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묘법연화경》 2권 변상도(1340년 고려( | |
역자 | 구마라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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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 중국 오호십육국 시대 요진(姚秦) |
언어 | 한자 |
《묘법연화경》(
초기 대승경전(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는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단편(
현존하는 3종 한문 번역 가운데 구마라집(
오늘날 학자는 그 성립을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신자집단이 서북부 인도에서 《소부》(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 영겁(
전래 역사[원본 편집]
법화경은 동쪽으로 전해지기 전에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널리 유포된 경전이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존재했고, 티베트 불교의 게르크파의 개조가 된 총카파는 자신의 저서 보리도차제대론(
법화경은 빠르게 한반도에도 전래되었다. 고구려의 수도(427년 천도 ~ 668년까지)였던 평양의 대성산성(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법화경》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
이 중 계환의 주해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통된 것은 그 내용이 한국 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존 판본을 살펴보면 고려 시대 3종이고, 조선 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을 대승 불교 교단이 소승 불교 교단과 갈라져 나오면서 형성된 경전으로 추정하며, 초기에는 운문의 형태로 암송되어 전래되어 오다가, 후에 서술형 문구와 운문의 형태가 융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따라서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은 《반야경》 이래로 등장한 대승 불교 경전들의 최고 집대성이자 완성된 시기의 경전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4]
설법 장소[원본 편집]
영취산(
구성 및 내용[원본 편집]
구성[원본 편집]
무량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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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행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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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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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공덕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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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문(迹門) | 14 |
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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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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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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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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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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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품(授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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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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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제자수기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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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무학인기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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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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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보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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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달다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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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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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행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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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4 |
종지용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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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수량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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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공덕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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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공덕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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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공덕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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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불경보살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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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신력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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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루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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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보살본사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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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음보살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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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보문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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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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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장엄왕본사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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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보살권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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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 |
법화칠비[원본 편집]
《법화경》에는 부처가 되기 위한 길로 7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해놓은 것이 있다. 이를 법화칠비(
- 삼거화택(
三 車 火宅 )의 비유(火宅 喩 ) - 장자궁자(
長者 窮 者 )의 비유(窮 子 喩 ) - 삼초이목(
三 草 二 木 )의 비유(藥草 喩 ) - 화성보처(
化 城 寶 處 )의 비유(化 城 喩 ) - 계중명주(
契 中 明 珠 )의 비유(契 珠 喩 ) - 빈인계주(
貧 人 繫珠)의 비유(衣 珠 喩 ) - 양의병자(
良 醫 病 子 )의 비유(醫 子 喩 )
지정 문화재[원본 편집]
국보 제185호[원본 편집]
《상지은니묘법연화경》(
보물 제961-2호[원본 편집]
‘묘법연화경 권4~7(
권수 변상도(
보물 제1147-2호[원본 편집]
이 책은 1470년(성종 원년) 4월에 세조의 왕비인 정희대왕대비가 발원하여 돌아가신 세조, 예종, 의경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묘법연화경 7권 가운데 권 1∼2이다. 이 책은 권돈일, 고말종, 장막동, 우인수, 최금동, 이영산, 최덕산 등 당대의 일류 각수(
보물 제1164-2호[원본 편집]
‘묘법연화경 권3~4, 5~7(
묘법연화경은 구마라집(姚秦, 344~413년)이 한역한 불교경전으로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하는데,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교경전이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불교전문강원의 과목으로 채택되었고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7]
보문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은 글자의 깨짐과 계선의 마멸상태로 보아 초인본은 아니고, 성종연간(1470~1494년)에 간행된 후인본으로 보인다. 동일한 판본으로는 보존상태가 온전하고, 인쇄상태와 지질도 뛰어나므로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다고 판단된다.[7]
보물 제1194호[원본 편집]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보물 제1194호 《묘법연화경 권2》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3cm, 가로 10.9cm이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 제9∼10(보물 제1195호)과 글씨체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196호[원본 편집]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보물 제1196호《묘법연화경》은 권1에서 권7에 해당하는 책으로 세조 1년(1456)에 동궁(
표지의 일부가 약간 훼손되었을 뿐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완전본이다. 제목은 붉은 바탕 위에 금색 글씨로 썼으며, 각 권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
판에 새긴 후 처음 찍어낸 책은 아니지만, 권1에서 권7까지 완전하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306-1호[원본 편집]
직지사 성보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은 양촌(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6호[원본 편집]
취정사 소장 《묘법연화경》은 조선시대 명필가인 성달생(
같이 보기[원본 편집]
각주[원본 편집]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가 나 다 라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교 > 불교의 성전 > 법화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법화경(法華經 ) 원명을 삿다르마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pundarikasutra)라고 하며 '백련화(白 蓮華 )와 같은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뜻으로서 예로부터 제경(諸 經 )의 왕으로 생각되었고, 초기 대승경전(大乘 經典 )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가지의 단편(斷片 )이 존재하며, 이들의 불역(佛 譯 )·영역(英譯 )이 있는 한편 한역·티베트어역·위구르어역·서하어역(西 夏 語 譯 )·몽고어역·만주어역 등이 있어서, 이 경이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성립 시기는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한 진보적인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소부(小部 )의 것이 만들어졌고 후일에 증광(增 廣 )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3종의 한역 중에는 라습(羅 什)역의 《묘법연화경》(妙法 蓮華 經 )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경(經 )에서는, 불타는 구원(久遠 )한 옛날부터 미래 영겁(未來永劫 )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超越 的 存在 )로 되어 있고,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 乘 )를 보이기 위함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그 중심으로 되어 있다." - ↑ 《묘법연화경》은 7권 28품으로 된 불교경전으로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천태종(
天台宗 )의 근본 경전으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 科 )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 )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大乘 經典 )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 )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 중 구마라습(鳩 摩 羅 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 蓮華 經 )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 ↑ 틱낫한,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Opening, the heart of the cosmos ISBN 8976772059-0322
- ↑ “봉정사 산내암자”. 봉정사. 2016년 3월 1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1월 29일에 확인함.
- ↑ 박, 상국. “영산전 (
靈山 殿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년 2월 1일에 확인함.영축산정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
聖地 )를 영산전을 통하여 현현시킨 것이며, - ↑ 가 나 다 라 마 문화재청고시제2014-4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 변경》,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186호, 32면, 2014-01-20
- ↑ 문화재청고시제2008-19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변경》, 문화재청장, 2008-03-12
- ↑ 관보 제14693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01년 1월 2일. 문화재청고시제2000-60호 .〈보물지정〉. 2016년 5월 8일 확인함.
- ↑ 문화재청고시제2019-27호(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 변경), 제19452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9. 3. 6. / 144 페이지 / 720KB
참고 문헌[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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