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 점차 해상 활동을 활발히 벌려 당·일본과 무역할 뿐만 아니라 해상 무역 활동이 편리한 곳에 이민하여 집단적으로 거주하였다.[1]당나라의 해안 지방에 있는 집단 거주지를 신라방이라고 하는데, 그 중 신라인을 다스리기 위한 총관까지 배치한 산둥성등주(登州)의 것이 유명하며, 산둥성에서 장쑤성에 걸쳐 존재했다.[1]
또 문등현(文登縣) 적산촌(赤山村)에는 적산원(赤山院)이란 신라인의 사찰이 세워져 신라와 일본에서 승려가 왔으며, 후에 장보고(張保皐)가 해상권을 장악하자 해상 무역이 신라인의 독점이 되면서 더욱 번영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