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치
무치(
《현양성교론》·《대승오온론》·《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무치(
달리 말하면, 불교에서의 앎은 경험에 의한 앎 또는 수행을 통해 증득된 앎이며, 보시와 계율 등의 실천[
같이 보기
[편집]- 치(
癡 )
참고 문헌
[편집]-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현양성교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71(16-1), T.1602(3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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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대승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8(17-637), T.1612(3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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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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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9(17-641), T.1613(3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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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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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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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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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현양성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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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雲 . 《佛 光 大 辭典 (불광대사전)》 3판.|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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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
阿 毘達磨 俱舍論 )》.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
大乘 廣 五蘊 論 )》.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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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권오민 2003, 69–81쪽.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67 / 1397쪽.
- ↑ 가 나 운허, "
無 癡 (무치)".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 "無 癡 ".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07 - T31n1602_p0481c08. 무치(
無 癡 )
"無 癡 者 。謂 正 了 真實 為 體 。能 斷 癡 障 為 業 。如前乃至 增長 無 癡 為 業 。如經說 無 癡 善根 。"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8 / 293. 무치(
無 癡 )
"치(無 癡 )95)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어리석음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치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치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95) 무치(無 痴 ,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7. 무치선근(
無 癡 善根 )
"云 何 無 癡 。謂 癡 對 治 。以其如實 正 行為 性 。"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무치선근(
無 癡 善根 )
"어떤 것이 무치(無 癡 )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b01 - T31n1613_p0852b03. 무치선근(
無 癡 善根 )
"云 何 無 癡 。謂 癡 對 治 。如實 正 行為 性 。如實 者 略 。謂 四 聖 諦 廣 。謂 十 二 緣起 。於彼加 行 。是正 知義 。業 亦 如無貪 說 。"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8 / 24. 무치선근(
無 癡 善根 )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 癡 ]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 )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 ]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 諦 )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 )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 知 ]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 貪 ]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星雲 , "正行 ". 2013년 2월 17일에 확인
"正行 :梵語 samyak-pratipatti,巴 利 語 sammā-patipatti。指 不 邪曲 之 行 。即 以佛之 教化 為 基準 之 正當 行為 ,與 「邪 行 」相對 ;或 對 雜 行 、助 行 而言正行 。又 由 直接 原因 而成之 行 稱 為 正行 ,由 間接 原因 而成之 行 稱 為 助 行 。
據 八 正道 經 載 ,不 諦 見 、不 諦念 、不 諦 語 、不 諦 治 、不 諦 求 、不 諦 行 、不 諦 意 、不 諦 定 等 ,稱 為 道 八 邪 行 ;反 之 ,諦 見 、諦念 ,乃至 諦 意 、諦 定 等 ,則 稱 為 道 八 正行 。據 中 阿 含卷三 十 八鸚鵡經及大智度論卷四十八等載,與 外道 凡夫 之 邪 行 相對 的 八正道等即屬正行。
諸家 列 有數 種 正行 說 。如瑜伽 師 地 論 卷 六 十 四舉出三種正行即:於佛寶 應 修 供養 承 事 正行 、於法寶 所 應 修 瑜伽 方便 正行 、於僧寶 所 應 修 共 受財法 正行 。大乘 莊嚴 經論 卷 十 二以六波羅蜜為正行,即 :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般若 正行 。辯 中 邊 論 卷 下 就十 波羅蜜 行 之 「相 」分別 為 六 種 正行 ,即 :最 勝 、作意 、隨 法 、離 二 邊 、差別 、無差別 正行 。中 邊 分別 論 卷 下 則 就上述 之 作意 正行 分 出 十 種 正行 ,即 :書寫 、供養 、施與 他 、若 他 讀誦 一 心 聽聞 、自 讀、自 如理取 名句 味 及義、如道理 及名句 味 顯 說 、正 心 聞誦、空 處 如理思量 、已 入 意 為 不 退 失 故 修習 。法華經 玄 贊 卷 八以法華經卷四法師品所謂之受持、讀、誦、解說 、書寫 、供養 等 ,稱 為 正行 六 種 法師 。
淨土宗 大德 善導 之 觀 經 疏散善 義 中 ,謂 修習 五種往生阿彌陀佛淨土之行業為五正行。即 :(一 )讀誦 ,讀誦 淨土 之 聖典 。(二 )觀察 ,觀想 阿彌陀 佛 之 相好 。(三 )禮拜 ,禮拜 阿彌陀 佛 。(四 )稱名 ,稱 念 阿彌陀 佛 之 名號 。(五 )讚歎 供養 ,讚歎 阿彌陀 佛 之 功德 。反 之 ,若 以阿彌陀 佛 以外 諸 佛菩薩 為 禮拜 、觀想 等 之 對象 者 ,則 稱 雜 行 。五 正行 中 「稱名 」一項特別符合彌陀之本願,故 稱 正 定 業 ,其餘四項則稱助業、助 行 ,二者因相對而作此稱。若 在 專修 念佛 (稱名 )之 外 ,兼修 其他四 行 者 ,則 稱 助 正 兼行 。又 就往生 淨土 之 「正因 」,而言正行 。此外,密教 中 ,則 於加行 之 後 所 修之 行 業 稱 正行 。〔轉 法輪 經 、般泥洹經卷 下 、大方 等 大 集 經卷 三 十 、解 深 密 經卷 三 、大智 度 論 卷 五十六 、卷 八 十 七 、辯 中 邊 論述 記 卷 中 、法 苑 珠 林 卷 十 七 〕(參 閱「正因 正行 」1985)p1986"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9. 견도(
見 道 ,見 諦 道 )와 3혜(三 慧 )
"應 說 云 何 方便 勤 修 趣 見 諦 道 。
頌曰。
將 趣 見 諦 道 應 住 戒勤修
聞思修 所 成 謂 名 俱義境 論 曰。諸 有 發心 將 趣 見 諦 。應 先 安住 清淨 尸 羅 然 後 勤 修 聞所 成 等 。謂 先 攝 受順見 諦 聞。聞已勤 求 所 聞法義 。聞法義 已 無 倒 思惟 。思 已 方 能 依 定 修習 。行者 如是 住 戒勤修 。依 聞所 成 慧 起 思 所 成 慧 。依 思 所 成 慧 起 修 所 成 慧 。"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견도(
見 道 ,見 諦 道 )와 3혜(三 慧 )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見 道 諦 )[→ 한역본에는 견제도(見 諦 道 )로 되어 있다],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思 )·수(修 )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將 趣 見 諦 道 應 住 戒勤修
聞思修 所 成 謂 名 俱義境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見 諦 ]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 羅 ,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 成 慧 )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見 諦 ]에 수순하는 청문(聽聞 )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 義 ]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思惟 )해야 하니, 사유[思 ]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定 ]에 의지하여 수습(修習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 成 慧 )에 의해 사소성혜(思 所 成 慧 )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 所 成 慧 )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 권오민 2003, 21-29. 4혜(
四 慧 )쪽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불타의 참된 예지(眞智 )에 대한 이해(簡擇)력인 무루無 漏 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무루의 지혜는 더 이상 번뇌(漏 )를 수반하지 않으며, 세간의 온갖 더러움을 떠난 것이기에 청정한 지혜이다.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이 같은 무루의 지혜를 본질로 한다. 세계존재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올바른 관찰과 이해는 오로지 이 같은 지혜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그렇게 될 때 관찰자는 더 이상 생사 미망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루의 지혜는 사실상 불타 깨달음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생異 生 의 범부로서는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세간의 지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세간의 지혜로서는 스승이나 친구의 말을 듣고서 획득하는 지혜(이를 문소성혜聞所 成 慧 라고 한다), 그것을 주체적으로 사유함으로써 획득하는 지혜(이를 사소성혜思 所 成 慧 라고 한다), 다시 선정을 통해 반복적으로 익힘으로써 체득하는 지혜(이를 수소성혜修 所 成 慧 라고 한다)가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지혜를 낳을 수 있게 하는 타고난 지혜(이를 생득혜生得 慧 라고 한다) 등이 있지만, 이것은 모두 선천적 혹은 후천적 실천에 의한 것이므로 여기에는 그 근거가 되는 또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속世俗 의 아비달마'로 일컬어지는 협의의 아비달마,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아비달마 논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간의 네 가지 지혜나 그 근거가 되는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궁극적으로 무루의 지혜를 낳게 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아비달마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고 비바사사毘婆沙 師 (Vaibhasika, 설일체유부의 논사를 말함)는 생각하였다. 즉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에서 설해진 것을 들을 때 타고난 지혜가 작용하고, 그것에 의해 청문聽聞 등에 의한 후천적 지혜가 성취되며, 마침내 무루의 청정한 지혜가 획득되기 때문에 전자는 후자의 점진적 근거가 된다. 말하자면 무루의 청정한 지혜를 본질로 하는 아비달마는 불타의 참된 예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승의勝義 의 아비달마(paramarthikabhidharma)라고 한다면, 세간의 네 가지 지혜와 아비달마의 여러 논서는 그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 즉 세속의 아비달마(sampetikdbhidharma)이다."