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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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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하였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생] 본관은 순흥(じゅんきょう)이며, 황해도 해주(うみしゅう)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めい)을 응칠(おうなな)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로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진해현감을 지냈다. 할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하였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漢學かんがく)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청년기]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안태훈이 사병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하였으며,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은 되어 있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8월 9일 뒤늦게 대일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 뿐인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다.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미소 양군의 한반도 진주 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 등 전후처리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당국은 남북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킴으로써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었으며...

  • 한말의 독립운동가·사상가.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활동을 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호는 도산(島山しまやま)으로 평안남도 강서(江西えにし)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しんにち戰爭せんそう)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きゅうせい學堂がくどう)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獨立どくりつ協會きょうかい)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ばんみん共同きょうどうかい)를 쾌재정(快哉かいさいてい)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漸進ぜんしん學校がっこう)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 있는 나라로서, BC 약 2300년에 건국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존재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및 남북국시대를 거쳐 중세에는 고려가 세워졌으며, 이후 조선이 건립되어 근대까지 이어졌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과 소련 군대의 한반도 분할 주둔으로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었고, 한반도 남쪽에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1950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 1953년 이후 휴전 중이며, 현재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大韓民國だいかんみんこく)은 '한국(韓國かんこく)' 또는 '남한(South Korea)'으로 줄여 부른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와 3,2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만들어진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북한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은 동해와 남해를 넘어 일본에 면하며, 서쪽에는 서해를 넘어 중국에 면한다. 중국, 일본...

  •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민족 수난기이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주요 인물] 김구 |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했으며, 8 · 15 광복 후에는 자주적인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1949년에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는 동안 쓴 일기인 《백범일지》가 남아 있다. 김좌진 | 일제에 맞서 무장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일본의 정규군과 맞선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안창호 |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도산’이다.민족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충청남도 천안(てんやす)에서 태어났다. 1914년 공주영명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에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였고,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휴교에 들어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1운동의 전개 천안·연기(つばめ岐)·청주(淸州きよす)·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竝川なみかわ]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やなぎしげるけん)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들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 한말의 독립운동가. 만주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군이 되어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하였으며, 청산리 전투에서는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였다. 그 후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부총재가 되었으며,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했다. 일명 범도(はんどう)라고도 하며, 호는 여천(なんじせん)이다. 186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자성[慈城:일설에는 평안북도 양덕(とく) 또는 평양이라고도 함]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갑산(甲山こうざん)으로 이사한 뒤 수렵과 광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07년 전국적인 의병봉기에 자극을 받고 있던 중 이 해 9월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고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려 하자, 11월 차도선(車道しゃどうぜん)·태양욱(太陽たいよういく)·송상봉(そうしょうおおとり)·허근(もと瑾)과 함께 산포대(山砲さんぽうたい)를 조직한 뒤 삼수(三水さんずい)·갑산 지방 포수들의 총포를 회수하러 온 일본군을 대적하여...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いん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かねもとさち) 사이에서 태어났다(190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호는 매헌(梅軒ばいけん)이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德山とくやま)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하였다. 동생인 윤성의(いんきよし)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がらす峙書じゅく)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하였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독서회운동 등 농촌사회운동을 펴나갔다. [농촌사회운동] 농민계몽을 위해 《농민독본(農民のうみん讀本とくほん)》이란 교재를 집필하여 야학회를 조직,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의 불우한 청소년을 가르쳤다. 농촌의 발전을 위해 ‘부흥원(復興ふっこういん)'이란 단체를...

  •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1939년 9월 1일에 일어난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에서 발발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된 것으로 여긴다. 이 기간 동안 1941년 독일의 소련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었다. 전쟁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3국 조약을 근간으로 한 추축국[樞軸すうじくこく, Axis Powers] 진영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聯合れんごうこく, Allied Powers] 진영의 대립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경과에 따라 각 진영에 가담한 국가들은 변동이 있으며...

  •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군 부대가 만주 허룽현 청산리 백운평(白雲しらくもつぼ)·천수평(泉水せんすいつぼ)·완루구 등지의 10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싸움. 3·1운동 이후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대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이에 일제는 직접 일본군을 간도로 침공시켜 독립군과 항일단체를 없애고자 하였다. 간도침략에 대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일제는 중국의 마적을 매수하여 훈춘사건[琿春事件じけん]을 일으켰다. 훈춘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에 투입하여 한인사회와 독립군을 탄압하였다. 일본군의 강요로 독립군을 탄압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관헌들은 독립군단에게 근거지를 이동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간도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단은 1920년 8월 하순부터 새로운 근거지를 구축하고자 본영을 떠나 허룽현[かずりゅうけん] 이도구(二道ふたみちみぞ)· 삼도구(さんみちみぞ)의 서북방 삼림지대로...

  •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자 화백(はく). 호 송창(まつまど).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じょうとおきみ:元宗もとむね으로 ついみこと), 어머니는 인헌왕후(じんけんじおうきさき)이다. 비는 한준겸(かん浚謙)의 딸 인열왕후(ひとしれつおうきさき), 계비(つぎ)는 조창원(ちょうあきらもと)의 딸 장렬왕후(そうれつおうきさき)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あやみやこただし)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あやくん)으로 진봉되었다. 1623년 김류(きむ瑬)·김자점(きむてん)·이귀(たか)·이괄(适) 등 서인(西人せいじん)의 반정(はんせい)으로 왕위에 올랐다.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자 일시 공주(おおやけしゅう)로 피난하였다가 도원수 장만(ちょうばん)이 이를 격파한 뒤 환도하였다....

  •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 [유신체제의 성립과 반발]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위수령(衛戍えいじゅれい)과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維新いしん體制たいせい)를 선포하였다. 이와 함께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졌고, 비상국무회의 설치, 국회 해산 및 정당 정치 금지 등이 단행되었다. 그리고 12월 23일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 선거에 단독 입후보한 박정희 대통령이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신체제 하의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던 중 1973년 8월 8일 미국과 일본에서 유신체제 반대 운동을 벌이던 김대중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반(たん)유신 시위를 촉발하였는데, 박정희 정부는 1974년 4월 민청학련사건, 제2차...

  •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 임진왜란 이후 부국강병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조선왕조 제15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608년에서 1623년까지이다. 이름은 이혼(琿), 본관은 전주, 선조(せん)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공빈 김씨(きょう嬪金)이며 비()는 판윤 유자신(やなぎしん)의 딸이다. 세자 책봉 문제로 임해군과 갈등을 빚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세자에 책봉되었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피난을 가다가 영변(寧邊にょんびょん)에서 갈라졌다. 선조는 의주로 향하고 광해군은 권섭국사(けん國事こくじ)의 직위를 맡아 분조(ぶんあさ)의 책임자로 평안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평안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인 분조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을 수복한 후 무군사(なで軍司ぐんじ)의 업무를 담당하여 수도 방위에도 힘을 기울였다. 1597년...

  • 1960년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룬 한국 학생의 일련의 반부정(はん不正)·반정부 항쟁. 1960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조작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하면서 영구집권(永久えいきゅう執權しっけん)을 꾀했던 이승만(承晩しょうばん)과 자유당정권(自由黨じゆうとう政權せいけん)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だい共和きょうわこく)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비합헌적(合憲ごうけんてき)인 방법으로 헌정체제(憲政けんせい體制たいせい)의 변혁과 정권교체를 결과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혁명(革命かくめい)으로 규정하여 이를 4월혁명, 4·19혁명, 4·19학생혁명, 또는 4·19민주혁명 등으로 불리었으나 5·16군사정변 이후 이를 의거(義擧ぎきょ)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혁명으로 환원되었다. [ 간접원인] 4·19혁명을 초래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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