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ed by https://www.hiragana.jp/)
무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본문으로 이동

무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무치(, 산스크리트어: amoha, 팔리어: amoha, 영어: wisdom, non-delusion, non-bewilderment, lack of naivety, lack of stupidity)는 어리석음이 없음 또는 어리석지 않음으로, 선근(善根ぜんこん) 중의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법상종5위 100법에서 심소법(しんしょほう: 51가지) 중 선심소(善心ぜんしんしょ: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설일체유부5위 75법에서는 심소법(しんしょほう: 46가지) 중 대지법(大地だいちほう: 10가지) 가운데 하나인 (とし)에 속한 것으로 보아 별도의 법으로 설정하지 않는다.[1][2][3][4] 무치()는 모든 의 사리(事理じり)를 밝게 아는[明解めいかい] 마음작용으로, 우치(愚癡ぐち)의 마음작용을 대치(たい)하여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선법(ぜんほう)을 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3][4]

현양성교론·대승오온론·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무치(: 어리석음이 없음, 어리석지 않음)는 정지(せい) 또는 정료(せいりょう) 즉 바른 앎과 동의어이다.[5][6][7][8] 그리고 무치 · 정지 · 정료의 본질4성제12연기진리계합하는 8정도6바라밀 등의 여실정행(如實にょじつ正行まさゆき) 또는 정행(正行まさゆき)이다. 즉, 무치 · 정지 · 정료는 여실정행 또는 정행과 동의어이다.[7][8][9][10][11]

달리 말하면, 불교에서의 은 경험에 의한 앎 또는 수행을 통해 증득된 앎이며, 보시계율 등의 실천[くだり]과 분리되지 않는다. 멘탈적인(지적인) 앎은 실천[くだり]의 단지 한 부분이며 기초일 뿐이다. 멘탈적인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문혜(聞慧)와 사혜(おもえとし)라고 하며, 이 둘은 모두 유루지이다. 즉 성인지혜 또는 앎이 아니다. 하지만, 성인지혜 또는 앎 즉 무루혜성취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12][13][14]

같이 보기

[편집]

참고 문헌

[편집]

각주

[편집]
  1. 권오민 2003, 69–81쪽.
  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67 / 1397쪽.
  3. 운허, "(무치)".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4. 星雲せいうん, "".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5.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07 - T31n1602_p0481c08. 무치()
    "しゃいいせいりょう真實しんじつためたいのうだんさわためぎょう。如前乃至ないし增長ぞうちょうためぎょう。如經せつ善根ぜんこん。"
  6.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8 / 293. 무치()
    "치()95)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어리석음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치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치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95) 무치(,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7. 무치선근(善根ぜんこん)
    "うんなんいいたい。以其如實にょじつせい行為こういせい。"
  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무치선근(善根ぜんこん)
    "어떤 것이 무치()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9.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b01 - T31n1613_p0852b03. 무치선근(善根ぜんこん)
    "うんなんいいたい如實にょじつせい行為こういせい如實にょじつしゃりゃくいいよんひじりたいこういいじゅう緣起えんぎ。於彼ゆき是正ぜせい知義ともよしぎょうまた如無むさぼせつ。"
  10.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8 / 24. 무치선근(善根ぜんこん)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にょじつ)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まさゆき]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ひじりたい)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えんぎ)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せい]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むさぼ]에서 말한 것과 같다."
  11. 星雲せいうん, "正行まさゆき". 2013년 2월 17일에 확인
    "正行まさゆき: 梵語ぼんご samyak-pratipatti,ともえとし sammā-patipatti。ゆび邪曲じゃきょくこれぎょうそく以佛教化きょうかため基準きじゅん正當せいとう行為こういあずかよこしまぎょう相對そうたいあるたいざつぎょうじょくだり而言正行まさゆきまたよし直接ちょくせつ原因げんいん而成これぎょうたたえため正行まさゆきゆかり間接かんせつ原因げんいん而成これぎょうたたえためすけぎょう
     よりどころはち正道せいどうけいたい諦念ていねんたいたいたいもとめたいぎょうたいたいじょうとうしょうためどうはちよこしまぎょうはんこれたい諦念ていねん乃至ないしたいたいじょうとうのりしょうためどうはち正行まさゆきよりどころちゅうおもね含卷さんじゅう八鸚鵡經及大智度論卷四十八等載,あずか外道げどう凡夫ぼんぷよこしまぎょう相對そうたいてき八正道等即屬正行。
     諸家しょかれつ有數ゆうすうしゅ正行まさゆきせつ。如瑜伽ゆがろんまきろくじゅう四舉出三種正行即:於佛たからおうおさむ供養くよううけたまわこと正行まさゆき、於法たからしょおうおさむ瑜伽ゆが方便ほうべん正行まさゆき、於僧たからしょおうおさむきょう受財ほう正行まさゆき大乘だいじょう莊嚴しょうごん經論きょうろんまきじゅう二以六波羅蜜為正行,そく布施ふせ持戒じかい忍辱にんにく精進しょうじん禪定ぜんじょう般若はんにゃ正行まさゆきべんちゅうあたりろんまきじゅう波羅蜜はらみつぎょうそう分別ふんべつためろくしゅ正行まさゆきそくさいかち作意さくいずいほうはなれへん差別さべつ無差別むさべつ正行まさゆきちゅうあたり分別ふんべつろんまきそく上述じょうじゅつ作意さくい正行まさゆきぶんじゅうしゅ正行まさゆきそく書寫しょしゃ供養くよう施與せよわか讀誦とくしょういちしん聽聞ちょうもん讀、如理名句めいくあじ及義、如道理どうり及名あじあらわせつせいしん聞誦、そらしょ如理思量しりょうやめにゅうため退すさしつ修習しゅうしゅう法華經ほけきょうげんさんまき八以法華經卷四法師品所謂之受持、讀、誦、解說かいせつ書寫しょしゃ供養くようとうしょうため正行まさゆきろくしゅ法師ほうし
     淨土宗じょうどしゅう大德だいとく善導ぜんどうけい疏散ぜんちゅういい修習しゅうしゅう五種往生阿彌陀佛淨土之行業為五正行。そく:(いち)讀誦とくしょう讀誦とくしょう淨土じょうど聖典せいてん。()觀察かんさつ觀想かんそう阿彌陀あみだふつ相好そうごう。(さん)禮拜れいはい禮拜れいはい阿彌陀あみだぼとけ。(よん)稱名しょうみょうしょうねん阿彌陀あみだふつ名號みょうごう。()讚歎さんたん供養くよう讚歎さんたん阿彌陀あみだぼとけ功德くどくはんこれわか阿彌陀あみだふつ以外いがいしょ佛菩薩ぶつぼさつため禮拜れいはい觀想かんそうとう對象たいしょうしゃのりしょうざつぎょう正行まさゆきちゅう稱名しょうみょう」一項特別符合彌陀之本願,しょうせいじょうぎょう,其餘四項則稱助業、じょくだり,二者因相對而作此稱。わかざい專修せんしゅう念佛ねんぶつ稱名しょうみょうこれがい兼修けんしゅう其他よんぎょうしゃのりたたえじょせい兼行けんこうまた往生おうじょう淨土じょうど正因まさより」,而言正行まさゆき。此外,密教みっきょうちゅうのり於加ぎょうこうところ修之のぶゆきぎょうぎょうたたえ正行まさゆき。〔てん法輪ほうりんけい、般泥洹經卷きょうかん大方おおがたとうだいしゅう經卷きょうかんさんじゅうかいふかみつ經卷きょうかんさん大智たいちろんまき五十六いそろくまきはちじゅうななべんちゅうあたり論述ろんじゅつまきちゅうほうえんたまりんまきじゅうなな〕(まいり閱「正因まさより正行まさゆき」1985)p1986"
  1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9. 견도(どう, たいどう)와 3혜(さんとし)
    "おうせつうんなん方便ほうべんつとむおさむおもむきたいどう
    頌曰。
      はたおもむきたいどう  おうじゅう戒勤おさむ
      聞思おさむしょなる  いいめい俱義さかいろん曰。
    しょゆう發心ほっしんはたおもむきたいおうさき安住あんじゅう清淨せいじょうしかばねしかつとむおさむ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ういいさき受順たい聞。聞已つとむもとめしょ聞法。聞法やめたおせ思惟しいおもえやめかたのうてい修習しゅうしゅう行者ぎょうじゃ如是にょぜじゅう戒勤おさむ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おこりおもえしょなりとしおもえしょなりとしおこりおさむしょなりとし。"
  1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견도(どう, たいどう)와 3혜(さんとし)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どうたい)[→ 한역본에는 견제도(たいどう)로 되어 있다],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おもえ)·수(おさむ)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はたおもむきたいどう おうじゅう戒勤おさむ
      聞思おさむしょなり いいめい俱義さかい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たい]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しかばね,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たい]에 수순하는 청문(聽聞ちょうもん)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ほうよし]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思惟しい)해야 하니, 사유[おもえ]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じょう]에 의지하여 수습(修習しゅうしゅう)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에 의해 사소성혜(おもえしょなりとし)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おさむしょなりとし)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14. 권오민 2003, 21-29. 4혜(よんとし)쪽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불타의 참된 예지(眞智まち)에 대한 이해(簡擇)력인 무루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무루의 지혜는 더 이상 번뇌()를 수반하지 않으며, 세간의 온갖 더러움을 떠난 것이기에 청정한 지혜이다.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이 같은 무루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세계존재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올바른 관찰과 이해는 오로지 이 같은 지혜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그렇게 될 때 관찰자는 더 이상 생사 미망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루의 지혜는 사실상 불타 깨달음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생ことせい의 범부로서는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세간의 지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간의 지혜로서는 스승이나 친구의 말을 듣고서 획득하는 지혜(이를 문소성혜聞所ききどころなりとし라고 한다), 그것을 주체적으로 사유함으로써 획득하는 지혜(이를 사소성혜おもえしょなりとし라고 한다), 다시 선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익힘으로써 체득하는 지혜(이를 수소성혜おさむしょなりとし라고 한다)가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지혜를 낳을 수 있게 하는 타고난 지혜(이를 생득혜生得しょうとくとし라고 한다) 등이 있지만, 이것은 모두 선천적 혹은 후천적 실천에 의한 것이므로 여기에는 그 근거가 되는 또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속世俗せぞく의 아비달마'로 일컬어지는 협의의 아비달마,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아비달마 논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간의 네 가지 지혜나 그 근거가 되는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궁극적으로 무루의 지혜를 낳게 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아비달마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고 비바사사毘婆すな(Vaibhasika, 설일체유부의 논사를 말함)는 생각하였다. 즉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에서 설해진 것을 들을 때 타고난 지혜가 작용하고, 그것에 의해 청문聽聞ちょうもん 등에 의한 후천적 지혜가 성취되며, 마침내 무루의 청정한 지혜가 획득되기 때문에 전자는 후자의 점진적 근거가 된다. 말하자면 무루의 청정한 지혜를 본질로 하는 아비달마는 불타의 참된 예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승의勝義まさよし의 아비달마(paramarthikabhidharma)라고 한다면, 세간의 네 가지 지혜와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그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 즉 세속의 아비달마(sampetikdbhidharm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