とべ-ちょう+]陀迦旃延まいふつしょ
    T02n0099_p0085c19║稽首ふつあし退すさじゅういちめんはくふつごと:「世尊せそん!如世尊せそん
    T02n0099_p0085c20║せつせいうんなんせいうんなん世尊せそん施設しせつせい?」 ふつ
    T02n0099_p0085c21║つげ[とべ-ちょう+]陀迦旃延:「世間せけんゆうしゅわかゆうわか
    T02n0099_p0085c22║ためところさわところさわあるゆうあるわか
    T02n0099_p0085c23║此取しゃ心境しんきょう繫著使じゅうけい
    T02n0099_p0085c24║せい而生,めつ而滅,於彼うたぐ不惑ふわくゆかり
    T02n0099_p0085c25║於他而自めいせいめい如來にょらいしょ施設しせつ
    T02n0099_p0085c26║せい所以ゆえんしゃなに世間せけんしゅう如實にょじつせい知見ちけんわか世間せけん
    T02n0099_p0085c27║しゃゆう世間せけんめつ如實にょじつせい知見ちけんわか世間せけんゆう
    T02n0099_p0085c28║しゃゆうめいはなれへんせつ於中どう所謂いわゆる
    T02n0099_p0085c29║ゆうかれゆう,此起かれおこりいいえん無明むみょうぎょう乃至ないし
    T02n0099_p0086a01║純大じゅんだい聚集,明滅めいめつぎょうほろび乃至ないし純大じゅんだい
    T02n0099_p0086a02║めつ。」 佛說ぶっせつ此經やめ尊者そんじゃ[とべ-ちょう+]陀迦旃延聞佛しょ
    T02n0099_p0086a03║せつおこりしょ心得こころえ解脫げだつなり阿羅漢あらかん
  13. 구나발타라(もとめばつ陀羅) 한역, K.650, T.99 《잡아합경》 제12권 [제301경 〈https://kabc.dongguk.edu/m/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I&dataId=ABC_IT_K0650_T_012 가전연경]〉(迦旃のべけい).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なし)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まちまろうどしゃ)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산타가전연(跚陁迦旃のべ)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せ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ゆう)와 혹은 무()이다. 취함[]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14. 구마라집 한역(T.614). 《좌선삼매경》(坐禪ざぜん三昧ざんまいけい) 하권. 대정신수대장경. T15, No. 614, CBETA:
    T15n0614_p0279a23║わか行者ぎょうじゃとくほうねんどめ厭世えんせいあいだそら老病ろうびょう
    T15n0614_p0279a24║ほうしょうもと常樂じょうらくわがきよしわが於此そらほうふくなに
    T15n0614_p0279a25║しょもとむおうとういれ涅槃ねはん最善さいぜんほうちゅうじゅうけん精進しょうじんりょくとく
    T15n0614_p0279a26║ふかしゃ陀故(ふかしゃ陀者,じゅうしんいちしょめい也,此土めい)。とくふかしゃ
    T15n0614_p0279a27║陀,じゅうだいよんほうねんどめちゅうかんしょ法相ほうしょうみならく
    T15n0614_p0279a28║らくじつあまりしゃ妄語もうごいんあいとうしょ煩惱ぼんのう及業,
    T15n0614_p0279a29║是非ぜひてん非時ひじちりとう種種しゅじゅ妄語もうごちゅうせい煩惱ぼんのう
    T15n0614_p0279b01║及業出生しゅっしょう,此苦にゅう涅槃ねはん一切いっさい滅盡めつじん
  15. 구마라집 한역, 차차석 번역 (K.991, T.614). 《좌선삼매경》 하권:
    만일 수행자가 법념지를 얻는다면 세간의 공(そら)ㆍ늙음ㆍ병듦ㆍ죽음의 법을 싫어하여 도무지 조금도 상(つね)ㆍ낙(らく)ㆍ아()ㆍ정(きよし)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한 법에서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마땅히 열반의 최선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하며, 정진의 힘을 세워서 깊은 사마타(しゃ陀)를 얻는다.깊은 사마타라는 것은 마음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적절히 표현할 이름이 없다. 이때 깊은 사마타를 얻어서 제4의 법념지 가운데 머문다.
    모든 존재[諸法しょほう]의 모습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으며, 즐거움이 없는 것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거짓말이니,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하늘이 아니며, 시간이 아니고 티끌 등이 아니다.{티끌이 아니라는 등의} 이와 같은 갖가지 거짓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갖가지 거짓말 속에서 생기니,} 이 번뇌와 업이 이 괴로움을 발생시킨다. 이 괴로움은 열반에 들어갔을 때 일체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16.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おもね達磨だるま俱舍ろん)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29║八中正見是道亦道支。どうささえ而非どう
    T29n1558_p0133a01║七中擇法是覺亦覺支。さとしささえ而非さとし。毘
    T29n1558_p0133a02║ばばすな所說しょせつ如是にょぜ
  1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그리고 8도지 중의 정견은 바로 도(みち)이자 역시 도지(みちささえ)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도지일 뿐 도는 아니다. 또한 7각지 중 택법은 바로 각(さとし)이자 역시 각지(さとしささえ)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각지일 뿐 각은 아니다.81) 비바사사(毘婆すな)의 설은 이상과 같다.
    81) 즉 8성도지 중 정견은 바로 견도인 동시에 견도위에서 닦는 8성도지 한 갈래[ささえ]이며, 7각지 중 택법은 깨달음인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한 갈래이다.
  18. 운허, "しゅこぼし(오종불번)". 2013년 2월 4일에 확인
    "しゅこぼし(오종불번): 경을 한역(かんやく)할 때에 음(おと)으로만 쓰고 뜻을 번역하지 않은 데 5종의 유례가 있음. (1) 비밀고(秘密ひみつゆえ). 다라니의 말과 같이 미묘하고 깊어서 생각할 수 없는 비밀어. (2) 다함고(含故). 바가범(うすとぎ梵)과 같이 한 말에 많은 뜻을 가진 말. (3) 차방무고(此方こちらゆえ). 염부수 이름과 같이 이 땅에는 상당한 물건이 없는 경우. (4) 순고고(じゅんゆ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이 옛날부터 흔히 음만을 쓰고 번역하지 아니하여도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말. (5) 존중고(尊重そんちょうゆえ).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는 경우와 같이, 그 참뜻은 깊고 존중한 것이나, 번역하면 도리어 그 뜻이 가벼워지는 경우."
  19. 佛門ぶつもんもう, "簡擇". 2013년 2월 22일에 확인
    "簡擇:
    出處しゅっしょ: ふつこう電子でんしだい辭典じてん
    解釋かいしゃく: そく選擇せんたくゆび智慧ちえ力作りきさく正確せいかく判斷はんだん,以捨にせしん。「簡」あずか」,ひとしため選擇せんたく分別ふんべつ。以智慧ちえらい簡擇一切いっさい諸法しょほうちからそくしょうためちからまたよし簡擇りょく而得めつたい涅槃ねはんそくしょうためめつ。此外,ためしゃしたがえ眾弟子中こなか選擇せんたく分別ふんべつ何人なんにんこらえ受教ほう何人なんにん不堪ふかん受教ほうのりしょうため簡器。うつわそく。〔ざつおもね經卷きょうかんじゅうはち、俱舍ろん卷一けんいち
    ぺーじすう: p6587
    出處しゅっしょ: 佛教ぶっきょうかん梵大辭典じてん
    解釋かいしゃく: pravicaya, pra-vi-√ci, pratisaṃkhy, parīkṣ(√īkṣ); upanidhyāna, nidhyāna, parīkṣaṇa, parī=kṣā, parīkṣita, pra-√jñā, ratisaṃkhyāna, manasi-√kṛ, vicārayati, vi-√ci, vi√cint, vitakṣita, viniścaya, vibhāga, vibhāvita, vedha, saṃ-√hṛ
    ぺーじすう: p.2761-2773
    出處しゅっしょ: しゅ芾煌《法相ほうしょう辭典じてん
    解釋かいしゃく: 瑜伽ゆがはちじゅうさんかんじゅうぺーじうんげん簡擇しゃすべ一切苦法各類為苦聖諦故。またうん:簡擇しゃいいしんていかいりょう。"
  2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0. 혜(とし)
    "としいい於法のうゆう簡擇。"
  2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혜(とし)
    "혜(とし)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2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86 / 1397쪽.
  23. 권오민 2003, 69–81쪽.
  24. 星雲せいうん, "とし". 2012년 9월 11일에 확인.
  2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18 - T31n1612_p0848c20. 혜(とし)
    "うんなんためとしいいそく於彼ほうためせいある如理しょ引。ある如理しょ引。ある俱非しょ引。"
  2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3 / 12. 혜(とし)
    "어떤 것이 혜(とし)인가. 저것에 대해 (자상과 공상 등의) 법을 간택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혹 이치에 맞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이치에 맞지 않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두 가지가 아니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27.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b18 - T31n1602_p0481b21. 혜(とし)
    "とししゃいいそく於所かんさかい簡擇ためたい。如理如理如理如理悟入ごにゅうしょためぎょう。如經せつ簡擇諸法しょほうさいきょく簡擇ごく簡擇ほうへんりょうきんりょう黠了通達つうたつしん察聰あきらさとしあきらとしぎょう毘缽しゃ。"
  28.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6 / 293. 혜(とし)
    "혜(とし)81) 심소는 곧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간택(簡擇)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진리에 계합함, 진리에 계합하지 않음, 진리에 계합함도 아니고 계합하지 않음도 아닌 것으로써 소지(ところとも)82)에 깨달아 들어감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온갖 법을 간택(簡擇)하되, 아주 잘 간택하고, 법을 지극히 간택하며, 두루 알고, 가까이 알며, 지혜롭게 알고, 통달하고 자세히 살피며, 총명하고 슬기롭게 깨달아 밝은 지혜로써 비발사나(毗鉢しゃ)83)를 행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81) 혜(とし, mati) 심소는 ‘이해 · 분별 작용’ 즉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とくしつ是非ぜひ)를 판단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로써 의(うたぐ) 번뇌가 단절된다.
    82) 소지(ところとも, jñeya)는 ‘알아야 할 대상’이란 뜻으로서 응지(おう· 경계 · 이염(しか焰) · 지모(さとしはは· 지경(さとしさかい) 등으로도 번역된다. 일체의 경계, 즉 지혜로 관조할 대상[ところ照之てるゆきさかい]을 가리킨다. 5명(あきら) 등의 법이 능히 지혜를 내는 경계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다.
    83) 범어 vipaśyana의 번역으로서 관(かん)이라 한역 함. 보는 것. 관찰. 조용한 마음에 대상의 영상을 뚜렷이 비추어 나타내는 것."
  29. 星雲せいうん, "べつさかい". 2012년 10월 20일에 확인.
  30. 운허, "べつさかい(오별경)". 2012년 10월 20일에 확인.
  3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5권. p. T31n1585_p0028c11 - T31n1585_p0028c14. 혜(とし)심소
    "うんなんためとし。於所かんさかい簡擇ためせいだんうたぐためぎょういいかんとくしつ俱非さかいちゅうよしとし推求とく決定けってい。於非かんさかい愚昧ぐまい心中しんちゅうの簡擇あまねぎょう。"
  3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5권. p. 276 / 583. 혜(とし)심소
    "무엇을 ‘혜(とし)심소’251)라고 하는가? 관찰되는 대상을 간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의심을 끊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덕 · 과실, 덕도 아니고 과실도 아닌 대상을 관찰하는 가운데 혜(とし)심소가 추구함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우매한 마음속에서는 간택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변행심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251) 혜(とし, mati)심소는 ‘이해 분별하는 작용’이다.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とくしつ是非ぜひ)를 판단하며, 이로써 의(うたぐ) 번뇌가 단절된다."
  33. 황욱 1999, 53. 혜(とし)심소쪽
    "‘とし’는 しょかんさかい에 대하여 簡擇하는 것으로써 からだ를 삼고, 如理와 不知ふち如理와 如理에 悟入ごにゅう하여 아는 것으로써 그 ぎょう을 삼는다. 즉 しょかん境上さかいかみ得失とくしつ是非ぜひあいだ하는 것을 그 せいよう으로 삼고, 이 とし의 推求りょく에 의하여 결정의 かちかいなま하면 猶豫ゆうよ不定ふていうたぐ煩惱ぼんのう가 단절되는 작용이 그 ぎょうよう이다.171)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사물을 かん함에 있어서 ほう하는 것을 からだ로 하고, 의심을 끊는 것을 ぎょう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72)
    171)とし’의 せいようしょかんさかい에 대하여 簡擇하는 작용을 의미하며, ごうよう은 의심을 끊고 결정하는 작용을 가리킨다. 곧, とし는 판단하는 심리작용으로써, 事理じり를 분별하여 결정하며 疑念ぎねんだんじょ하여 事理じり에 통달하는 작용을 말한다.
    172)大乘だいじょうおもね達磨だるましゅうろん》 1(《大正たいしょうぞう》 31, p. 664なか). “何等なんらためとしいい於所かんことほうためたいだんうたぐためぎょう。”"
  34. “Culavedalla Sutta: The Shorter Set of Questions-and-Answers (MN 44)”. 
  35. Bhikkhu Bodhi. “The Noble Eightfold Path: The Way to the End of Suffering”. Access to Insight. 2013년 2월 4일에 확인함. 
    "The eight factors of the Noble Eightfold Path are not steps to be followed in sequence, one after another. They can be more aptly described as components rather than as steps, comparable to the intertwining strands of a single cable that requires the contributions of all the strands for maximum strength. With a certain degree of progress all eight factors can be present simultaneously, each supporting the others. However, until that point is reached, some sequence in the unfolding of the path is inevitable. Considered from the standpoint of practical training, the eight path factors divide into three groups: (i) the moral discipline group (silakkhandha), made up of right speech, right action, and right livelihood; (ii) the concentration group (samadhikkhandha), made up of right effort, right mindfulness, and right concentration; and (iii) the wisdom group (paññakkhandha), made up of right view and right intention. These three groups represent three stages of training: the training in the higher moral discipline, the training in the higher consciousness, and the training in the higher wisdom."
  3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つきさとし)와 무생지(なまさとし)
    "つきなまさとしそうなんべつ。頌曰。
     さとし於四ひじりたい わがやめとう
     おうさらとう 如次つきせい
    ろん曰。如本論說ろんせつうんなにつきさとしいい學位がくいわかただしわがやめわがやめだんしゅうわがやめしょうめつわがやめ修道しゅうどうよし所有しょゆうさとし見明みみょうさとしかいとしひかりかんめいつきさとしうんなんなまさとしいいただしわがやめおうさらこうせつ乃至ないしわがやめ修道しゅうどうおうさらおさむよし所有しょゆうこうせつ乃至ないしめいなまさとし。"
  3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つきさとし)와 무생지(なまさとし)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さとし)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さとし於四ひじりたい わがやめとう
     おうさらとう 如次つきせい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ほんろん)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しゅ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めつ)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みち)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さとし)와 견()과 명(あきら)과 각(さとし)과 해(かい)와 혜(とし)와 광(ひかり)과 관(かん)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けつだん)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げんあきら)를, '명'은 명랑(明朗めいろう)을, '각'은 각오(覺悟かくご)를, '해'는 달해(いたるかい)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としこう)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38. 星雲せいうん, "さとし". 2013년 2월 6일에 확인
    "さとし: 梵語ぼんご anāsrava-jñāna。ゆびしょう真理しんりとおはなれ一切煩惱過非之智慧。ためゆうさとし對稱たいしょう。於小乘しょうじょうあかし四諦したい理之まさゆきさとししょうためさとしゆうほうさとしるい智之としゆき分別ふんべつあかしとく欲界よくかい四諦したい法理ほうりさとししょうためほうさとしあかしとくしょく無色むしょくとう二界四諦法之智,しょうためるいさとしぶた其境さとしあずかほうさとし相似そうじしょうるいさとしわかよしさかい差別さべつそくぶんためしゅうほろびみちとうよんさとし。於無學位がくいまたぶんつきさとしなまさとし,此二智皆證見四諦之法理。小乘しょうじょういいさとし於見どうはじめ生起せいき,而漸修習しゅうしゅう
     於大おだいじょう唯識ゆいしきむねそくぶんさとしため根本こんぽんこうとくさとし根本ねもとさとしため唯識ゆいしきせいそくあかしとく真如しんにょ理性りせい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とくさとしゆかり根本ねもとさとし所出しょしゅつため唯識ゆいしきこれしょうそく了知りょうち因緣いんねんげんおこり萬象ばんしょう大乘だいじょういいさとし於初どうはじめ生起せいき,而漸修習しゅうしゅうとげしょう佛果ぶっか。〔法華經ほけきょう方便ほうべんひんだい毘婆すなろんまききゅうじゅうなな、俱舍ろんまきじゅうろくじゅんせい理論りろんまきななじゅうさん〕(まいり閱「じゅうさとし」 472)"
  39. 星雲せいうん, "じゅうさとし". 2012년 12월 29일에 확인.
  40. 星雲せいうん, "[1]". 2012년 12월 30일에 확인
    "なまさとし: 梵語ぼんご anutpādajñāna,ともえとし anuppāda-ññāna。智之としゆきいちじゅう智之としゆきいちゆび了知りょうち一切法無生之智。またそく滅盡めつじん一切いっさい煩惱ぼんのうとおはなれ生滅しょうめつ變化へんか究極きゅうきょく智慧ちえ;於四諦已自知苦、だんしゅう修道しゅうどうあかしほろびふくさらあまねだんおさむあかしさとしまたやめあまねだんつきよくゆう無明むみょう三漏及結縛、ずいねむりひとしさい生起せいきしょうなまさとしおもね達磨だるましゅうもんあしろんまきさんだいろくさんななろくじょう):「なまさとしうんなにいい如實にょじつわがやめふく當知とうちわがやめだんしゅうふくとうだんわがやめしょうほろびふくとうあかしわがやめ修道しゅうどうふくとうおさむ。此所したがえなまさとしあきらさとしかいとしひかりめいなまさとし。」
     ぶた此智於無學位がくい圓滿えんまん完成かんせい獲得かくとくつきさとしさら以一切之聖道為因,えん滿まん無學むがくはてためあずかめつとく」俱生せいさとし,此唯利根りこん聖者せいじゃのう成就じょうじゅじょ欲界よくかい及有いただきそと,以其よん根本ねもとじょういたりじょう中間なかまじょうした三無色定等九地為依地。〔訶般わか波羅蜜はらみつ經卷きょうかんこうじょうひんだい毘婆すなろんまきじゅうきゅう、俱舍ろんまきじゅうよんまきじゅうろくべんちゅうあたり論辯ろんべん上乘じょうじょうひんことむねろん大乘だいじょうおもね達磨だるまざつしゅうろんまきじゅうしなるいあしろん卷一けんいち顯揚けんよう聖教せいきょうろんまき〕(まいり閱「さとし」、「じゅうさとし」)"
  4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c18 - T29n1558_p0134c21. 진지(つきさとし)·무생지(なまさとし)와 유정지(ゆういただき)
    "ほうさとしるいさとしよしさかい差別さべつぶんためしゅうめつどうよんさとし如是にょぜ六智若無學攝。見性けんしょうしゃめいつきせい。此初生しょせいただしゅうるい。以緣しゅう六種行相觀有頂蘊為境界故。"
  4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p. 1174-1175 / 1397. 진지(つきさとし)·무생지(なまさとし)와 유정지(ゆういただき)
    "법지와 유지는 경계의 차별에 따라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지로 나뉜다.9) 그리고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지(법지·유지와 4たいさとし)로서 만약 무학에 포섭되고 '견'의 성질이 아니라면, 이를 일컬어 진지(つきさとし)와 무생지(なまさとし)라고 한다. 이러한 진·무생의 두 가지 지로서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은 오로지 고류지와 집류지이니, 고제·집제를 소연으로 하는 여섯 종류의 행상으로써 유정(ゆういただき)의 온을 경계로 하여 관찰하기 때문이다.10)
    9) 세속지의 경우도 고제(たい) 등의 행상을 소연으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을 즐거움[らく] 등이라고 인정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세속지를 획득하고 난 후 4제를 소연으로 하는 의심[うたぐ]이 일어나기 때문에 고지 (さとし) 등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현종론』 권제35, 한글대장경201, p.461)
    10) 진지와 무생지는 4제에 대한 지(さとし)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다름 아닌 법지와 유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와 무생지는 유정지의 4제를 관찰할 때 생겨나는 것으로, 처음에 고제하의 비상(非常ひじょう)과 고()의 행상, 집제하의 인(よし)·집(しゅう)·생(なま)·연(えん)의 네 행상으로써 유정지의 5온을 관찰하고 나서 생겨나기 때문에 최초로 생겨나는 것은 오로지 고류지·집류지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고제의 공·비아의 행상을 짓지 않는 것은 출관(かん) 후 '(나)는 이미 생을 다하였다'는 등의 세속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43. 운허, "中道ちゅうどうかん(중도관)". 2013년 2월 5일에 확인
    "中道ちゅうどうかん(중도관): 중도는 편벽되고 그릇된 미망(迷妄めいもう)을 여읜 법의 실리(實理じつり)인 절대이성(絶對ぜったい理性りせい)을 이름하는 것. 유식종에서는 유식을, 삼론종은 팔불(はち)을, 천태종은 실상을, 화엄종은 법계를 중도라 하는 등 종파에 따라 다르다. 이 중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한 실천 수행을 중도관이라 함."
  44. 星雲せいうん, "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 2013년 2월 4일에 확인
    "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 梵語ぼんご nir-vikalpa-jñāna。またつく分別ふんべつしんゆび捨離主觀しゅかん客觀きゃっかんこれしょう,而達平等びょうどう真實しんじつ智慧ちえそく菩薩ぼさつ於初いれどうえん一切いっさいほう真如しんにょだんはなれ能取のとろあずかところこれ差別さべつさかいさとしめいあい平等びょうどう而無分別ふんべつさとしまたそくとおはなれめいそう概念がいねんとう虛妄きょもう分別ふんべつ世俗せぞく認識にんしきただたい真如しんにょ認識にんしきのう如實にょじつ而無分別ふんべつ。此智ぞく於出世間せけんさとしあずかさとしためふつ智之としゆき相應そうおうしんひん。此智有加ゆかぎょう根本ねもとこうとくとうさんしゅべつ:(いち)ひろおもえとししょうためゆき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またさくゆきさとし,乃道よし」。()せいしょうとししょうため根本こんぽん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またさく出世しゅっせ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根本ねもとさとし,乃道からだ」。(さん) だしかん起用きようとししょうためとく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またたたえとくさとし,乃道はて」。另據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まきじゅうこれせつ根本ねもと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あずかのちとく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ぞくどういちしゅさとしおもんみ作用さよう不同ふどうとくさとし根本ねもとさとしかたのう掌握しょうあく佛教ぶっきょう真理しんり根本ねもと智則とものりもたれとくさとしかた於世俗世ぞくせかい認識にんしきちゅう發揮はっきこうのう
     またよりどころとうやく大乘だいじょうろんしゃくまきはちいい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とおはなれ五種相以為自性,そく:(いち)はなれ睡眠すいみんとう作意さくい,()はなれ二禪以上之過有尋有伺地,(さん)はなれ無心むしん定之さだゆきそう受滅寂靜じゃくじょう,(よん)はなれしょく,()於真實しんじつはなれゆう分別ふんべつけいまた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以修としためたい菩薩ぼさつ於十くらいすうすう修習しゅうしゅういたりだい八地以後即可相續任運。はりやく大乘だいじょうろんしゃくまきじゅうまたいい無分別むふんべつあずか菩薩ぼさつこと分別ふんべつ自性じしょうそく菩薩ぼさつ自性じしょう菩薩ぼさつ以無分別ふんべつさとしためたい。〔はりやく大乘だいじょうろんしゃくまきはちまききゅうまき十一といち大乘だいじょう莊嚴しょうごん經論きょうろんまきさん大乘だいじょうおもね達磨だるまざつしゅうろんまきじゅうよん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まききゅう〕"
  45. 星雲せいうん, "よんさとし". 2013년 2월 5일에 확인
    "よんさとし: ため大乘だいじょうおこりしんろん所說しょせつ四種不同覺知之證悟階段。そく:(いち)もとさとしいい一切眾生之自性清淨心體遠離妄念,どう虛空こくうかい而無しょあまねしょ法界ほうかいみなとうどういちそう,此即如來にょらい平等びょうどうほう。()相似そうじさとしいいじょうさんけんじゅうじゅうじゅうぎょうじゅう迴向菩薩ぼさつすんでさとし知見ちけん惑、思惑おもわく而斷,捨離分別ふんべつてきしるこれしょうとく類似るいじ覺悟かくごためはじめさとしはつしかなお明細めいさい惑未だん未得みとくさとししょうため相似そうじさとしいいあずかさとし類似るいじ。(さん)隨分ずいぶんさとしいいはつ以上いじょう菩薩ぼさつ逐地だんじょ無明むみょう,而於各地かくちちゅう逐一ちくいちさとし隨分ずいぶんいいずいしょうさとる階段かいだんうたてのぼり而於各地かくちいちいちだんじょ無明むみょう,一一證得真覺。(よん)究竟きゅうきょうさとしいいすんでやめだんつき根本こんぽん無明むみょうほんさとしこれたいちょんあきらとおる心性しんせい了知りょうちこころそく常住じょうじゅう,而得究竟きゅうきょう至極しごくさとし,此即にゅう如來にょらい。"
  46. 운허, "よんさとし(사각)". 2013년 2월 5일에 확인
    "よんさとし(사각): 시각(はじめさとし)의 내용을 4위()로 구분한 것. (1) 불각(不覺ふかく). 시각의 제 1보()로 이미 업인과보(ぎょう因果いんがほう)의 이치를 깨달은 지위, 아직 혹(惑)을 끊는 지혜가 생기지 않은 자리. (2) 상사각(相似そうじさとし). 아집(我執がしゅう)을 여의고, 아공(わがそら)의 이치를 깨달은 지위, 아직 진각(さとし)을 얻지 못한 자리. (3) 수분각(隨分ずいぶんさとし). 초지(はつ)인 정심지(淨心じょうしん)에 들어가 일체 모든 법은 다 유식(唯識ゆいしき)의 소현(ところげん)임을 깨닫고, 법집(ほう)을 끊고 진여 법신을 일분일분(いちふんいちふん)씩 깨달아 가는 지위. (4) 구경각(究竟きゅうきょうさとし). 근본 무명(無明むみょう)을 끊고, 절대의 진각(さとし)을 얻어 본각(もとさとし) 자신이 나타난 자리."
  47. 佛門ぶつもんもう, "あくとし". 2013년 2월 3일에 확인
    "あくとし:
    出處しゅっしょ: かんやくおもね含經辭典じてんそう春江はるえへん(1.4はん)
    解釋かいしゃく: ぼつゆう智慧ちえ
    出處しゅっしょ: しゅ芾煌《法相ほうしょう辭典じてん
    解釋かいしゃく: 瑜伽ゆがろくじゅうかんぺーじうんうんなんあくとしいいじゅう見取みとり平等びょうどうなん捨言ろん。"
  4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a21 - T31n1585_p0030a23. 불선근(善根ぜんこん)
    "以貪瞋癡ろく識相おうせいはん惱攝おこりあくかちだて善根ぜんこんだんかれ必由どおりべつたいつうただぜんとしべつそくさん。"
  4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291 / 583. 불선근(善根ぜんこん)
    "탐 · 진 · 치 심소는 6식과 상응하고, 바로 번뇌에 포함되며, 악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불선근(善根ぜんこん)으로 건립한다. 그것을 단멸하려면 반드시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다스림에 의한다. 공통적이라는 것은 오직 선(ぜん)의 혜(とし)이다.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은 세 가지 근()48)이다.
    48) 무탐(むさぼ· 무진(瞋) · 무치()의 심소를 말한다."
  5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c23 - T31n1585_p0030c24. 기타의 경우: 정견(せい)과 정지(せい)
    "せいせい俱善とし。"
  5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298-299 / 583. 기타의 경우: 정견(せい)과 정지(せい)
    "바른 견해[せい]와 바르게 아는 것[せい]은 모두 착한 성품의 혜(とし)에 포함된다."
  52. "식별력", 《네이버 영어사전》. 2013년 2월 4일에 확인.
    "식별력 識別しきべつりょく: power of discernment, discrimination"
  53. Gethin (1992), pp. 146 ff. In regards to his leaving dhamma untranslated, Gethin summarizes (p. 151):
    The point I wish to make, however, is that the usage of the word dhamma (in the plural) remains in the Nikāyas, canonical Abhidhamma, and even to some extent in the commentarial tradition, a somewhat ambiguous and multivalent term. Its precise understanding continues to be elusive and defies rigid or fixed definition. Possibly this is no accident and the texts delight in the very fluidity of the term.
    In the context of dhamma-vicaya, Gethin puts forth the idea (p. 152, also see p. 154):
    In Buddhist thought to take dhamma apart is, I think, to be left with dhammas. Dhamma-vicaya means, then, either the 'discrimination of dhammas' or the 'discernment of dhamma'; to discriminate dhammas is precisely to discern dhamma.
    In a related footnote (p. 152, n. 38), Gethin expresses doubt about translating vicaya as "investigation."
  54. Bodhi (2000), SN 46 passim, pp. 1567 ff.
  5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1a28 - T29n1558_p0001b11. 혜(とし)와 택법(ほう
    "よし威力いりょくあずかねがい神通じんずうれい如理よくなん所作しょさたい法藏ほうぞうろんわがとうせつしゃ教誡きょうかい學徒がくとしょうためろん。其論しゃなにいいたい法藏ほうぞうなにいいたいほう。頌曰。
     きよしとし隨行ずいこうめいたいほう 及能とく此諸としろん
    ろん曰。としいいほうきよしいいきよしとし眷屬けんぞくめい隨行ずいこう如是にょぜ總說そうせつ五蘊ごうんめいためたいほう。此則勝義まさよしおもね達磨だるまわかせつ世俗せぞくおもね達磨だるまそくのうとく此。しょとし及論。としいいとく此有おさむとしおもえ聞生とくとし隨行ずいこうろんいいでんせいとしきょう。此諸としろんかれかてまたとくめいおもね達磨だるましゃく此名しゃのうそうめいためほうわか勝義まさよしほうただ涅槃ねはんわか法相ほうしょうほうどおりよんひじりたい。此能對向たいこうあるのうたいかんしょうたいほう。"
  5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p. 3-4 / 1397. 혜(とし)와 택법(ほう
    "참다운 스승께 예배하고서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나는 이제 마땅히 대법장론(たい法藏ほうぞうろん)을 설하리라.' 이는 즉 학도들을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논(ろん, astra)'이라고 칭한 것이다. 그러한 논은 어떠한 것인가? 말하자면 대법장(たい法藏ほうぞう)이다.5) 무엇을 일컬어 대법장이라고 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정혜(きよしとし)와 이에 따르는 행[隨行ずいこう]을 대법이라 이름하며
     아울러 능히 이를 획득하게 하는 온갖 혜와 논을 대법이라 한다.
     きよしとし隨行ずいこうめいたいほう 及能とく此諸としろん
    논하여 말하겠다. '혜(とし)'란 택법(ほう)을 말하며, '정(きよし)'이란 무루()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혜의 권속을 일컬어 '이에 따르는 행, 즉 수행(隨行ずいこう)'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말하면 무루의 5온(蘊)을 설하여 '대법'이라 이름하니, 이는 즉 승의(勝義まさよし)의 아비달마(おもね達磨だるま)이다.
    그리고 세속(世俗せぞく)의 아비달마에 대해 설하자면 능히 이러한 무루의 5온을 획득하게 하는 온갖 혜와 논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혜'란 이를테면 이를 획득하게 하는 유루(ゆう)의 문(聞)·사(おもえ)·수혜(おさむとし)와 생득혜(生得しょうとくとし), 그리고 이에 따르는 행(くだり)을 말하며, '논'이란 전(つて)하는 바에 따르면 무루의 혜를 낳게 하는 가르침[きょう]을 말한다.6) 즉 이러한 온갖 혜와 논도 바로 그것(무루 정혜)을 낳게 하는 것의 자량(りょう)이 되기 때문에 역시 아비달마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비달마의] 명칭을 해석함에 있어 능히 자상(そう)을 보지(保持ほじ)하는 것,7) 그것을 법(ほう)이라 이름하니, 만약 그것이 승의의 법이라면 오로지 열반(涅槃ねはん)을 말하지만 법상(法相ほうしょう)의 법일 경우 그것은 4성제(ひじりたい)와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8) 즉 [승의의 법인 열반에] 대향(對向たいこう)하고 [법상의 법인 4성제를] 대관(たいかん)하기 때문에 '대법'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5) 대법장(たい法藏ほうぞう)은 아비달마구사(おもね達磨だるま俱舍, Abhidharma-ko a)의 의역어(意譯いやく).
    6) 이하 『구사론』 상에서는 '전(つて)하는 바에 따르면', '전설(傳說でんせつ, kila)에 의하면', '∼하였다고 전한다' 혹은 '∼라고 인정한다'거나 혹은 '허락[もと]한다'는 등의 말이 종종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논주(ろんぬし) 세친 자신은 찬동하지 않는 내용이지만 전통적인 케시미르의 비바사사(毘婆すな)들의 정설을 소개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상투적인 용어이다.
    7) 법(ほう, dharma)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자상(そう) 혹은 자성(自性じしょう) 즉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상을 지닌 것[にん自性じしょう]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낳게 하는 것[軌生物せいぶつかい]이다. 즉 자기만의 자상을 지녀 인식의 궤범이 됨으로써 사물에 대한 종합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법'인 것이다.
    8) 여기서 '이것'이란 보광(ひろしこう)에 의하면 무루혜·유루혜 및 제론(しょろん)을 말하며, 법보(ほうたから)의 경우 오로지 무루혜라고 하였다."
  57. 星雲せいうん, "ほうさとしささえ".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58. 운허, "ななさとしぶん(칠각분)".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5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171-1172 / 1397쪽.
  6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0 - T29n1558_p0134c15. 지(さとし)
    "ぜんしなはつせつしょにんしょさとし。於後ふくせつせいせいさとしためゆうにんさとし耶。ためゆうさとし耶。頌曰。
     ひじりとししのぶさとし つきなま
     ゆうとし みなさとしろく見性けんしょう
    ろん曰。としゆうしゅゆうただとしたて以聖めい。此聖としちゅうはちにんさとしせいところだんうたぐやめことわ見性けんしょう。推度せいゆえつきあずかせいさとし見性けんしょうやめいき求心きゅうしん推度ゆえところあまりみなどおりさとしせいやめことわうたぐ推度せいゆえしょゆうとしみなさとしせい。於中ただろくまた見性けんしょういい五染污見世正見為六。如是にょぜ所說しょせつひじりゆうとしみなほうなみとしせいさとしゆういくしゅそうべつうんなに。頌曰。
     さとしじゅう總有そうゆう ゆうべつ
     ゆうしょう世俗せぞく めいほうるい
     世俗せぞくあまねためさかい ほうさとし及類さとし
     如次ほっじょうかい とうたいためさかい
    ろん曰。さとしゆうじゅうしゅ一切いっさいさとしいち世俗せぞくさとしほうさとしさんるいさとしよんさとししゅうさとしろくめつさとし七道しちどうさとしはち他心たしんさとしきゅうつきさとしじゅうなまさとし如是にょぜじゅうさとしそうただしゅゆうせい差別さべつ如是にょぜ二智相別有三。いい世俗せぞくさとしほうさとしるいさとしぜんゆうさとしそうめい世俗せぞくびんとう世俗せぞくさかいゆえさとしぶんほう類別るいべつ。三中世俗遍以一切有為無為為所緣境。ほうるい二種如其次第以欲上界四諦為境。"
  6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p. 1171-1174 / 1397. 지(さとし)
    "앞의 「현성품」 앞부분에서 온갖 인(にん)과 온갖 지(さとし)에 대해 논설하였으며, 뒷부분에서 다시 정견(せい)과 정지(せいさとし)에 대해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인(にん)이면서 지(さとし)가 아닌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지'이면서 견()이 아닌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2)
    게송으로 말하겠다.
     성혜(ひじりとし)의 인(にん)은 '지'가 아니고,
     진지와 무생지는 '견'이 아니며,
     그 밖의 혜는 두 가지와 통하고, 유루혜는
     모두 '지'이나 여섯 가지는 '견'의 성질이다.
     ひじりとししのぶさとし つきなま
     二有漏慧 みなさとしろく見性けんしょう
    논하여 말하겠다. 혜(とし)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きよし)'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이러한 성혜 중에서 8인(にん)은 지(さとし)의 성질이 아니니, 끊어야 할 스스로의 의심[うたぐ]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3) 그러나 '견'의 성질에는 포섭될 수 있으니, 추리 판단[推度]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의 두 가지는 '견'의 성질이 아니니, 이미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종식되어 추리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성혜는 모두 '지'와 '견'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니, 이미 스스로의 의심을 끊었으며, 추리 판단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4) 온갖 유루혜는 모두 '지'의 성질에 포섭되지만, 그 중에서 오로지 여섯 가지만은 역시 또한 '견'의 성질이기도 하니, 이를테면 다섯 가지의 염오견과 세속정견의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
    그리고 이상에서 설한 성혜와 유루혜는 모두 다 택법(ほう)이기 때문에 아울러 '혜'의 성질에 포섭된다.
    지(さとし)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상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지는 열 가지이나 총괄하면 두 가지로
     유루와 무루의 차별이 바로 그것인데
     유루지는 세속지를 말하고
     무루지는 법지와 유지를 말한다.
     さとしじゅう總有そうゆう ゆうべつ
     ゆうしょう世俗せぞく めいほうるい
     세속지는 두루 경계로 하며
     법지와 유지는
     순서대로 욕계와 상계의
     고제 등을 경계로 삼는다.
     世俗せぞくあまねためさかい ほうさとし及類さとし
     如次ほっじょうかい とうたいためさかい
    논하여 말하겠다. 지(さとし)에는 열 가지의 종류가 있어 일체의 지를 포섭하니, 첫째는 세속지(世俗せぞくさとし)이며, 둘째는 법지(ほうさとし)이며, 셋째는 유지(るいさとし)이며, 넷째는 고지(さとし)이며, 다섯째는 집지(しゅうさとし)이며, 여섯째는 멸지(めつさとし)이며, 일곱째는 도지(みちさとし)이며, 여덟째는 타심지(他心たしんさとし)이며, 아홉째는 진지(つきさとし)이며, 열째는 무생지(なまさとし)이다.
    이와 같은 10지는 전체적으로 말하면 오로지 두 가지 종류일 뿐이니, 유루성과 무루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6)
    이러한 두 가지 지는 다시 세 가지로 차별되니, 이를테면 세속지와 법지와 유지가 그것이다. 즉 앞의 유루지를 전체적으로 세속지라고 이름하니, 항아리 등의 다수의 세속의 경계를 취하기 때문이며,7) 뒤의 무루지를 법지와 유지로 나누어 구별한 것이다.8)
    이러한 세 가지 지 중에서 세속지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를 두루 소연의 경계로 삼으며, 법지와 유지의 두 종류는 순서대로 욕계와 상 2계의 4제를 소연의 경계로 삼는 것이다.
    1) 앞의 「현성품」이 수행의 과보로서 현자와 성자에 대해 밝힌 것이라면, 본 품과 다음의 「분별정품(ぶん べつじょうひん)」은 그와 같은 성과(せいはて)를 획득하게 되는 인연을 밝히는 것으로, 본품의 전반부는 온갖 유형의 지( さとし)에 대해, 후반부는 '지'에 의해 성취되는 공덕에 대해 논설하고 있다.
    2) 인(しのべ, ksanti)과 지(さとし, jnana)와 견(, drsti)은 모두 혜(とし)의 다른 작용으로, '인'은 4제의 진리를 인가하면서도 아직 결단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하며, '지'는 그것을 확정하고 결단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그리고 '견'은 추리 판단[推度]의 작용을 말한다. 이하 「분별지품」의 총설로서, 이 세 가지 사이의 법상 적 의의를 밝히고 있다.
    3) 8인은 그것에 의해 끊어지는 의(うたぐ)와 구생하여 그것을 끊으려고 하는 단계로서, 아직 '의'의 득에 장 애되기 때문에 능히 결단(決斷けつだん)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인'은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4제의 이치를 지 금 비로소 관찰하는 것으로, 아직 되풀이하여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さとし)는 아니 지만, 이 역시 추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의 성질이다.
    4) 앞서 언급한 8인과 진지·무생지를 제외한 그 밖의 유학의 8지(さとし)와 무학의 정견은 모두 추리 판단의 '견'이자 결단의 '지'이다.
    5) 다섯 가지 염오견이란 유신견·변집견·사견·견취·계금취로서, 이것이 '견'을 본질로 한다는 것에 대 해서는 본론 권제19 주22) 참조.
    6) 참고로 유루지와 무루지의 차별은 다음과 같다. 무루지는 경계에 대한 행상이 명리(明利あきとし)하며, 유루지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걸지라나무[, khadira, 檐木, 아카시아나무의 일종]와 그 밖의 다른 나무의 숯은 화력이나 향내가 다르며, 시뻘건 쇠붙이[ ほのおてつ]와 풀이 타는 것[くさ]에도 뜨거운 세력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혹은 세속지는 뒤에 증상만(增上慢ぞうじょうまん) 을 일으키지만, 무루지는 그렇지 않으며, 또한 세속지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를 두루 소연의 경계로 삼지만(이 를테면 계경에서 "제행은 비상(非常ひじょう)이며, 일체법은 비아이며, 열반적정이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 법지는 다만 욕계의 4제만을, 유지는 상 2계의 4제만을 소연으로 삼는 등의 광협의 차별이 있다.(『현종론』 권제35, 한글대장경201, p.460)
    7) 세속지란 변괴성(へん壞性)인 '항아리', '옷' 등의 세속의 경계를 대상으로 한 지식을 말한다.(본론 권제 22 주51 참조).
    8) 법지는 욕계의 4제를 소연으로 하는 무루지로서, 최초로 제법의 참된 이치(16행상)를 깨달아 알았기 때 문에 '법지'라 이름한 것이며, 유지는 상 2계의 4제를 소연의 경계로 하는 무루지로서, 소연과 행상이 앞의 법지와 유사하기 때문에 '유지'라고 이름한 것이다."
  62. 운허, "ゆうさとし(유루지)". 2012년 11월 13일에 확인
    "ゆうさとし(유루지): ↔ 무루지(さとし). 이 지혜는 유위(有爲ゆうい)ㆍ무위(無爲むい)의 모든 법을 대상으로 하거니와, 흔히는 세속의 사물에 작용하는 지혜이므로 세속지라고도 함. 아무리 수련하여도 번뇌를 끊지 못하는 지혜. 여기에 생득혜(生得しょうとくとし)ㆍ문혜(聞慧)ㆍ사혜(おもえとし)ㆍ수혜(おさむとし)의 구별이 있음."
  63. 星雲せいうん, "さんとし". 2012년 11월 13일에 확인"さんとし:  梵語ぼんご tisrah prajñāh。ゆび聞思修三しゅうぞうとしそく簡擇事理じりさんしゅ精神せいしん作用さようそく:(いち)聞慧(梵 śrutamayī prajñā),そくよし三藏十二分教或善知識處聞知,能生のうひじりとししょう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此為聲聞しょうもんしょ成就じょうじゅ。()おもえとし(梵 cintāmayī prajñā),そくよし思惟しいしょ聞所ききどころ道理どうり而生ひじりとしためえんさとししょ成就じょうじゅ。(さん)おさむとし(梵 bhāvanāmayī prajñā),乃依修習しゅうしゅう而生ひじりとしため菩薩ぼさつしょ成就じょうじゅ
     其中,聞慧ためさんとしいん,眾生わか受持うけもち轉讀てんどく究竟きゅうきょう流布るふしょ經藏きょうぞうのりせいとし此聞としのりせいおもえとしおもえとしのりゆうおさむとし。此乃だん煩惱ぼんのうあかしとく涅槃ねはん過程かていなお如依種生たなお芽生めむくきくき轉生てんせい枝葉えだははなはてまえ二慧為散智,僅為發起ほっきおさむとしじょえんおさむとしのりためていさとし具有ぐゆうだん惑證理之まさゆき作用さようわか大乘だいじょう菩薩ぼさつかい而言,十住位得聞慧,十行位得思慧,十迴向位得修慧。另就毘曇さかい繫而ごと欲界よくかいゆう聞、おもえとしいん欲界よくかいため不定ふていかいおさむまたはなれ染地そめちわかよくおさむのり墮思としちゅう此界おさむしょなりとしいろかいゆう聞、修二しゅうじとし無色むしょくかいただゆうおさむしょなりとしいんしょく無色むしょくかいじょうかいおさむまたはなれ染地そめちわかよくおもえやめ墮修ちゅう此二界無思所成慧。また無色むしょくかい不用ふようみみ聽聞ちょうもん佛法ぶっぽう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ゆうばばふさが戒經卷一けんいち瑜伽ゆがろんまきじゅうはちなりろんまきじゅうろくあつまりもんあしろんまきだい毘婆すなろんまきよんじゅう、俱舍ろんまきじゅうふつ經論きょうろんまきいち〕"
  6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4 - T29n1558_p0134b25. 성(きよし)
    "としゆうしゅゆうただとしたて以聖めい。"
  6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 1172 / 1397. 성(きよし)
    "혜(とし)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きよし)'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66. 운허, "ひじりみち(성도)". 2013년 2월 3일에 확인
    "ひじりどう(성도): [1] 성인의 지위에 이르는 수행. [2]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무루()의 지혜. [3]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 곧 불도를 말함. [4] 정토교에서 아미타불 타력의 본원력에 의하여, 왕생을 말하는 정토교에 대하여, 사바세계에서 수행하여 증득하려는 자력교(自力じりききょう)를 말함."
  67. 운허, "どう(견도)". 2013년 2월 4일에 확인
    "どう(견도): ↔수도(修道しゅうどう). 견제도(たいどう)라고도 함. 온갖 지식으로 잘못 아는 소견을 여읜 자리. 소승에서는 3현(けん)ㆍ4선근(善根ぜんこん)의 수행을 마치고, 세제일위(だいいち)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16심(しん)으로써 욕계와 색계ㆍ무색계의 4제(たい)의 이치를 관찰하고, 지식으로 잘못된 소견을 여의어 처음으로 성자(聖者せいじゃ)라 칭하는 위(). 16심 가운데 앞에 15심은 견도(どう), 제16심은 수도(修道しゅうどう)라 한다. 대승 유식종(唯識ゆいしきむね)에서는 5위 중 통달위(通達つうたつ)에 해당, 가행위(ゆき)의 맨 나중인 세제일위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유식(唯識ゆいしき)의 성품인 진여의 이치를 체득하여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번뇌장(はん惱障)ㆍ소지장(ところともさわ)의 종자를 끊고, 선천적으로 갖춘 번뇌장의 활동을 아주 눌러버리는 자리. 10지()의 처음인 환희지에 해당. 이 종(むね)은 16심 전체를 견도라 함. ⇒진견도(眞見まみどう)"
  6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8. 3혜(さんとし)와 성도(ひじりみち)
    "やめべんしょたいおうせつうんなん方便ほうべんつとむおさむおもむきたいどう。頌曰。
     はたおもむきたいどう おうじゅう戒勤おさむ
     聞思おさむところしげる いいめい俱義さかい
    ろん曰。しょゆう發心ほっしんはたおもむきたいおうさき安住あんじゅう清淨せいじょうしかばねしかつとむおさむ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ういいさき受順たい聞。聞已つとむもとめしょ聞法。聞法やめたおせ思惟しいおもえやめかたのうてい修習しゅうしゅう行者ぎょうじゃ如是にょぜじゅう戒勤おさむ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おこりおもえしょなりとし。"
  6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3혜(さんとし)와 성도(ひじりみち)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どうたい),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おもえ)·수(おさむ)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はたおもむきたいどう おうじゅう戒勤おさむ
     聞思おさむしょなり いいめい俱義さかい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しかばね,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에 수순하는 청문(聽聞ちょうもん)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ほうよし]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해야 하니, 사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에 의지하여 수습(修習しゅうしゅう)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에 의해 사소성혜(おもえしょなりとし)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おさむしょなりとし)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70. 실역인명(しつやく人名じんめい) & T.1507, 제2권. p. T25n1507_p0036b23 - T25n1507_p0036b27. 속계(ぞく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みち戒: 출세간의 선법)
    "おっと戒有ゆうぞく戒有どう戒。五戒十善為俗戒。さん三昧ざんまいためどう戒。ひゃくじゅう戒至ひゃく戒。またぞく戒。四諦妙慧為道戒也。ただしくだりやす戒不三界さんがい。以慧戒。使つかいなり乃合どう戒。"
  71. 실역인명(しつやく人名じんめい), 이태승 번역 & K.973, T.1507, 제2권. p. 32 / 114. 속계(ぞく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みち戒: 출세간의 선법)
    "대체로 계에 두 가지가 있다. 속계(ぞく戒)와 도계(みち戒)이다. 5계와 10선(ぜん)은 속계를 이루며, 3삼매는 도계를 이룬다. 250계에서 500에 이르는 이것도 속계이며, 4제(たい)의 묘혜는 도계를 이룬다. 단지 계를 행하는 데 안주해서는 삼계(三界さんが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혜로써 계를 제어하고 무루를 성취시켜야 곧 도계에 합치한다."
  72. 운허, "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무분별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무분별지): ↔유분별지(ゆう分別ふんべつさとし). 올바르게 진여를 체득하는 지혜, 진여의 모양은 우리들의 언어나 문자로서는 어떻게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분별심을 가지고는 그 체성에 계합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생각과 분별을 여읜 모양 없는 참 지혜로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런 지혜를 무분별지라 한다."
  73. 운허, "さとし(무루지)". 2013년 2월 5일에 확인
    "さとし(무루지): 2지(さとし)의 하나. 진리를 증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여읜 청정한 지혜. 소승에서는 4제(たい)의 이치를 증한 지혜라 하여 법지(ほうさとし)와 유지(るいさとし)의 두 가지를 세우고, 대승 유식에서는 무루지에 근본지(根本ねもとさとし)ㆍ후득지(こうとくさとし)의 두 가지를 세운다. 근본지는 유식의 성(せい)인 진여(眞如しんにょ)의 이치를 증득한 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를 말하고, 후득지는 그 근본지에서 나와 유식의 상(そう)인 인연으로 일어난 모든 만상을 아는 지혜이다."
  74. 星雲せいうん, "さとし". 2013년 2월 5일에 확인
    "さとし: 梵語ぼんご anāsrava-jñāna。ゆびしょう真理しんりとおはなれ一切煩惱過非之智慧。ためゆうさとし對稱たいしょう。於小乘しょうじょうあかし四諦したい理之まさゆきさとししょうためさとしゆうほうさとしるい智之としゆき分別ふんべつあかしとく欲界よくかい四諦したい法理ほうりさとししょうためほうさとしあかしとくしょく無色むしょくとう二界四諦法之智,しょうためるいさとしぶた其境さとしあずかほうさとし相似そうじしょうるいさとしわかよしさかい差別さべつそくぶんためしゅうほろびみちとうよんさとし。於無學位がくいまたぶんつきさとしなまさとし,此二智皆證見四諦之法理。小乘しょうじょういいさとし於見どうはじめ生起せいき,而漸修習しゅうしゅう
     於大おだいじょう唯識ゆいしきむねそくぶんさとしため根本こんぽんこうとくさとし根本ねもとさとしため唯識ゆいしきせいそくあかしとく真如しんにょ理性りせい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とくさとしゆかり根本ねもとさとし所出しょしゅつため唯識ゆいしきこれしょうそく了知りょうち因緣いんねんげんおこり萬象ばんしょう大乘だいじょういいさとし於初どうはじめ生起せいき,而漸修習しゅうしゅうとげしょう佛果ぶっか。〔法華經ほけきょう方便ほうべんひんだい毘婆すなろんまききゅうじゅうなな、俱舍ろんまきじゅうろくじゅんせい理論りろんまきななじゅうさん〕(まいり閱「じゅうさとし」 472)"
  75. 세계사상 > 사 상 용 어 > 동양사상 관계 > 불교 관계 > 바라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바라밀: 波羅蜜はらみつ 범어 파라미타의 음을 딴 말로 도피안(いたなみがん)·도() 등으로 번역한다. 미망과 생사의 차안에서 해탈,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것. 또한 그 때문에 보살이 수(おさむ)하는 행(くだり)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야경전>에서 설법하는 6바라밀(六波羅蜜ろくはらみつ), 즉 보시(布施ふせ)·지계(持戒じかい)·인욕(忍辱にんにく)·정진(精進しょうじん)·선정(禪定ぜんじょう)·지혜(智慧ちえ)의 여섯을 말하며, 마지막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라고도 하여 다른 다섯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むふんべつさとし)이다. 6바라밀에 방편(方便ほうべん)·원(ねがい)·역(ちから)·지(さとし)의 넷을 더한 10바라밀이나 그와는 별도로 4바라밀 등도 설법되고 있다."
  76. 般若はんにゃ(반야)〉. 《같은 책》.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 
  77. 호법 등. 〈성유식론(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 현장 한역. 《대정신수대장경》. 제1권.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01a09(12) - T31n1585_p0001a12(10). 2011년 5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원문: こんみやつこ此論ため於二空有迷謬者生正解故。なまかいためだんじゅうさわよしわがほうさわせいわかあかし二空彼障隨斷。だんさわためしょうはてよし斷續だんぞくせい煩惱ぼんのうさわあかし解脫げだつよしだん礙解しょさわとくだい菩提ぼだい
    편집자 번역: 지금 이 논서를 저술하는 이유는 이공(そら: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공(そら)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공(そら)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무거운 장애(じゅうさわ: 번뇌장과 소지장)를 끊기 위한 때문이다. 아집(我執がしゅう)과 법집(ほう)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 이공(そら)을 증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이들 (두 가지) 장애도 끊어진다. (이들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뛰어난 과보(しょうはて: 열반과 보리, 또는 해탈과 보리)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윤회하는 삶(せい)을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인 번뇌장(はん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解脫げだつ: 유식학에서 해탈은 열반과 같은 것이다)을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며, 지혜(かい: 앎 · 이해 · 지식)를 장애하는 소지장(ところともさわ)을 끊음으로써 대보리(だい菩提ぼだい: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 · 출세간의 무분별지혜 · 무상정등보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78. 호법(護法ごほう) 등. 현장(げん奘) 한역, 김묘주 번역, 편집. 《성유식론(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 제1권,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동국역경원. 2쪽. 
    "번역자 김묘주 주석: 아공의 도리를 깨쳐서 번뇌장을 끊으면 해탈, 즉 열반을 증득한다. 법공의 도리를 깨쳐서 소지장을 끊으면 곧 큰 깨달음[だい菩提ぼだい]을 성취해서 붓다가 된다."
  79. 운허, "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대원경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대원경지): 4지(さとし)의 하나. 유루(ゆう)의 제8식을 뒤쳐서 얻는 무루()의 지혜. 이것은 거울에 한점의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추어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대원경지라 한다. 불과(佛果ぶっか)에서 처음으로 얻는 지혜."
  80. 운허, "平等びょうどうせいさとし(평등성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平等びょうどうせいさとし(평등성지): 5지(さとし)의 하나. 제7식을 전(てん)하여 얻은 무루 지혜니, 통달위(通達つうたつ)에서 그 일부분을 증득하고, 불과(佛果ぶっか)에 이르러 그 전체를 증득한다. 일체 모든 법과 자기나 다른 유정들을 반연하여 평등 일여한 이성(理性りせい)을 관하고 너와 나의 차별심을 여의어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며, 보살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지혜."
  81. 星雲せいうん, "よんさとししんひん". 2013년 2월 6일에 확인
    "よんさとししんひん: そく佛果ぶっかよんさとしいいいたり佛果ぶっかてん捨有識蘊しょ而得四種無漏智。略稱りゃくしょうよんさとしよりどころ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まきじゅうふつ經論きょうろんまきさんとう唯識ゆいしきそう立大りつだい菩提ぼだいさとしひんため四種無漏智相應心品,そく:(いち)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相應そうおうしんひん(梵 ādarśa-jñāna),またたたえ大圓だいえんかがみさとしえんかがみさとしかがみさとし,乃轉だい八阿賴耶識所得之智。此智はなれしょ分別ふんべつ所緣しょえんぎょうしょう微細びさいなん妄不一切いっさいきょうしょうせいしょう清淨せいじょうはなれしょざつしみ,如大えんきょう光明こうみょうへんうつ萬象ばんしょう事理じり,纖毫のこ。()平等びょうどうせいさとし相應そうおうしんひん(梵 samatā-jñāna),またたたえ平等びょうどうせいさとし平等びょうどうさとしかかりてんだい七末那識所得之智。此智かん一切いっさいほう自他じた有情うじょう悉皆しっかい平等びょうどうあずかだい慈悲じひとうつねども相應そうおう平等びょうどうあまねたび一切いっさい眾生。(さん)みょうかん察智相應そうおうしんひん(梵 pratyaveksanā-jñāna),またたたえみょう觀察かんさつさとし觀察かんさつさとしかかりてんだいろく意識いしき所得しょとくさとし。此智ぜんかん諸法しょほうそうともしょう無礙むげ而轉,有情うじょう眾生同根どうこん自在じざい說法せっぽう教化きょうか眾生。(よん)なり所作しょささとし相應そうおうしんひん(梵 krtyānusthāna-jñāna),またたたえなり所作しょささとし作事さくじさとしかかりてんみみとうぜん五識ごしき所得しょとくさとし。此智よくたのししょ有情うじょうのうじゅうぽう以身、くち三業為眾生行善,成本なりもと願力がんりきしょおう作事さくじ此四智即可達於佛果。〔大乘だいじょうろんほんまき大乘だいじょう莊嚴しょうごん經論きょうろんまきさんなり唯識ゆいしきろんりょうとうまきななまつ〕(まいり閱「よんさとし」1769)"
  82.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 > 6바라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83. 〈대지도론(大智たいちろん)〉. 《대정신수대장경》. 제33권. Vol. 25, No. 1509, CBETA, T25n1509_p0305c17(00) - T25n1509_p0305c19(01). 2010년 6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 けい ふく舍利しゃりどる菩薩ぼさつ訶薩欲得よくとくしゃとうがく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 ろん 何等なんら肉眼にくがん天眼てんがん慧眼けいがん法眼ほうげんふつ 
  84. 구마라습 한역 &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ぼさつ敎化きょうかひん)〉. p. T08n0245_p0826b21 - T08n0245_p0826b25. 5인(にん)
    "しろふつごと:「世尊せそんまもる十地行菩薩云何行可行?うんなんぎょう眾生?以何しょう眾生?」ふつごと:「大王だいおうにん菩薩ぼさつほうふくにん上中かみなかしんにん上中かみなかじゅんにん上中かみなかなまにん上中かみなか寂滅じゃくめつにん上中かみなかめいためしょ佛菩薩ぶつぼさつおさむ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
  85.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 K.19,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ぼさつ敎化きょうかひん)〉. p. 14 / 50. 5인(にん)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0지행(地行じぎょう)을 수호하는 보살은 어떠한 행을 행하여야 하며, 어떠한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떠한 모습의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5인(にん)55)이 이 보살의 법이니, 복인(ふくにん)의 상(うえ)ㆍ중(なか)ㆍ하(した)와 신인(しんにん)의 상중하와 순인(じゅんにん)의 상중하와 무생인(なまにん)의 상중하와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의 상하를 이름하여 모든 불ㆍ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하느니라.
    55) 보살의 수행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 첫째 복인(ふくにん)은 번뇌를 제복(せいふく)하였으나 아직 끊지 못한 지() 이전의 3현(けん), 둘째 신인(しんにん)은 무루()의 신(しん)을 얻은 초지ㆍ2지()ㆍ3지(), 셋째 순인(じゅんにん)은 이치에 순종하여 무생(せい)의 깨달음에 향하는 4지ㆍ5지ㆍ6지, 넷째 무생인(なまにん)은 모든 법의 무생의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한 7지ㆍ8지ㆍ9지, 다섯째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은 모든 미혹을 끊고 적정의 깨달음에 안주한 제10지 및 불과(佛果ぶっか). 앞의 넷을 각각 상ㆍ중ㆍ하, 뒤의 하나를 상ㆍ하로 나누어 14인(にん)이라 한다."
  86. 불공 한역 & T.246, 상권 〈3. 보살행품(菩薩ぼさつぎょうひん)〉. p. T08n0246_p0836b11 - T08n0246_p0836b17. 5인(にん)
    "なんじなみ斯匿おうしろふつごと:「世尊せそんまもる十地行菩薩摩訶薩,おううんなん修行しゅぎょううんなん眾生?ふく以何しょう而住觀察かんさつ?」ふつつげ大王だいおう:「しょ菩薩ぼさつ訶薩依忍法にんぽう以為修行しゅぎょう所謂いわゆるふくしのべしんしのべじゅんしのべなまにん——みな上中かみなか,於寂滅じゃくめつにん而有上下じょうげめいため菩薩ぼさつ修行しゅぎょう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
  87. 불공 한역, 번역자 미상 & K.1340, T.246, 상권 〈3. 보살행품(菩薩ぼさつぎょうひん)〉. pp. 8-9 / 47. 5인(にん)
    "그 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십지의 행[じゅう地行じぎょう]을 보호하는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며 또 어떤 모양으로 머물러 관찰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5인(にん)의 법에 의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복인(ふくにん)ㆍ신인(しんにん)ㆍ순인(じゅんにん)ㆍ무생인(なまにん)인데, 모두 상ㆍ중ㆍ하가 있고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에도 상ㆍ하가 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고 한다."
  88. 운허, "にん(오인)".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にん(오인): 보살이 계단을 5종으로 나눈 것. (1) 복인(ふくにん). 번뇌를 끊지 못하였으나, 관해(かんかい)를 익혀 이를 굴복시키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지위. 곧 10주(じゅう)ㆍ10행(くだり)ㆍ10회향(まわりむこう)의 보살. (2) 신인(しんにん). 관하는 마음이 진전되어 증득(あかしとく)할 법을 믿고 의심치 않는 지위. 곧 초지(はつ)ㆍ이지()ㆍ삼지(さん)의 보살. (3) 순인(じゅんにん). 전의 믿음에 의하여 다시 나은(かち) 지혜를 연마하여 무생(せい)의 증과(あかしはて)에 순하는 지위. 곧 4지()ㆍ5지ㆍ6지의 보살. (4) 무생인(なまにん). 제법무생의 진리를 깨달아 아는 지위. 곧 7지()ㆍ8지ㆍ9지의 보살. (5)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 갖가지 번뇌를 끊어버리고 청정무위잠연적정(淸淨せいじょう無爲むいたたえしか寂靜じゃくじょう)에 안주(安住あんじゅう)하는 지위. 곧 10지()ㆍ등각(とうさとし)ㆍ묘각(みょうさとし)의 지위."
  89. 星雲せいうん, "にん".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にん:  ゆびふくしんじじゅんせい寂滅じゃくめつにんぜんよんにんかく分上ぶんじょうなかしたさんひんいちにんぶんじょうしたひん總稱そうしょうためじゅうよんにん。(いち)ふくしのべまえ三賢之人未得無漏,煩惱ぼんのうだんただしのうふくじゅう煩惱ぼんのうれいおこり。其中じゅうじゅうため下品げひんじゅう行為こういちゅうひんじゅう回向えこうため上品じょうひん。()しんしのべ地上ちじょう菩薩ぼさつとくしんじ隨順ずいじゅんうたぐ。其中はつため下品げひん,二地為中品,さんため上品じょうひん。(さん)じゅんしのべ菩薩ぼさつじゅん菩提ぼだいどう趣向しゅこうせいはて。其中よんため下品げひん,五地為中品,ろくため上品じょうひん。(よん)なまにん菩薩ぼさつ妄惑やめつき了知りょうち諸法しょほう悉皆しっかいせい。其中ななため下品げひん,八地為中品,きゅうため上品じょうひん。()寂滅じゃくめつしのべしょ惑斷つき清淨せいじょう無為むいたたえしか寂滅じゃくめつ。其中じゅうため下品げひんふつため上品じょうひん。〔仁王におう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經卷きょうかんじょう法華經ほけきょうげんまきじょう仁王におう護國ごこく般若はんにゃけい疏卷さんまきよんさとし顗)、大乘だいじょう義章よしあきまきじゅう〕 p1097"
  90. 운허, "薩婆わか(살바야)".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薩婆わか(살바야): 【범】 sarvajña 줄여서는 살운(薩雲ㆍ薩云). 일체지(一切いっさいさとし)라 번역. 불과(佛果ぶっか)에서 일체 법을 증득하는 지혜. 살바야해(薩婆若海わかうみ)라 함은 이 지헤의 넓은 것을 바다에 비유한 것."
  91. 구마라습 한역 &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ぼさつ敎化きょうかひん)〉. p. T08n0245_p0826c21 - T08n0245_p0826c28.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
    "「ふく寂滅じゃくめつしのべふつあずか菩薩ぼさつどうよう此忍入金にゅうきんごう三昧ざんまい下忍しもおしちゅうぎょうめいため菩薩ぼさつうえしのぶちゅうぎょうめいため薩婆わかともかん第一義だいいちぎたいだん三界さんがいこころ習,無明むみょうつきしょうため金剛こんごうつきしょうあいため薩婆わかちょうたい第一義だいいちぎたいこれがいためだいじゅういち薩婆わかさとしゆうたたえしか清淨せいじょう常住じょうじゅう不變ふへんどう真際まぎわとうほうせい無緣むえん大悲だいひ教化きょうか一切いっさい眾生,じょう薩婆わかじょうらい三界さんがい。"
  92.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 K.19,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ぼさつ敎化きょうかひん)〉. p. 14 / 50.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
    "또 적멸인(寂滅じゃくめつにん)76)은 부처님과 보살이 같이 이 인(にん)으로써 금강삼매에 들어가느니라. 하인(下忍しもおし)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상인(うえしのぶ)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살바야라 하느니라. 같이 제일의제(第一義だいいちぎたい)를 관하여 삼계의 마음의 습기[こころ習]와 무명(無明むみょう)을 끊어 모양이 다하면[つきしょう] 금강이라 하며, 모양과 모양이 없음[あいしょう]을 다하면 살바야라 하며, 세제(たい)와 제일의제(第一義だいいちぎたい)의 밖을 뛰어넘으면 제11지()의 살바야라 하느니라.
    있지도 않고[ゆう] 없지도 않음[]을 깨달아 고요하고 청정하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아니하며 진제(眞際まぎわ)와 같고 법성과 같으며 무연대비(無緣むえん大悲だいひ)77)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매 살바야의 수레를 타고 오셔서 삼계를 교화하시느니라.
    76) 모든 혹(惑)을 끊어서 적정(寂靜じゃくじょう)에 안주하는 제10지 및 불과(佛果ぶっか). 여기에 상ㆍ하의 인(にん)을 나누어 하인은 보살, 상인은 일체지(一切いっさいさとし:ふつさとし)라고 한다.
    77) 분별할 대상이 없어진 대자비, 평등한 대자비를 말한다."
  93. 운허. のう斷金だんきんつよし般若はんにゃ波羅蜜はらみつけい(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앞의 책》.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